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큐브릭의 영화를 보는 행복

2021년 8월 27일의 글

by 육육삼의 삼삼칠

글에는 <시계태엽 오렌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감독'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현역 감독 중에서 꼽자면 나는 해외에선 감각적이고 강박적인 작법을 자랑하는 웨스 앤더슨, 물에 물감이 떨어지는 것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왕가위, CF 감독 출신답게 쿨하고 섹시한 영상을 만드는 데이빗 핀처, 정밀하고 초현실적인 영상을 만드는 라스 폰 트리에가 떠오르며 국내에선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인 이명세와 강렬한 표현주의를 보여주는 박찬욱이 생각난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상을 만들었던 감독을 한 명만 정하라면 누구를 떠올릴 것인가? 나는 이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늘 이야기할 감독은 영화 역사상 가장 이질적이고 환상적인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다.


이미 영화의 역사에서 그 이름이 공고한 위대한 감독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이 자리에서 감독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본 글에선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감독의 성향은 어떠한지, 그에 대한 담론의 내용에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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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배 꼬인 것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많은 상업 영화들에서 내세우는 간편한 위로를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다.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영화 속 클리셰의 빈번한 사용에는 특별한 거부감이 없지만 공식과 관습을 답습하려는 나이브한 그 태도에는 지지를 보내고 싶지 않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이 감독은, 그처럼 영화계의 위대한 전설로 추앙받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인 <쉰들러 리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다. 그게 쓰레기라거나 스티븐이 재능이 없단 뜻은 아니다. 다만 홀로코스트 영화는 아니다. 이유는 그게 600만이 학살된 영화가 아니라, 600명이 살아남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건 성공의 이야기인 것이다. 쉰들러 리스트의 결말이 어땠어야 했는지는 누구나 안다. 전후에 쉰들러는 독일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2차 대전 때 유태인을 도운 건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로 이민 가야 했다. 영화는 그 사실을 감추고 다른 결말을 낸다. 그건 감상적인 키치에 불과하다. 그건 누구나 알 만한 것이다. 심지어 스티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겠지만 이 코멘트야말로 감독의 성향을 고스란히 느끼게끔 해 준다. 이 감독은 이런 사람이다.


100년이 조금 넘는 영화의 역사이기에 고전과 현대의 경계가 어디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70~80년대를 경계로 하여 '고전 영화'라는 섹터를 구태여 만든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빌리 와일더와 더불어 고전 영화를 입문할 수 있는 1순위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내가 영화에 입문하던 초기 시절 고전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하던 때 처음으로 내게 충격을 느끼게 해 준 감독이다.


CG와 같은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영화의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창조하는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인 이미지들은 고전 아날로그 특수효과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이러한 편견이 단번에 깨진 순간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만났을 때였다.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영화의 영상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범위는 드라마틱하게 넓어졌으나 이러한 '기술 발전'을 인간의 '상상력의 발전'과 동의어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CG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것이 얼마나 리얼한가 리얼하지 않은가를 떠나 감독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현하기 위해 독창적인 스타일과 기술들을 사용했었고 이 지점에서 예술적 성취는 이루어졌고 발전해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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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을 설명하는 데 있어 영화의 비주얼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분명 큰 실례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역사상 가장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영상을 선사한 비주얼리스트이다. 큐브릭이 보여준 비주얼에 대한 집착은 이미 유명한데 <배리 린든>에서는 로코코 시대의 미장센을 표현하기 위해 인공적인 조명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자연조명만으로 화면의 명암과 깊이감을 표현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어떤 지점에서 일시정지를 하더라도 완벽한 구도와 완벽한 미감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탁월한 영상을 가진 영화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비주얼을 보다 보면 마치 팝 아트의 미술품을 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감각적인 조형물들이 가득하다. 성적 알레고리가 가득한 조형물 아래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 사회를 담아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닐 정도로 환상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모든 우주 영화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 아래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그래비티>의 경우엔 우주라는 공간에서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을, <인터스텔라>의 경우엔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후반부 초현실적인 체험 장면 등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샤이닝>은 공포라는 장르가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정석적인 영화이자 정점 같은 영화이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포가 있고 넓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포가 있다면, 후자의 경우 공포라는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한 사람과 대비되는 드넓은 공간감을 표현하는 일일 테다. 후술 하겠지만 <샤이닝>은 너무나도 드넓고 이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호텔을 영화의 무대로 우선 설정한 뒤, 호텔 내부의 공간마저 공허하고 기이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호텔 내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도록 이어진 숏들, 이곳이 결코 일반적인 공간이 아님을 암시하는 호텔 바닥의 무늬와 붉은빛의 화장실. 누군가의 시선처럼 느껴지듯 오묘한 시점 쇼트의 스테디캠 등이 그렇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때, 나의 시선이 영화의 세계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낄 때, 궁극적으로 '미지'라는 공간과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때, 인간의 마음에서 공포는 발생한다. <샤이닝>의 이미지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만신전에 오른 거장들의 영화엔 독자적인 정서와 물성이 느껴진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불안감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기계적인 구도에서 비롯되는 엄정함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성스러움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음이 그렇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선 다른 감독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최면적인 리듬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 감독의 특징은 느린 것이다. 큐브릭의 영화를 느리다고 푸념한다면 이는 정당한 비판의 영역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는 약점이 아니라 감독의 취향이고 성향이니까.


특히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감독의 이러한 특징이 제대로 드러난다. <시계태엽 오렌지>와 <샤이닝>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 보도록 하자. <시계태엽 오렌지>의 첫 장면은 주인공 알렉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어 아주 천천히 줌아웃을 하며 강렬한 배경과 불쾌한 정서를 각인시킨다. <샤이닝>에서도 마찬가지다. 역동적인 '버즈아이 뷰'를 활용하며 주인공 가족이 머무는 호텔의 공간적인 고립감을 너무나도 탁월하게 묘사하는 한편 주인공의 차를 집요하게 쫓는 초현실적인 시점을 보여주며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기도 한다. 불안정하게 수직으로 흐르는 크레딧과 레이철 엘카인드가 작곡한 불길한 음악까지, 영화가 갖고 있는 기이한 최면성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


많은 영화에서 감독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몰입감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해 강렬한 이미지와 의미심장한 사운드를 섞어 사용한다. 심장을 클로즈업하고, 고가 도로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17분의 롱테이크를 사용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물론 큐브릭의 방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큐브릭의 오프닝이 다른 영화의 오프닝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여타 영화의 경우 오프닝의 목적이 관객을 영화 속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라면 큐브릭의 영화의 경우 오프닝의 목적을 관객이 영화 속 공간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는 것에 둔다는 데 있다. 즉 큐브릭은 오프닝부터 등장하는 영화의 공간을 따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이 기이한 공간에 이미 들어와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심히 이질적인 "그들만의 공간"에 이미 들어와 버린 것을 알아챈 관객이 뒤늦게 영화에서 시선을 한 뼘 떼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큐브릭은 이를 가능케 하지 않으려 한다. 큐브릭이 관객에게 거는 '최면'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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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계에서 완벽주의자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것처럼도 때론 느껴지지만 스탠리 큐브릭에게 있어선 이 단어가 거추장스럽지 않을 것이다. 큐브릭을 설명하는 표현 중 "영화계 최후의 군주"라는 수식어가 특히 유명한데, 이 말처럼 그가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찍은 <롤리타>에서부터는 영화 연출의 모든 것을 총지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대 감독 중에는 이러한 부분에서, <소셜 네트워크>의 오프닝 시퀀스를 99번이나 찍었다는 등의 일화가 있는 데이빗 핀처가 유명하지만 큐브릭은 이 부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간단히 몇 가지 일화를 나열해 보자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선 디테일한 고증을 위해 나사에게 의뢰를 부탁했고 <샤이닝>은 위 사진과 같이 작게는 넥타이의 디자인부터 크게는 텅 빈 공간감을 위해 직접 호텔을 짓기까지 했다. 극 중 등장하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잭'의 타이핑 종이를 일부러 오타까지 내며 일일이 작성하게 한 것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배리 린든>에선 인공조명이 없던 시대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광과 촛불만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연출의 전권을 가지지 못했던 <스팔타커스> 제작 시절에도 수 천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들에게 한 명 한 명 번호를 매겨 각기 다른 행동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 완벽주의자적인 성격 탓에 커리어 후기로 갈수록 신작을 내놓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매번 훌륭했으니, 인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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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한 감독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분명 대부분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그에 앞서 스탠리 큐브릭이 있었다. 큐브릭은 장르의 정복가다. 그의 초기작 3편인 <공포와 욕망>, <킬러스 키스>, <킬링> 그리고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은 스릴러의 장르를 띄고 있으며 <영광의 길>과 <풀 메탈 자켓>은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이다. <스팔타커스>와 <배리 린든>은 각각 고대 로마 시대와 로코코 시대를 다룬 사극이며 <롤리타>와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범죄 영화의 문법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통해 냉전을 냉소하는 신랄한 블랙코미디를 선보였으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샤이닝>은 각각 SF와 호러라는 장르의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스릴러의 히치콕, 서부극의 존 포드, 가족의 오즈, 코미디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특정 장르의 스페셜리스트라 추앙받는 감독들이 있다. (존 포드는 비서부극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지만, 어쨌든 서부극은 존 포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큐브릭은 '제너럴리스트'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선보인 모든 장르에서 큐브릭은 스페셜리스트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성취를 이뤄냈다. 큐브릭은 장르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영화의 스페셜리스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감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니컬함과 지독한 염세주의적 태도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스는 과학 기술에 의해 자신의 악한 본성을 교화당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결국 그 악한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 이후 생겨나는 인공지능의 반란을 다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나, 성관계 중 느낀 자신의 무력함이 공산당의 음모 때문이라 생각하는 황당한 한 장군으로 인해 결국 세계가 멸망하는 이야기를 다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도 그의 이러한 태도가 특히 잘 드러난다. 그는 항상 인류의 패배를 그린다. 문명의 발전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뤄낸 왕국은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결국 통제하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그의 일관적인 믿음을 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읽을 수 있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조작 음모론, <아이즈 와이드 셧>에 등장하는 일루미나티와 관련된 '삭제된 21분', 미 중앙정보국의 'MK울트라' 실험과 흡사했다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교화 과정 등 수많은 떡밥을 몰고 다녔을 만큼 큐브릭은 신비스럽고 비밀이 많은 감독이었다. 그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활발한 이유다. 영화 연출의 새 지평을 연 혁신적인 연출가인가, 혹은 기교 넘치는 테크닉에만 집착한 광대인가. 이와 관련해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인 연출 방식을 보여주는, 수면제 감독으로 유명한 감독 페드로 코스타는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큐브릭이 기교의 거장이라니. 나라면 카메라 뒤에서 요술을 부린다고 해서 거장이라고 하진 않겠다. 새로운 광대 하나가 나타났다고 하지. 난 큐브릭에게 거장이란 표현을 쓰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를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는 분명 거장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보아도 자크 타티가 훨씬 뛰어나고, 존 포드는 그에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주지만, 큐브릭은 마치 자신이 수백 개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들은 적어도 이렇게 찍는 게 더 멋있기 때문에 숏을 바꾸진 않는다. 큐브릭의 방식은 분명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숏에서 속이기 시작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


나 역시도 큐브릭의 영화를 볼 때면 그가 마치 전능한 신의 위치에 서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 놓는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가끔은 그의 전능한 척하는 태도가 오만해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큐브릭이 '작가'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전 이 숏을 굉장히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 내지는 부담스러운 점은 그의 영화가 '모든 순간' 완벽한 완성도의 영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감각이 너무나도 탁월한 탓에 느끼는 역설적인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그냥 힘을 뺀 채 흘러가도 괜찮을 순간에서도 강박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한 구도의 이미지를 선보이기에 영화 전체적으로 삭막해 보이긴 한다. 물론 한편으론 큐브릭과 같이 프레임 속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구도로 연출한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항상 이 부분에선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또한 큐브릭의 태도가 파시스트적이라며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일례로 <시계태엽 오렌지>의 경우 '폭력에 대한 폭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폭력의 맹점을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연출은 역설적으로 그 폭력에 대한 매혹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만들어져있지 않냐는 논조다.


내 생각은 이렇다. 큐브릭의 방법론이 어떤 소재에 관해 그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성향이라는 것을 고려하자면 그의 이러한 연출은 과장스러운 그의 연출과 더불어 하나의 블랙코미디를 만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롱에 가까울 정도의 냉소주의를 자신의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내는 감독이 큐브릭이기에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운" 연출들은 역설적으로 코미디를 생성하는 일종의 우화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나치게 신비화된 감독이라는 의견 역시 존중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론 큐브릭에 관해 지나친 오해나 비약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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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에게 닥친 가장 큰 장벽은, 과연 그 영화들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은 채 기어코 그 '시간'을 견뎌낸 영화들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영화들이며, 그러한 영화들을 우리는 '고전'이고 '클래식'이라 부른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시네필들은 여전히 큐브릭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많은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는 주제를 던질 때 항상 최상위권에 그 자리를 지키며, 그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만든 영화들마저 현대의 영화들에게 여전히 인용되며 오마주 된다.


큐브릭은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보다 앞설 것이다. 그의 모든 영화는 여전히 현대의 영화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