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8일의 글
연극이 아닌 영화에서, 연기란 사뭇 오묘한 요소이다. 배우의 역량과 컨디션에 따라서나 혹은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서 배우는 경력 최고의 연기를 선보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익룡 연기와 로봇 연기를 선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협녀>에서의 전도연은 아마추어 같았고 <매트릭스>에서의 키아누 리브스는 '네오'의 캐릭터를 완벽히 체현한 연기의 도사 같았다.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당시 14세의 야기라 유야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거장의 공로가 컸을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찬/반이 갈리는 분야일 것이다. <샤이닝>에서의 셜리 두발의 연기가 훌륭했는지, 훌륭하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논쟁거리이지 않던가. 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역대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라 생각하며, 그의 연기는 영화 안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생각을 받는다. 그러나 혹자는 그의 연기가 과시적이고 부담스럽다며 싫어하기도 한다. 나는 <아수라>의 정우성의 연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수라>에서 그의 발성이나 시선 처리 같은 디테일이 뛰어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운 점과 극 중 그의 어색함 넘치는 욕설마저 그가 연기한 '한도경'이라는 인물의 특징과 제법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표현인 걸 알지만, 연기와 연기력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약간 구분해야 하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연기'력'은 배우 스스로의 'skill'의 영역인 것 같고 '연기'는 프레임 안에 담기는 모습 - 그것이 배우의 타고난 피지컬이든 감독의 디렉팅으로 인함이든 - 즉 'image'의 영역인 것 같다. 이를테면 멜로 장르에서 관객의 설렘을 유발하기 위해 캐스팅한 배우들의 잘생긴 마스크, 이 또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연기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화양연화>에서의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이라는 피사체 자체, 이 또한 연기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누가 봐도 잘하는' 연기들이 있다. 이런 케이스는 대부분 강렬하게 폭발하는 연기이다. 예를 들면 <위플래시>에서의 문어대가리, <조커>에서의 와킨 피닉스, <밀양>에서의 전도연,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 등이 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마주한 관객들의 감상은 분명 "와 연기 잘한다."로 귀결되지 않을까.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이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닌, '누가 봐도 잘하는 연기'의 경우라는 것이다.
또한 계산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는 누가 봐도 잘하는 연기일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안소니 홉킨스 등등. 만약 특정 장면에서 특정 인물이 슬픔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면, 모든 관객이 인물의 감정을 정보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연기가 계산적인 연기일 것이다. 말이 길지만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아 저 사람 지금 슬프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연기를 주로 선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두 명을 대라."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아마도 이병헌과 송강호가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을까. 두 배우는 지난 20년간 가장 빛났던 배우들이며 수많은 작품을 통해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다. 때로는 한 작품에서 함께 연기를 선보였으며 언제나 수많은 이들을 통해 비교되어 왔다.
연기에 대해선 문외한일 뿐이기에 나의 의견에 어떠한 일말의 전문성도 없는 사견이지만 그저 두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들의 차이를 내가 느낀 대로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두 배우는 외모도 다르고 이미지도 다르며 연기의 스타일도 다르다. 배우의 연기법은 여러 요소로 인해 취향이 갈리는 분야일 것이다. 두 배우의 우열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은 아마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선 두 대배우의 우열을 가리기보단 차이를 생각해 보고 그들이 보여준 그 탁월한 모습들을 다시금 반추해 보도록 하자.
미리 밝히자면 나는 국내 남자 배우 중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이병헌이다. 배우의 기본 피지컬인 음색과 발성(물론 이병헌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발성을 완성한 케이스다.)을 많이 신경 쓰는 나로서는 이병헌을 송강호보다 더욱 좋아하게 된다. 또한 내가 약간 얼빠 기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남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국내 배우는 송강호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많은 이들이 이병헌을 추앙하는, 아니 신격화하는 제1의 요소로 드는 것이 바로 연기 '스펙트럼'이다. 이병헌과 송강호를 비교할 때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송강호는 연기 폭이 좁아.", "송강호의 연기는 다 거기서 거기야." 정말 진심인가? 나는 이 점에는 동의를 하지 못하겠다. 송강호의 사투리 억양을 이유로 그의 연기가 매번 똑같다 생각하는 것일까? 한 영화의 흥행이 반드시 그 영화의 작품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송강호가 이병헌보다 흥행한 작품의 수가 많기 때문에 아마도 평균적으론 대중들은 송강호의 모습에 더 많이 노출되었을 것이다.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배우를 자주 접해 그 배우의 얼굴에 익숙해진 것'과 '그 배우의 연기 폭이 좁은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헌의 연기 스펙트럼은 충무로의 배우 중 최상위권이다. 이 점에선 말이 필요 없다. 이병헌은 <광해>에서의 지엄한 군주의 역할도,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헐렁한 소시민의 역할도 완벽히 소화한다.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 선보인 내내 강렬하게 폭발하는 경호원의 모습은 탁월했으며 <싱글라이더>에서 보여준 힘을 뺀 섬세한 연기는 역시 훌륭했다. 특히 1인 2역을 연기한 <광해>의 경우 낮고 묵직한 발성과 가볍고 흔들리는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스터>에선 필리핀식 영어를 구사하며 <남산의 부장들>에선 그 시절의 콩글리시를 구사했다. 이병헌의 그 다채로움을 보고 있자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송강호의 연기 스펙트럼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 어떤 순간에는 이병헌의 그것을 넘어서는 듯 보이기도 한다. 나는 <복수는 나의 것>과 <밀양>의 송강호가 도무지 같은 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은 섬뜩할 정도의 건조함과 차가운 피비린내가 가득한 인물이지만 <밀양>의 종찬은 대한민국 어디엔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살아가고 있을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이었지 않은가.
나는 <살인의 추억>과 <박쥐>의 송강호가 도무지 같은 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 속 박두만 형사는 시대의 먼지를 가득 머금은 '만두 박'의 형상이지만 <박쥐> 속의 상현은 지금껏 송강호의 모습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매혹적이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주 언급되는 배우들이지만 여전히 위험한 비교를 하나 해보자. 배우가 배역에 접근하는 부분에 있어, 나에게 이병헌의 연기는 로버트 드 니로 같으며 송강호의 연기는 알 파치노 같다. 이병헌은 배우가 배역이 된다. 송강호는 배역이 배우가 된다. 내 감상으론, 이병헌은 자신이 맡은 배역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분석하는 느낌이라면 송강호는 자신의 특징을 배역에게 덮어 씌우는 느낌이다. 이병헌은 마치 로버트 드 니로처럼 자신의 외형을 배역에 맞춰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송강호는 알 파치노처럼 배역을 자신에 맞춰 개조해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느낌이다.
이병헌의 연기를 보며 많은 이들이 "이병헌의 연기를 보면 항상 다른 사람 같다, 그의 다른 배역이 떠오르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 동의하는 바이다. 대부분의 배우의 경우는 독보적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인물, 혹은 특정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이들은 여전히 <타이타닉>의 '잭'을 떠올릴 것이며 '키아누 리브스' 하면 아마 많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캐릭터는 <매트릭스>의 네오일 것이다. 이젠 하나의 밈처럼 굳어진 배우 이경영의 이미지는 무언가를 진행시키는 고위층 관료의 모습일 것이다.
한 배우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라거나, 그가 너무나 유명한 배우이기에 스크린 바깥에서의 그의 행적이 몰입에 개입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마냥 바람직한 방향인진 의문이 든다. 톰 행크스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순수하고 올곧은 미국 소시민의 형상일 것이기에 만약 그가 조커나 안톤 쉬거와도 같은 역할을 맡는다면 많은 경우 그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이 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버넌트>의 경우 우리가 그의 연기를 보며 과연 주인공인 '휴 글래스'에게 몰입을 했던가, 아니면 그에 앞서 오스카를 수상하려는 디카프리오의 발버둥을 느꼈던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배우 스스로에게 썩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배우 이병헌이 보여주는 '천의 얼굴'은 분명 그의 능력이자 자산이다.
이병헌은 속된 말로 '쪼'가 없다. 그만의 버릇을 찾기가 힘들다. 이병헌은 미친 듯이 계산적인 동시에 캐릭터에 동화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배우의 모든 테크닉을 요구하는 클로즈업 장면들을 볼 때마다 그 디테일에 감탄하곤 하는데,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 호흡의 강도 등을 엄정하게 조절하는 그의 모습에 매번 인상적이었다. CF촬영에 임할 때조차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감독의 이전 작품들까지 연구해 온다는 그의 일화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인물을 분석하는 그 프로페셔널함이 어떠한지를 짐작케 한다.
이병헌의 표정 연기를 볼 때면 도저히 저 방법보다 저 인물을 더 잘 표현할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를 보면서 관객이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쉽게 받지 않는 이유는, 그의 모든 몸짓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한다는 것을 관객들 스스로가 강하게 인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광해>의 미공개 엔딩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장면과, <악마를 보았다>의 엔딩 장면을 들 수 있겠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 이병헌의 표정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표현한 훌륭한 예시일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선보이며 모든 순간 정답에 가까운 완벽함을 연기하는 배우. 충무로에 과연 이런 배우가 몇 명이나 될까.
송강호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개성을 죽이는 연기와 개성을 살리는 연기, 계산적인 연기와 동물적인 연기 등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밀양>의 종찬은 송강호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전도연의 배경으로 복무하였으며 <넘버 3>에서의 그 전설적인 토토토토 연기는 배우 자체의 스킬로서 만들어진 장면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밀정>의 후반부 재판 장면에서 두 진영 간의 괴리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배역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듯 보이며 <사도>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지 7일째 되던 날에 나누었던 대화 장면에서의 송강호의 연기는 나에겐 배역 그 자체에게 극적으로 몰입한 동물적인 감각의 연기로 느껴졌다.
연기를 열정으로 하는지 이성으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송강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연기를 뜨거운 열정으로 하는 거 같지만, 그 이면엔 논리적인 냉정함이 있어요. 계산적인 머리가 아니라 이성적인 머리가 필요해요. 차가운 이성에서 열정도 나오고 인물과 세상을 보는 창조력도 나오는 거죠."
앞서 이병헌을 찬양하는 많은 이들의 주된 논리가 "이병헌의 연기를 보면 항상 다른 사람 같다."라는 것을 언급했고 실제로 나도 이러한 의견엔 공감하는 바이지만, 또 한편으론 약간 다른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과연 송강호의 경우와 같이 모든 배역을 '송강호화'시키는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다. 한 배우의 이미지가 배우 박성웅(이중구)이나 다니엘 래드클리프(해리 포터)와 같이 '특정한 배역'으로만 떠오르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특정한 연기 스타일'로 떠오르는 것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송강호의 연기는 때론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맡은 특정한 씬에 대해 누군가는 그보다 더욱 정석적인 연기를 선보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때론 정답처럼 보이진 않는 그의 모습 때문에 송강호의 연기는 늘 개성이 넘치며 그 어떤 배우와도 다르다.
송강호가 'Vogue Korea'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이야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관객들이 저 장면에서 이렇게 들어올 것이다, 예상하는 걸 정반대 방향에서 치고 들어가는 거죠. 박찬욱 감독이 송강호는 답안지에 정답이 아닌 답을 적는데, 그게 더 정답일 때가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정답을 연기하면 첫걸음부터 잘못 간 거라고 얘기해요. 항상 다르게 비틀어서 시도해 보라고. 골대 앞에서 엉뚱한 슛을 하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자꾸 넣어봐야 강한 슛을 넣는 선수가 되는 이치예요."
자신만의 답을 찾고 이를 통해 매번 생생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세상에서 오직 송강호만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연기. 송강호는 문자 그대로 "One Of A Kind"의 배우이다.
둘을 좀 더 비교해 보자. 내가 본 이병헌의 모든 작품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매번 특별한 인물로 보인다. 내가 본 송강호의 모든 작품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때론 지극히 평범한 인물로 보인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병헌은 모든 작품에서 주연처럼 보인다. 그의 캐릭터 홀로 무슨 만화에서 튀어나온 인물인 양 튈 때가 있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연으로 출연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과연 이병헌이 그 개성을 누른 채 철저하게 '안 보여야 하는' 배역을 맡았을 때 과연 이병헌이 '안 보일' 수 있을까?
또한 이병헌의 연기력이 지나치게 '완벽'한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씨네 21의 김혜리 평론가는 이병헌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연기를 두고 "치밀한 노력으로 만든 자연스러움 같다."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꽤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항상 '영화 속의 인물' 같으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이병헌의 연기를 항상 '픽션' 속의 '퍼포먼스'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의 퍼포먼스는 항상 최고였지만 나는 한편으론 그가 항상 '연기'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송강호의 경우 자신의 배역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역할이라면 철저하게 조연으로 가려지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밀양>이 그랬다. 송강호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은 절대 주연 배우 전도연의 그것을 넘어서지 않았다. 송강호의 모습을 볼 때면, 금방이라도 우리네 옆집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평범함은 편안함의 의미일 것이다. 또한 자연스러움의 의미일 것이다.
흔히 '생활연기'라는 키워드로 송강호의 연기를 설명하곤 한다. 송강호는 "나 연기한다!"라는 식으로 과하게 힘을 주어 연기하지 않는다. 사연이 많고 사건이 넘치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이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움을 포착하는 연기는 그보다도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밀양>과 <살인의 추억>과 <택시운전사>가 그랬듯이.
두 배우는 다르다. 나는 송강호가 <달콤한 인생>의 선우를 맡는 모습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병헌이 <사도>의 영조를 맡게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송강호는 이병헌이 연기한 <지 아이 조>에서의 섹시한 스톰 섀도우를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병헌은 송강호가 연기한 <살인의 추억>에서의, 시대의 더께가 내려앉은 박두만 형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
두 배우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두 배우의 우열에 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완벽함을 보여주기에 나는 그를 충무로의 배우 중 가장 좋아하며 나에게 송강호라는 배우는 어떤 영화에서건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보여주기에 나는 그를 충무로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할 뿐이다. 두 배우가 이리도 다르기에 관객의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하며, 이런 두 대배우가 충무로에 있기에 그들의 연기를 마주할 때 매번 행복하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이 선보이는 황홀한 연기에 감탄과 감동을 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