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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16. 2022

김리나 박사님은요

아기가 태어나다

외손녀가 태어났다. 온몸의 뼈가 제자리를 잃고 바스러지는 산고를 겪은  딸은 두 달 만에 직장에 복귀했다.  가여운 내 새끼.  자연스럽게 육아는 내 몫이 되었다. 빨갛던 아기의 얼굴에 뽀얗게  윤기가 흐르고 작고 가냘픈 손발이 잡으면 부러질까,  불안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김리나 박사님은요. 하버드 우등생에다, 얼굴은 미스코리아.  몸매는 슈퍼모델“  처음에 김리나 박사님은 하버드 장학생이었다. 하버드에는 성적우수가 아닌 가난한 학생이 장학생이 된 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우등생으로 바뀌었다.


                                                                                                      하버드대학/픽사베이


할머니의 온갖 바람과 축복을 주문에 담아 아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졌다.  내 딸들을 키우며 가슴에 품었던 기도. “내 아이들이 뿌리와 날개를 주는 부모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소서.”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흘러  딸의 딸인 아기에게 하는 주문.  “김리나 박사님은요. 부모님도 짱. 집안도 짱. “  딸의 가정이 화목하고 평온하여  아기가 자신의 뿌리에서 자존감을 키우고 성장하여 높이 날아오를 때 날개가 되어 줄 수 있는 내 자식들의 모습이 주문에 담겨있다.  아기가 쉽게 잠들지 않는 날은  친구도 짱, 선생님도 짱, 옆집 아줌마도 짱,  사돈의 팔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짱이 되는 긴 주문이 되었다.  귀를 주무르면서 "쪼물딱 쪼물딱~ " 노래를 하면 아기의 눈꺼풀은 중력을 못 이겨 떨어지는 사과처럼 내려앉았다. 더 놀고 싶은데 잠들어버리는 것이  싫은 아기는 쪼물딱 시간이 되면  귀를 못 만지게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어 쪼물딱은 서서히 소멸되었다.


 “척추는 똑바로. 장은 튼튼하게. 허리는 24. 히프는 업 업. 가슴은 B컵이 되어라 “ 김리나 박사님의 가슴은 C컵이었으나  ‘좀, 너무 크다’는 딸들의 항의에 B컵으로 축소되었다. “길어져라 길어져라. 하늘하늘 팔목. 꿀벅지가 되어라. 늘씬늘씬 종아리“ 주문대로 지금 아이의 팔과 다리는 남다른 비율로 자라는 중이다. 매일 아기의 양쪽 발바닥을 부딪히며 "대~한민국~ 짜라라짠짠"을  외쳤던 덕분 일까. 카타르 월드컵의 초딩 붉은 악마는 종이로 만든 태극봉을 휘날리며 격한 춤과 노래로 응원을 한다.  “김리나 박사님은요. 건강하고요. 성실하고요. 지혜롭고요.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요. 모든 사람을 사랑해요."  아기의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만지고 당기면서 하던 주문은 아이가 11살이 된 지금도 잠자리에서 하는 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김리나 박사님은요. 대한민국의 보배랍니다."로 주문은 끝난다.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와 과학자들은 미국령의 작은 섬 ‘카우아이섬’에서 자라는 833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의 삶을 추적 조사했다. 마약과 폭행, 미혼모, 이혼 등이 섬의 전반적인 환경이었다. 그중에서도 고 위험군의 아이들 201명은 당연히 더 심한 일탈과 범죄에 연루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놀랍게도 그중 3분의 1인 72명은 누구보다 건전한 삶을 살고 있었다. 40년 동안 그 아이들을 연구한 에너워미 교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성장한 72명의 아이들에게는 예외 없이 그 아이의 인생에 무조건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공통점 이 있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가족 중 한 사람은 조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허투루 보낸 시간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했다. 글쎄, 그게 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똥만 싸도 칭찬을 받던 아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생긴다. 학령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누가 봐도 반듯한 아이로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아이에게 전해진다. '자기 일을 알아서 안 하는' 아이에게 말투는 부드럽만 눈길에는 힘이 들어다. "너 일은 네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거야 " 고 눈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쫒다. 아이의 하루는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모기라도 물다.


그런데 그게 뭐,  당연한 거 아닌가. 건강해서 뛰어노니까 구석에도 들어가고 모기도 물리는 거야. 반항해야 하는 거야 자기 논리가 생긴 다는 거지. 아이에게 가시가 돋으면 어른이 그 가시를 빼주면 돼. 11살 아이를 키우면 할머니의 나이도 11살이 되어야 하는 거야. 멀리 보자. 한 손에 달린 바나나 송이도 제각각 익는 속도가 다른데 내 아이는 내 아이대로의 속도가 있는 거지. 그 꼴을 견뎌야 한다.  TJ유형 할머니의 주문은 아직 진행 중이다.  

  

주문대로 오직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내게 허락된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고, 사랑한다. 내 강아지.

                                                                                                                     by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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