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야

우리 허니 잘 있지?

by 박하

"허니도 약간 믹스였었지?" 길에서 하얀색 믹스 강아지 둘이 스쳐 지나면서 으르렁대는 것을 보던 딸이 말했다. 한식이라 사위는 부모님 모시고 아이와 벌초를 갔다. 딸하고 둘이 브런치 먹자고 나와서 운동삼아 걷던 중이었다.


우리는 딸들의 학업과 직장 때문에 서울. 부산에 떨어져 살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딸들 집에 갔다. 들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강아지가 있다. 그동안 선물 받았다며 딸들이 집에 데리고 온 개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는데 이번엔 엄마 모르게 키우고 있었다. 실없는 어떤 녀석이 선물이랍시고 사준 것일 게다. 중국황실의 개라는 페키니즈종이다. 코가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이 여간 귀엽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기는 예쁘다. 걸음도 아직 서툴고 아기냄새가 폴폴 난다. 아기가 종일 빈집에서 딸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딸들도 강아지도 힘들다. 그날로 품에 안고 부산으로 와버렸다. '허니'라고 했다.


'허니'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아가 때는 영락없는 페키였는데 크면서 보니까 약간 믹스된 게 보였다. 믹스가 영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허니'는 사람말을 다 알아들었다. 서열이 낮다고 판단되면 무시했다. 심부름을 시키면 만만한 조카에게 고갯짓을 까딱까딱하며 심부름을 넘겼다. 놀이터에서 미끄럼도 잘 탔다. 평소에는 타보라고 해도 절대 말을 안 듣는데 새로운 개친구를 만나면 으스대며 미끄럼틀에 올라가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오며 과시했다.


2008년 2월 10일 눈앞에서 '허니'가 없어졌다. 바닷길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적한 길에서 리드줄을 풀어달라고 조르길래 풀어주었다. 골목으로 쏙 들어가서 따라 들어갔는데 안 보이는 것이다. 골목 끝은 찻길이라 차들이 씽씽 달린다. 소리 내어 부르면서 골목을 몇 바퀴를 돌아도 대답이 없다. 한 집 한 집 뒤졌다. 개소리가 요란한 집이 있었지만 '허니'는 아니었다. 하필 골목 첫 집이 예전에 보신탕을 하던 집이었다. 염치 불고하고 들어가 솥뚜껑도 열어보고 옥상에도 올라가 봤다.

그날부터 '허니'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허니'는 유난히 초등학교를 좋아했다. 길에서 자주 만나는 초등학생들이 예쁘다고 환호하는 것을 즐겼다. 어떤 날은 교실 안까지 난입을 하기도 했다. 전단지를 만들어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주면서 연락을 부탁했다. '허니'는 내가 찾아주기를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애간장이 타 들어갔다.



플래카드를 걸고 현상금도 제시했다. 단속을 피해 주말에 걸고 주초에는 내렸다. 모든 것이 다 돈이었다. 전단지는 붙이면 구청에서 나와서 뗐다. 자주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찾아다니는 곳이 가까운 곳에서 점점 범위가 넓어져갔다. 사람을 사서 전단지도 여러 동네에 붙였다. 제보 전화가 많이 왔는데 특히 택배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 눈에는 코가 납작한 개는 다 똑같아 보이는 것 같았다. 가보면 주인이 멀쩡히 잘 키우고 있는 개들이었다. '허니'를 찾으러 다니다가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개를 두 번 찾아주었다.


구멍가게 옆 구석진 곳에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개가 있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한쪽눈이 없다. 심장이 철렁한다. 허니와 같은 페키니즈다. 허니를 2월에 잃어버리고 벌써 여름이었다. 더운 것 같아 얼른 생수를 하나 사서 먹였다.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혹시 본 아이인지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날도 덥고 일단 미용을 했다. 털을 깎이고 기본 진료를 하고 안고 나오는데 전봇대에 이 아이를 찾는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미용 전에 봤으면 좋았을 텐데, 기가 찼지만 마음은 놓인다. 너 버림받은 게 아니었구나.


전단지의 번호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너머 목소리가 떨린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견주를 만났다. 개는 풀이 죽어있다가 주인을 보자 생기가 돈다. 견주에게서 기가 막힌 말을 들었다. 방금 미용시켜 나온 그 동물병원이 아이의 단골병원이라고 한다. 한쪽눈이 함몰된 페키니즈 가 흔한가. 그자는 동물병원을 하고 있으니 주인을 잃은 개들이 어떤 수순을 거쳐 결국은 비참하게 죽어가는지 모르지는 않을 거다. 눈앞의 돈 몇만 원에 양심을 판 그 수의사는 동물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은 거다.


애견미용실이나 동물병원에는 빠짐없이 전단지를 주고 다녔다. 다른 사람이 주고 간 전단지를 보는 일도 있다. 전단지를 주러 들른 작은 애견미용실에 있는 개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전단지에서 여러 번 본 아이다. 물어보니 미용실 앞 길에서 차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는 걸 구해서 치료 후 데리고 있다고 했다. 견주가 찾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두 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유기견 신고를 하면 구청에서 나와서 포획한다. 시간에 따라 바로 관할유기견보호소로 보낼 수도 있고 구청에서 하루 재울 수도 있다. 떠돌다가 다른 구청에서 넘어갈 수도 있으니 유기견보호소도 자주 갔다. 겨울은 혹독하게 춥고 여름은 죽을 만큼 더운 곳이다. 개나 고양이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벌레들의 습격을 받거나 피부병에 시달린다. 아무런 보호도 하지 않은데 이름은 보호소다. 보호소장에 따라 환경이 달라지는데 허니를 찾던 그 당시는 거의 대부분의 보호소가 그랬다. 보다 못한 자원봉사자들이 찾아가도 받아주지 않아 쫓겨 나오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일반인들에게는 주소도 노출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누워있는 개들이나 한 줌의 희망으로 사람을 보면 짖는 애들이나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졌다.


그날도 보호소를 갔는데 어떤 여자가 입양할 개를 골라 꺼냈다가 마음이 변했는지 고 있었다. 개는 데리고 가는 줄 알고 기쁨에 꼬리를 치고 있다가 더러운 케이지에 다시 넣으니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그 여자는 사무실에 와서 입양비 3만 원 내었던 것을 도로 받아서 갔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허니'는 찾지 못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게 '허니'의 사진을 보내서 생사를 물어봤다. "길에서 오래 떠돌 아이는 아니다"라는 답이 왔다. 이미 죽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유기견의 삶에 대해 알아버린 내게 그 말이 오히려 작은 위안이 되었다. 큰딸은 아직도 '허니'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허니'에 대한 사랑이 깊은 딸에게 잃어버려 못 찾았다고 말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 뻔해서 거짓말을 했다. '허니'를 선물 받은 것은 작은딸이었지만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보살핀 것은 큰딸이었다. '허니'를 부산으로 데려오고 한참 지나 같이 서울로 갔다. 서울역에 마중 나온 딸을 보고 허니는 "꽥꽥" 오리소리를 내고 울었다. KTX를 타고 서울부산을 많이도 오갔다. 덩치가 커져서 아기띠를 하고 다녀야 했다.


큰딸은 아직도 <평소 '허니'를 엄청 예뻐하던 어떤 모녀가 납치하듯이 차에 태워 가서 연락이 없다>는 내 말을 믿고 있다. 언젠가 허니를 만나면 꼭 따져 물어볼 것이다. 그날 그 골목에서 어디 갔었냐고.. 원망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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