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나를 다시 부르는 순간

by 강민주

아침이 밝았다.


빛이 창을 넘어 들어오면 나는 하루가 시작됐다고 생각하기보다
무언가가 나를 다시 불러낸다고 느낀다.

“오늘은 어떻게 살 거니.” 그 질문이 빛의 모양으로 내려앉는다.


아침이 온다는 건 해야 할 일이 시작된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다시 돌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침.jpg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돌본다’는 말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고
지금은 누군가의 할머니이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산다.

돌봄은 늘 바깥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가끔 묻게 된다.


나는 과연 나를 얼마나 돌보고 있을까.


어제 손녀딸이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오늘은 등원을 하지 않는다.
딸에게 잠깐 일이 생겨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KakaoTalk_20260225_092317889.jpg

일정표를 다시 들여다보며 머릿속에서 몇 개의 시간을 옮겼다.

‘오늘은 조금 미뤄야겠네.’ 그렇게 하루의 방향을 고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 계산은 힘을 잃었다.

아이들은 목적이 없다.
성과도 없다.

평가도 없다.

그저 지금 웃고
지금 뛰고
지금 궁금해한다.


작은 손이 내 손을 잡아끈다.
“할머니, 이거 봐.”


그 한마디에는 설명도, 설득도 없다.
다만 지금을 함께 보자는 초대만 있다.


아이의 웃음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자기 세계에 몰두한 눈빛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내 안에서 늘 돌아가던 생각의 톱니바퀴가
잠시 멈춘다

KakaoTalk_20260225_092317889_01.jpg

해야 할 일,
정리해야 할 관계,
결정해야 할 문제들.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조용해진다.


나는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아이들이 나를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해관계를 모른다.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본능이 가리키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나는 그 곁에서 ‘어른’이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상담실에서 수없이 말해왔던 것들.
“지금 여기에서 느껴보세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 말을 오늘은 내가 배운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잠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아침이 밝았다는 건 또 하루를 견디라는 신호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라는 부름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돌봄은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의 웃음 속에,
작은 손의 온기 속에,
이유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조용히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잠시 괜찮은 사람이 된다.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안다.


나를 돌본다는 건 특별한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장면을 도망치지 않고 함께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아이가 자라는 속도와 나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