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고 오는 날 창밖으로 하염없이 노을이 지더란다. 2007년 8월, 유기견 카페를 운영하던 누리맘이 길에서 구조한 작은 개는 그때부터 노을이가 되었다. 쓰레기처럼 길바닥을 굴러다니던 어린 시츄는 박스에 넣을 때도 소리 한번 안 내더니 차가 출발하자 낑낑거리고 짖기 시작했다. 시궁창처럼 고약한 냄새에 누리맘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카페로 와 2시간이 넘게 떡진 누더기를 벗기니 뼈만 남은 앙상한 몸과 작고 귀여운 얼굴이 드러났다. 얼마나 굶고 다녔을까. 사료를 한 줌 주니 청소기처럼 흡입했다. 이빨 상태를 살핀 동물병원 선생님은 추정나이 2살의 수컷이라고 했다. 양쪽 어깨는 세균성 피부병과 곰팡이로 괴사 되어 피부를 도려내고 입원 치료를 했다. 입원하는 동안 유기견에게 당연한 수순인 중성화도 했다. 개들의 입장은 들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유기견 개체수를 늘리는 악순환을 확실히 끊는 방법으로 중성화를 택한다. 노을이가 회복을 하자 누리맘은 아직 어리고 예쁜 노을이의 입양 공고를 냈다. 견생에서 제일 행복한 일은 좋은 주인과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같이 사는 것.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노을이 미용 전 / 미용 후>
2008년 1월 노을이는 거제도로 입양을 갔다. 입양 후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하니 2주 전에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 지역 공고를 다 살펴보아도 노을이는 없다. 틀림없이 길을 떠돌고 있을 텐데 2월 추위에 누리맘은 애가 탔다. 전단지를 만들어 거제도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동네였는데 전단지를 붙이자마자 여기저기서 제보가 들어왔다. 세탁소 아저씨, 슈퍼 아줌마. 아파트 관리실 아저씨도 먹을걸 주었다고 했다. 입양자가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이름만 불러도 찾았을 거리다. 아파트 아줌마는 따라오길래 집에 데리고 갔는데 원래 있던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받아 할 수 없이 슈퍼 옆 가게 아저씨가 사무실에 두고 사료를 사 먹이고 있다가 그 옆 식당에 온 손님이 데리고 갔단다. 키우던 시츄가 죽었다고 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가끔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누리맘은 다시 오면 연락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왔다. 누리맘이 하루 꼬박 자리를 비운 유기견 카페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많은 사람의 수고를 거쳐 노을이가 누리맘 카페로 돌아왔다.
2008년 봄에 키우던 개를 잃어버리고 6개월째 찾아 헤매던 나는 노을이를 입양했다. 왜 파양이 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마킹, 아무 데나 오줌을 갈긴다. 천 소파에 다리를 들고 쌀 때는 정말 아찔하다. 개새끼 육성이 튀어나온다. 가둬 둘 수도 없고 종일 따라다닐 수도 없고 산책을 자주 해서 빼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집이 상가와 구청이 인접하면서 바다가 코앞인 살기 좋은 곳이었다. 매일 데리고 나갔다. 모래사장을 어찌나 잘 뛰는지 끌려다녔다. 그러고도 노을이는 가출을 밥 먹듯 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어느 틈에 나가버린다. 나가고, 찾아오고 되풀이되었다. 사랑받고 잘 먹으니 예뻐지고 귀티가 흘러 돌아다녀도 상가의 누군가가 데리고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멀리도 못 가고, 실컷 놀지도 못하고 잡혀오는 개노을. 딱 한번 못 찾고 밤을 보내는데 밤새 귀에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오늘은 어디서 밤새 실컷 놀다가 무사히 들어오너라'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구청에 실종 신고하러 갔는데 노을이가 있었다. 밤새 짖던개가 노을이었다. 구청에 들어온 시간을 보니 개노을 집에서 나가자마자 잡혔다. 노을 이는 입질도 하는 개였다. 사정이 있어 같이 살던 동생네 식구는 개 노을에게 많이 물렸다. 뽀뽀하려 내민 입술을 물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노을이는 여러 가지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진드기를 잡아주느라 밤도 새우고, 내가 옴이 전염되어 고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을 같이 살다가 외손녀 육아 때문에 딸 집에 가야 되었다. 노을이는 내 여동생 가족과 살았다.
2012년 봄 쑥 캐러 갔다 온 여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실려간 동생은 수술을 하고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눈에 띄는 미인인 데다 성격도 좋은 내 동생이 금방이라도 일어나 "내 쑥 어디 있노 쑥떡 해 먹어야지" 할 것 같아서 동생이 씻다가 쓰러져 싱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쑥을 버리지도 못하고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주부가 없는 집에서 마킹을 하는 노을이는 펜스에 가둬졌다. 아기가 깊은 잠이 드는 밤 12시가 되면 노을이에게 갔다. 오밤중 차로 10분 거리였다. 종일 방에 갇혀있던 노을이는 나를 보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가슴 줄을 하고 바다가로 나가 아예 줄을 풀고 인적 없는 새벽 바다를 뛰어다니게 했다. 녀석이 얼마나 갑갑하고 불안하고 힘들었을지, 내 동생은 또 어쩌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뛰어다닌 날들이었다. "노을아, 실컷 뛰고 종일 얌전히 자고 있어라 제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중환자실에서 잠시 정신이 맑을 때면 내 동생은 그 한 구절을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의사 선생님도 회복을 장담 못한 상태에서 우리 동생이 살아났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늘 말했다."개들 때문에 내가 웃는다"
개들? 사실은 노을이 데려오고 나서 우리 집에는 개 2마리가 더 들어왔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노을이는 동생네와 10년을 더 살다 죽었다. 추정나이 15세. 2살 때 유기견으로 발견된 노을이는 영원히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함께 한 여러 일을 겪었고 나이가 들어갔다. 차츰 눈이 안 보이고 다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사랑받는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였다. 노을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동생과 조카 덕분에 노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었다. 노을이가 죽은 지 2년이 지났다. 이번에 동생네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단지에 담겨 얌전한 노을이도 함께 갔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에 뿌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노을이에게 새 아파트 도 보여주고 싶은 조카가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만하면 노을이는 성공한 견생이지 않은가.
내 평생에 잊지 못할 많은 개 들. 그중 하나인 노을이 이야기다.
개노을 마중 나와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