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둑,남자,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인간들

by 박하

'딸칵' 소리에 눈을 떴다. 아코디언도어 틈 사이로 '반짝' 빛이 들어왔다.


'도둑이다 '

머리끝이 쭈뼛섰다.


결혼 후 세 번째 이사한 골목 안 주택이었다. 큰방, 마루, 작은방과 주방. 주방옆 욕실은 바깥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작은방과 주방사이에 문이 없어 양손으로 잡고 여닫는 아코디언도어를 설치했다. 도어는 열고 닫을 때마다 '달칵' 소리가 났다.


"근데 여보 내 생각에는 삼촌이랑 의논해 보는 게 낫겠는데 삼촌은 아직 안 자니까 불러볼까?" 부끄러워서 해 본 적 없는 '여보' 소리가 나왔다. 다행히 잠든 남편은 듣지 못했지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말을 계속했다. 바로 옆방에 시동생이 있는 양 하는 것도 조금 더 이로운상황을 만들 것 같았다.


사실, 옆방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동거인이 잠들어 있었다.




마당에서 우는 아기를 업어 달래고 있는데 낯선 손님이 왔다.

골목집들은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시절이었다.

"정상태 씨 댁 맞죠?"

"네 그런데요"


명함을 내놓으며 자신은 시내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업체 대표라고 소개했다.

남편이 외상으로 최고급 전축을 가져가서 돈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똘똘이엄마'라고 불렀다.

"똘똘이엄마 전축대금 대신 당분간 이 집에서 살게요" 낮선방문객은 그날로 우리 집 큰방에 눌러살았다.


남편은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작은방으로 아기의 물건을 옮겼다.




남자는 잡지에서나 보던 큰 침대를 들여오고 전 부인이라는 여자도 드나들었다. 멋쟁이에다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남자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면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독실한 가톨릭신도로 많이 울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방글방글 웃고 살라고 신부님께서 '방글레시아'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셨다고 했다.


어느 날밤 아기를 재우다가 잠이 들었다. 남편의 벨소리를 못 듣고 잠든 건 처음이었다.

급한 벨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대문을 여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이 "도대체 뭐 하느라 문을 이제 여냐"라고 소리 지르며 섭게 노려보다.


화가 안 풀린 남편이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남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한 것은 남자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옆에 두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남편의 주먹질 발길질을 다 받는 것이다. 얼굴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내 비명소리에 이웃들이 달려왔다. 피를 흘리며 병원에 간 남자에 대한 걱정과 우리를 고소하고 어마어마한 돈을 요구할 거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치료만 하고 돌아온 남자에게 남편은 사과하지 않았다. 남자 역시 말이 없었다.


다음날 남자는 떠났다. 그 후 남자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이 되어 걸어보기 전까진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 남편도 그 남자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잠든 남편은 미동도 없었지만 혼자 계속 상황극을 이어갔다. 미덥지 못한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간 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내 옆에는 어린 딸이 잠들어있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무서움을 이긴 것 같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기척을 느끼고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날이 밝자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욕실 바깥에서 도둑이 왔다간 증거가 발견되었다.


도둑은 잡히지 않을 비방으로 현장에 똥을 싸고 도망가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없다.








keyword
박하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작가의 이전글캠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