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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관 Dec 08. 2022

그저 당연한 것.

<천하장사 마돈나>_비평



 요즘 유튜브 콘텐츠에서 떠오르는 유명인이 있다. 풍자라는 인물이다. 속 시원하고 과감한 입담과 빛나는 재치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녀는 트랜스젠더다. 과거 트랜스젠더 유명인으로 하리수가 존재했지만 풍자는 하리수를 넘어서 다양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제 현대 사회는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인 성숙한 사회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각종 뉴스와 기사는 그렇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 소수자 클럽 총격사건, 푸틴의 ‘동성애 선전 금지법’, 동성애는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카타르 등 해외를 넘어 국내에서도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성소수자’를 빼고, 원숭이 두창의 원인으로 근거 없이 성 소수자를 거론하는 등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수많은 기업과 협회에서 성 소수자와 트랜더 젠더의 인권을 위해 부단한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현대 사회는 소수를 억압한다. 2006년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법안인 호적상 성별 정정 허가 판결이 등장하고 16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6년 대법원에서 판결 내린 ‘호적상 성별 정정 허가’는 말 그대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본래 호적에 적혀있던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는 법률이다. 성전환 이후 취직이나 각종 신고와 같이 신분증을 제출해야 할 때 생길 수 있는 애로 사항들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대한민국 트랜스젠더들에겐 기념적인 날이 됐으며, 대한민국 인식 개선 및 확장의 시발점이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기념비적이었던 법안은 표면적이고 세심하지 못한 겉핥기 식 법안이었다. 당시 성별 정정 요건은 “정신과 치료, 호르몬 치료를 했음에도 치유되지 않고,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들과 나아가 의복, 두발 등 완벽한 외관을 갖춰야 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전환된 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신분 관계 변동을 초래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 사회적으로 허용됐을 때 인정받을 수 있다.”라 적혀있어 비용의 부담, 가혹한 신체 수술 및 변화, 가족 및 지인들과의 교류 강요, 판사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 기준 등 트랜스젠더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관련 판결이다. 그리고 판결이 났던 2006년 국민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당시 KBS <주부 세상을 말하다> 프로그램 속 진행된 토론에서는 참여한 트랜스젠더와 몇몇 전문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참여자와 방청객들이 반대했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아이들의 성 정체성 혼란 문제, 교육의 문제, 결혼의 문제, 사회 혼란 야기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준, 이해영 감독

 

 판결의 불만이 팽배하고 각자의 의견들이 부딪히며 혼란스럽던 시기에 정면으로 뚫고 나온 영화가 <천하장사 마돈나>이다. 개봉 이후 부산 영화 평론가 협회상, 청룡 영화상, 백상 예술대상과 같은 여러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였으나, 총 관객 수 57만 명으로 대중들에게 싸늘한 반응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말한다. 스토리, 캐릭터, 미장센 등 온 힘 다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는 초월해야 한다고. 우물에서 나올 때가 됐다고’. 본 영화는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은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향한 사회의 인식을 2006년에 꼬집으며 새로운 인식을 제안한다. 변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내 장래 희망?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이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를 보곤 여자가 되고 싶어서, 남자가 되고 싶어서 수술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곤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힘든 결정을 하고 험난한 여정을 가는 그들을 보고 우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사회의 틀과 고정된 성별에서 ‘초월’했다고 지칭한다. 그렇기에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 오동구는 정체성 역전 캐릭터이자 정체성 전치 캐릭터로써 규정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저 살고 싶은 것이라 말한다. 원하고 바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동구를, 오동구가 대변하는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바라볼 때 고정된 인식과 사회적 틀을 초월했다고 보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고착화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들이 벗어난 사람들로 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당연하고 가야 할 길이지만 좁은 인식을 가진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 존재로 보인 것이다. 사회적 규범과 틀에서 벗어나 당연한 길을 가는 소수들은 굳어진 사회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영화 속 주인공 오동구는 도착지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장애물과 마주한다. 부모님과의 갈등, 성전환 수술에 필요한 돈, 자신과 맞지 않는 씨름, 친구들의 괴롭힘 등 현실 사회에서 성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편견의 억압을 비유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3막을 지나 엔딩 부분에 닿아서야 성전환 수술을 하며 종착점에 도착했지만 앞선 러닝타임이 모두 고통으로 얼룩져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명언처럼 고통의 역사는 거름이 되어 주인공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뒤집기’를 통해 장애물을 뒤집어버리는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본인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길임에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으며 현실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을 느꼈다. 인간의 여러 가지 성격을 유형별로 분류한 것이 MBTI이다. MZ세대에게 특히나 인기와 공감을 받고 있다. 이후로 어떤 행동을 하던 사람의 MBTI에 맞춰 생각하기에 당연시 생각하고 다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사회는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와 같이 성 정체성을 확립한 이들에게는 MBTI처럼 관대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에서 성별은 성격과 달리 ‘이지선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정립한 개념인 프레임 이론의 프레임은 우리가 말한 인식의 틀과 같은 개념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이해하도록 해 주고 인간이 실제로 여기는 것들을 창조하도록 만드는 심적 구조라 칭하며 프레임을 안경에 비유했다. 우리가 특정 단어를 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프레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 소수자, 트랜스젠더도 같은 상황이라 생각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으므로 각자 나름의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대상의 가치를 판단한다고 말한다. 과거 유교 국가이자 현재 종교 중 기독교 비율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연스럽게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판적인 가치관과 기준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HIV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발병률이 제일 높다는 사실, 청소년 남학생들이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성매매 알바를 한다는 소식들이 들리면서 가치관과 기준은 어느새 두꺼운 인식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자와 일반 시민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듯 성범죄자나 자신의 병을 숨기는 사람과 다른 성 소수자 및 트랜스젠더를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가치관과 기준을 고수하여 그들을 특이한 사람들로 보는 것을 멈추고 우리가 기존의 틀에서 초월해야 한다. 



@Hannah Busing_Unsplash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 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률인 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 트랜스젠더에서 빠질 수 없는 화두다. 거론은 오래전부터 되어왔지만, 차별 금지 조항을 이부 규정하고만 있을 뿐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 통과된 적이 없다. 보수 기독교계의 강한 반발을 매번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사전 억제 및 위축시켜 기본권 보장에 심각한 문제 창출, 종교의 자유 제한, 역차별 초래 등의 주장들로 반대하고 있다. BBC news korea에서 하리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아동 성범죄자 같은 범죄자가 차별금지법이 되면 안 된다고 얘기해야 한다. 노인, 장애, 비정규직과 같이 본인 혹은 본인의 가족과 주위 사람을 위한 제정일 수 있는데, 이렇게 두는 것은 방관일 수 있다.” 하리수 씨는 인터뷰에서 말한 노인, 장애, 비정규직을 본인 혹은 본인의 가족이나 주위 사람일 수 있기에 그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위의 인터뷰 내용에서 빠진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 또한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주변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에서도 비정규직, 장애, 노인, 여성이 아닌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주장들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이자 꽉 막힌 인식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정규직, 장애, 비장애, 노인, 아이, 여성, 남성, 성 소수자, 트랜스 젠더 등 모두 다를 바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편협한 사고와 꽉 막힌 인식, 굳어버린 가치관을 초월하고 인식의 폭을 넓힌다면 보수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주장들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라가 변하는 건 시간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변화에 따라 나라도 변화한다. 성별 정정 허가 판결이 난 이후 16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큰 변화가 없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인식이 넓어지고 변화한다면 짧은 시기 내에 화합의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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