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보데 May 04. 2023

홀로서야 보이는 것


인생에도 시즌이 있다면 요즈음은 영락없는 슬픔의 시즌이겠지. 사실 슬픔은 썩 훌륭한 글감이어서, 쓰고픈 글조각들이 온통 머리를 떠다녔지만 그럴듯한 결론을 맺을 정도로 여물지 못해 괜한 괴로움을 느꼈다.

이제는 나아갈 곳을 조금은 알 듯해서

슬픔은 여전히 어떠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나의 오랜 친구여서

이 순간과 마음을 남겨보려 한다.




나는 그의 진심, 의중, 의도 같은 것들이 참 중요했다. 내가 사랑으로 혹은 사랑의 힘을 빌려서 너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참 덧없이 기쁘고 풍성한 일이었어. 관계가 끝나고나니, 알 수 도 없고 알지도 말아야 할 각자의 진심과 속내.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의 모든 것을 낱낱이 꿰지 않았었던가.


작별은 정말로 서로를 잘 알아서, 잘 믿어서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선택 이후에는 내가 맞다는 증거와 결과들이 내 눈앞에 떨어지기를 기대했는데, 되려 알 수 없는 미지와 공백의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의 소식은 1000피스 짜리 퍼즐 그림 중 겨우 두어 조각씩 떨어지듯 내 손에 들어왔다. 정말 되었다고 사양해도 불규칙하게 내 손아귀에 조각들은 들어왔고. 사실 나는 여전히 그 그림이 궁금하고. 알아낼까. 알아내서, 내가 원하고 꿈꾸었던 마지막으로 다시 만들어낼까. 아니면 어디까지 이루어낸 것인지 파헤쳐버릴까.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편해질까. 그렇다고 지금의 나보다 더 받아들여지기 수월해질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멜로가 체질)의 주인공은 사랑은 변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여러 가지 사실들 / 지나간 꿈 / 깨어진 소망

이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고, 사실 부정하는 것이 더 편안해서, 자꾸 안도했던거지.

그래서 요즘 나를 울게 하는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지나간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이 것(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너의 진심, 너의 의중, 너의 의도. 나를 살게 했던 것들이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렇게 홀로 선다.

'사랑'은 다른 곳으로 돌리고

'사실'은 기억한다.

다행히 갈 수 있는 곳은 끝이 없고, 사실의 끝은 정해져 있다.




홀로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나에 대한 이해가 늘어날수록 세상의 진심, 의중, 의도는 힘을 잃어간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개입할 수 없는 나만의 세상이 생긴다. 그것이 비록 여전히 황폐하지만, 여기 아직 온통 슬픔의 흔적으로 지저분하지만서도. 누구도 끼어들 틈 없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단도리했던 나의 행동거지가, 그 안에 내포된 나의 선택과 인내들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명확하게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한다. 이전에 뒤엉키고 충돌했던 사실들이 이제는 잔잔하게 온전할 수 있는건가 설레기까지 한다.


덮쳐오는 슬픔 속에도 오직 나를 위해 의미 있는 본질과 그 어디에도 부질없는 사실들을 분별한다. 분별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 나를 살게 할 것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애초부터 너였다고. 너.


그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다. 그 어떠한 소속도 지금의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소속되어 편해지고, 편해져서 벌어지는 그 뻔한 일들. 그 뻔한 우리의 밑바닥. 이젠 그런 것들이 싫다. 지겨워. 멀리 떠나고 싶다. 아무도 나를 감히 지킬 수 없는 곳에 가서 마음껏 두려워 떨다가. 그렇게 다시 약속처럼 돌아와서, 내게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때쯤이면 사랑도 적절하게 두렵지 않을까.




힘을 가진 사람들의 말이 유독 아프게 박힐 때가 있다.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소속에 있기 때문에 맞설 수 없었고, 저항의 목소리를 또 한 번 잠재우고 그 생각과 소리에 익숙해져 간다. 그저 이 교실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람이 없기를, 혹은 개인만의 사정으로 원하는 성적을 만들 수 없었거나, 혹은 삶이 무거워 수업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거나, 말랑한 꿈을 가졌거나, 도저히 신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거나, 말의 가시에 눈물을 참는 것은 나 하나이기를, 힘없는 기도만 끄적인다. 아직도 내 마음 따위는 힘이 없다. 교수님이 믿는 진리에 어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사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속되었고, 소속에 성실한, 소속이 수월한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도한다. 나도 똑같아. 같은 사람이 한 말에 은혜받아 눈물짓다가, 아파서 눈물짓다가.


나는 한동의 어문학과의 영어 실력이 한참 모자란 힘없는 학생이라는 사실이. 교수님과 교수님 말에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학우들은, 그저 소중한 종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지금 다독이는 것일 뿐이라는 그 사실이. 나의 단전에서 울렁이는 거부감과 섞여 이대로 잠식될 것 같다.


진리가 힘이 있다는 말. 진리가 나를 살게 할 것이라는 말. 지금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저 지금 그 진리들 때문에 죽겠거든요. 진리. 신념. 팩트. 이것들이 제 마음은 자꾸 엉망으로 흩트리는데, 그래서 살아있다는 선(good)까지도 고통으로 느껴지는데, 그런 건 위대한 신념 앞에 중요치 않다고 말해버리신다면. 나는 그냥 그 조차도 수많은 사실 중 하나로 인정하련다. 남들이 나에게 증명하는 진리가 지금 소속의 기쁨조차 느끼지 못하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지만, 그것은 당신의 믿음, 그래서 당신의 실상.




다 내던지고, 홀로 서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 아주 단단히 공허함에 혼쭐이 나서 헤매고 헤매다 결국 사랑의 품으로 돌아왔었지. 그리고 되려 사랑을 위해 열렬히 살았다. 다시 돌아왔을 때, 완전히 분리된 채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실보다 본질에 충실할 수 있을까. 나 아직 내 곁에 남은 사람에게 열렬한 존재이고 싶은데. 또 나 자신에게 열렬하고 싶은데. 다시 사랑한다면, 내가 좀 더 온전했으면 좋겠어.

대단치 않아도, 비록 허무하고 초라하더라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날, 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