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 장사 없다.

by 안흥준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에 대한 다소 냉소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 말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을 담고 있다. 특히나 평생 마주하기 힘든 규모의 금전적 이익이 눈앞에 놓였을 때, 그 유혹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막대한 부를 이미 쌓은 이들조차 기업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 앞에서 혈연과 가족을 뒤로 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목격해 왔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그 장면들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반복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보편적 속성의 한 단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은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중의 하나이다. 물론 돈 자체가 곧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는 순간, 도덕이나 자존심보다 생존 본능이 앞서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안정된 환경에서 지켜지던 가치들도 현실의 압박 앞에서는 흔들리기 쉽다.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조금 더'를 향한 욕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돈이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인간의 판단과 선택 깊숙이 관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예, 보람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한 태도는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하다. 다만 거대한 자본이 개입된 상황에서도 그 기준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신념은 평온한 일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지만, 결정적인 순간 앞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조금씩 조정해 나간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조정이라기보다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비난 받아야 할 일인지,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을 것 같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야말로 한 사람의 가치관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정당한 과정으로 축적한 부를 가치 있는 곳에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점에서 돈 자체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판의 시선은 어쩌면 본질을 비껴간 판단일 수 있다. 돈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손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호황 속에서 과거 함께 일했던 이천 지역의 지인들이 수년 동안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은 분명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노력의 결과로 얻은 성취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해 퇴직한 회사의 노동조합이 경쟁사보다 높은 보상을 제시 받고도 추가 요구를 내세우며 파업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어느 수준에서 만족할 것인지의 기준은 결국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인데, 그 기준선이란 것이 채워질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성향의 일부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지난 3월, 결혼 30주년을 맞아 퇴직 과정에서 받은 호텔 숙박권을 사용하며 자본이 제공하는 편의와 여유를 잠시 경험한 바 있다. 일상의 범위를 많이 벗어난 그 시간은 쾌적하고 만족스러웠다. 돈이 삶의 질을 높이고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경험을 한 번 해보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무엇을 더 원하게 되는지, 그 욕망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문제는 돈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욕망의 크기에 있는것 같다. 돈은 삶을 보다 안정되게 만들어 주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만들어 결국은 탐욕과 비루함으로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조정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자신을 납득시키는 일의 반복이지 싶다. 다만, 우리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는 서툰 듯하다.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들을 보면서 또한 오늘도 그 돈 때문에 고심하는 나를 향한 넋두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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