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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데 May 04. 2023

걱정하지마

오후 회의를 마치고 계획에 없는 산책을 했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은데,라는 생각이 여전히 머리에 가득했지만 아무렴 학교 한 바퀴쯤 돌 수는 있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걷다 보니 학교가 참 한적하다. 학우들이 어린이날이 겹쳐 긴 주말을 보내러 다들 학교를 떠난 듯 하다. 캐리어를 들고 들뜬 표정으로 택시정류장으로 달려가는 낯선 이를 보았을 때는 부럽기만 했는데, 한적한 교정을 바라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기 앉아본지 꽤 오래된 벤치가 보인다. 복잡한 계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앉아버렸다.


들고 있던 태블릿으로 틈틈히 읽고 있던 전자책을 꺼내 들었다. 이어폰에서는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에 따라 재생된 음악이 들려 나온다. 한 번쯤 들었던 가수 같은데,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어. 가사가 안 들려 뭘 표현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되려 책의 활자에 집중할 수 있으니 아무렴 좋다. 음악소리의 사이에 나뭇잎이 바람과 바람에 부딪히는 시원한 소리가 들려온다. 참새가 내 옆에서 나무 열매를 쪼아대고, 나와 얼마간 눈을 마주치더니 포르르. 날아가버린다.


거뜬하게 두 챕터를 읽어버렸다. 좀 더 읽어서 아주 해치워버릴까 하다가, 글이 쓰고 싶어졌다. 타인의 문장 말고, 나의 문장을 음미하고 싶어졌다. 안도가 든다. 어쩌다 행복해버리면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리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나는 떠났다가도 돌아오고픈 사람이구나. 고달픈 내 현실을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향한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막혔던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시계를 보았는데 겨우 25분 남짓이 흘러가있었다. 고작 25분으로 오늘을 되찾은 기분이다.


삶을 되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잠깐 한 번씩 나의 내면의 소리에 답 다운 대답을 주는 것. 때때로 못 이기는 척 져주었다가, 기운을 내어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미래의 내가 언젠가 일기를 뒤적거리다가, 반갑게 발견했으면 좋겠다. 23년 5월 4일, 스물넷의 김유진은 고작 25분으로도 너의 호흡을 되찾았다고. 그러니 가끔씩 나를 잃어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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