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8일의 글
봉준호는 분명 한국의 거대한 감독이자 위대한 감독이다. 봉준호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일지라도,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아마도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빛나는 커리어를 가진 감독으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이래 그는 늘 비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비전을 보여주었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감독이 되었다. 현 충무로를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봉준호가 될 것이다.
봉준호의 작품에서의 강점을 몇 개만 나열해보자면 첫째, 쉽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가 반드시 어려워야 할 필요는 없다. 쉽다는 것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절대 다수가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보편성’의 측면에서, 쉬운 것은 분명히 강력한 힘이 된다. 못 만든 예술 영화보다 못 만든 상업 영화가 낫다.
둘째, 강력한 메시지가 작동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블랙 코미디의 작법을 통해 담고 있다. 입봉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인간과 사회의 위선을 폭로했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암울하고 막막했던 시대상을 해학적이고도 날카롭게 담아냈다. <괴물>에서는 선동적인 사회를 풍자하는 요소를 오락영화의 틀 아래 기막히게 녹여냈고 <마더>에서는 존경받는 지위를 가진 이들의 위선과 소시민들의 선민의식을 비판했다. <설국열차>에서는 계급투쟁이라는 주제를 절묘한 야심으로 구현해냈고 <옥자>에서는 자본주의의 밑낯을 동화적인 테마 아래 코믹하면서도 서늘하게 비판했다. <기생충>에서는 직관적인 이미지와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사회적 계급의 수직적 레이어를 그려냈다. 그는 단순히 눈요기만 즐거운 오락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또한 과시적인 미장센으로 유아적인 자아도취에 빠지지도 않는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프레임 안에 신랄하고도 대담하게 투영한다.
셋째, 독창적이다. 흔히 말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감독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이 감독은 장르적 공식을 따르면서도 장르적 공식을 비틀어 안정성과 독창성을 모두 가져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쉽게 말해 영화가 굉장히 스무스하다. 봉 감독 스스로 팬을 자처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그것처럼, 봉 감독의 영화는 항상 프레임 안에 동력이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예를 들자면 <괴물>. 극 초반 모두가 기대하던 괴물을 가감없이 드러낸 이후 이야기를 사회적인 의제로 확장시켜 예상할 수 없는 흐름으로 몰고 나간다. 또한 <기생충>에서 역시 모두가 예상할 흐름으로 유려하게 전개시키다 중반 이후부터 새로운 막을 열어 주제와 서사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나 역시도 <기생충>에서 작중 번개가 친 이후 무드가 급격히 전환되는 순간부터는 정말 미친 듯이 영화에 빨려들어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 감독의 영화를 볼때면 느끼게 되는 왠지 모를 아쉬움 혹은 의문점들이 늘 존재한다. 늘 완벽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겠냐마는, 또한 누군가에겐 매번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만한 인물이라는 점에 백번 동감하는 바이지만, 개인적인 감상에선 이 감독의 영화를 볼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비판을 가장한 투정과 심술을 좀 부려보고자 한다.
봉준호의 영화를 보는 도중엔 가끔 지나치게 도식적이거나 공산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이는 봉 감독이 영화를 지나치게 잘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스스로도 스스로를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한다지만 너무나 치밀한 그의 방식으로 인해 봉준호의 인장처럼 여겨지는 ‘앙상블’ 연출, 물론 훌륭하지만 지독히 기계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에서의 식사 시퀀스, <기생충>에서 기택네와 문광네가 서로 뒤엉켜 싸우는 시퀀스. 감독 특유의 리듬감과 유머는 인상적이었지만 보면서 이질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받아 의아했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직조된 씬들을 접하면서 역설적으로 장면 가득 뻣뻣하게 경직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뿐일까.
두 번째, 나무보다 숲을 바라보는 서사로 인해서인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력이 없다. 그의 영화 자체에 매력은 있을지언정, 후술할 <마더>의 김혜자를 제외하고선 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봉준호라는 거대한 공장이 만든 기계 속의 톱니바퀴 같다. 그의 인물들은 서사가 달려가는 결말의 거대한 인력에 맥없이 끌려가는 부속품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에선,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는 감독의 특징이다, 비판점이라면 비판점이겠지만. 그래서인지 봉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혹은 보고 나면 굉장히 잘 만든 영화라는 감탄은 하게 되지만 소위 말해 가슴에 꽂히는 감동이 오는 순간은 나에게는 없었다.
세 번째, 봉테일 봉테일 하지만 사실 나는 썩 와닿지는 않는다. (물론 그 역시 이러한 수식어가 갑갑하다고는 언급했다.) 분명 유독 그의 영화에선 디테일이 많으며, 이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찬양 영상’이 양산된다. 이를테면 “<기생충> 속 인물들이 선을 넘었던 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그가 심어놓은 ‘직관적 상징’들을 보여주는 영상 같은.
좋다, 좋은데 그런 것들이 그 영화의 비밀인가? 그런 상징들이 가득하면 그 감독이 거장으로 인정받는 것인가? 그러한 상징들을 모두 찾아내면 우리가 그 영화를 100% ‘이해’한 것인가? 가끔 봉 감독은 이러한 상징들을 너무나도 많이 심어놓아 마치 우리로 하여금 이것들을 찾게 하는 ‘하이드 앤 식 게임’을 하게 만든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 이것마저 크리스토퍼 놀란과 비슷하다. 몇 년 전 <인터스텔라> 에서 등장하는 옥수수밭(?)이 사실은 놀란이 실제로 수 년간 재배했다는 비하인드가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이를 갖고 놀란을 앞다투어 찬양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었다. 물론 이를 갖고 감독의 완벽주의를 인정하는 수준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더 나아가 이를 가지고 감독의 능력을 심히 ‘올려치기’ 한다거나, 그 영화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다거나 하는 현상은 썩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4번째 장편 영화인 <마더>는 심히 이질적이고 독보적인 작품이다. 꽤나 비슷한 무드와 리듬을 가진 그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마더>는 시종 차갑고 심각하며 서사보다 인물이 중요한 영화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봉준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봉 감독의 인생영화 리스트 등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영화 취향을 생각하자면, 아마도 <마더>가 그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렇게 작가주의적이고 내내 어두운 영화를 만드는데 투자를 어떻게 얻은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이지만 그건 차치하고, 그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우선 <마더>에서는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노골적이고 구도적인 상징들이 다소 덜했던 것이 맘에 들었다. 그러한 면에서 마치 이스터에그를 찾아다니는 게임 같았던 가장 최근작인 <기생충>과는 사뭇 다르게, 이 영화는 상징과 은유를 감춰놓지 않는다. 이미지는 간결하고 메시지는 거대하다. 오프닝과 엔딩은 혹자의 말대로 소름 끼치도록 탁월하게 조응한다.
또한 <마더>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깊은 영화이다. 어머니라는 한 명의 인간이, 모성애라는 숭고한 관념이 어디까지 엇나가고 폭주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탐구한 작품인데,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소재이지만 아무나 그 심연을 이처럼 깊게 건드릴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마더>가 봉준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해외에서 저언급 내지는 저평가를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하는데, '서양'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마더>라는 영화 저변에 배여있는 미묘한 에너지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마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한국, 더 나아가 동양의 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모성애라는 관념이 어떠한 위치와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들과 함께 잠을 자는 마더, 아들의 소변을 빤히 바라보는 마더, 혹은 마더의 가슴을 만지는 아들. 특히나 마지막의 예시는 '서양'의 시선에선 명백한 근친의 암시겠지만 우리의 시선에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하고도 미묘한 무드를 감지할 수 있지 않던가.
봉준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태도가 놀라웠던 지점은 지나치게 신성시되고 불가침되었던 모성애를 대담하게 비틀어내는 그 담력에 있었다. 추가적으로, 상술했던 바와 같은 궤도에서 '국민엄마'라는 수식어를 지닌 김혜자라는 배우를 선택한 효과는, 분명 김혜자라는 인물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레퍼런스가 갖춰져야 극대화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한국적이다. 이런 영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음은 한국의 복이다.
봉준호는 <기생충>을 통해 아시아의 어떤 감독도 이루지 못한 전인미답의 커리어를 이뤄냈다. 물론 작금의 상황에서 봉준호를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전설적인 거장과 평가를 나란히 하는 일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가 아시아의 감독들 중 얼마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지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먼 훗날 그의 커리어가 끝이 날 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거장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기생충>으로 가장 높은 고지에 오른 그가, 앞으로 그저 그런 평작들만을 내놓는 감독으로 남게 될지, 혹은 지금까지 그가 그랬듯 위대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낼지 그의 차기작들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