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나를 해치지 않게 하소서.

by 안흥준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의도치 않은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만남은 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나에게 삶의 가장 큰 목적과 동기를 주기도 했고, 동시에 그에 못지않은 고단함과 부끄러움을 안겨 주기도 했다. 45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젠 어느 정도 그 만남의 의미가 무뎌지거나 옅어질만도 한데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서 가장 깊은 번민과 가장 고요한 평안을 함께 주고 있다. 인생의 오르내림 속에 수많은 굴곡과 사연들이 겹겹이 쌓여 가듯 내 삶의 가장 큰 영역의 한 부분은 이 만남으로 인한 흔적들이 지금도 차곡차곡 포개져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순탄치만은 않았던 신앙생활의 고비는 삶의 곳곳에 있었다. 삶의 순간마다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고, 그 중 어떤 것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과 환경에서 찾아와 나를 혼란케 했었다. 그 많은 위기들 중에 내게 가장 힘든 요소가 있다면 삶이 오가는 사고도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의 종류와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신앙적 양심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은 그 무게가 달랐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바라본 나 자신의 민낯과 마주한 부끄러움은 단순히 남 앞에서 체면을 잃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였다. 내 안의 모든 의지와 열정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움이라는 올무는 내 삶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무기력함과 죄의식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허물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진 가장 내밀한 감정의 하나로 두려움이나 슬픔처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인간 본성의 자질로 인식되어 왔다. 한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체가 다른 생물들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체면과 자존심에서 비롯되거나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과는 결이 다르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첫 부끄러움은 단순한 수치스러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났다는 내면의 신호에서 오는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은 건강한 신앙과 양심을 가졌다는 증거로 더 많이 성숙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후의 삶의 모습은 크게 차이가 난다. 부끄러움이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의 계기가 된다면 또 다른 성장과 성숙으로 이어지는 기회가 된다. 부끄러움은 스스로를 낮추려는 내면의 목소리이자, 변화를 바라는 영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짐으로서 실수 앞에서 무너지는 대신 은혜를 붙잡고 일어서게 된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냉정해지는지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목격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부끄러움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기도하며, 좀 더 성숙한 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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