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결과 바람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고 나니, 평소에는 몰랐거나 숨겨져 있던 내면의 본성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그동안은 드러나지 않던 생각과 태도, 그리고 사람의 본성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다소 불편하고 소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정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도 3년 전, 무지에서 비롯된 판단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크고 작은 갈등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사람의 됨됨이와 가치관이 이런 순간에야 비로소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이 소란이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사람의 그릇과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자연의 모습 속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고향이 바닷가라서 어렸을 적 크고 작은 태풍을 경험했었다. 태풍이 배와 선창가를 덮칠 때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것 같지만, 태풍이 잦아들고 찾아오는 평온함과 고요함은 태풍 이후가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바다는 한동안 혼탁했던 물이 이내 가라앉으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바닥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흙탕물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걷히고 나면 무엇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어린 시절 그 광경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혼란 이후에야 비로소 본질이 드러난다는 이치를 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숲 또한 마찬가지다. 거센 바람이 지나간 뒤에는 약한 나무들이 쓰러지고, 뿌리가 깊고 단단한 나무들만이 끝내 자리를 지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파괴처럼 보일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숲의 구조와 본질이 드러나는 정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생태학적으로 말하는 '교란' 역시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질서를 드러내고 진정한 경쟁력을 가려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그늘에 눌려 있던 작은 나무들이 빈 자리를 채우며 새롭게 자라나는 것처럼, 위기는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환난견진정(患難見眞情), 어려움과 위기를 함께 겪어낼 때에야 비로소 사람 사이의 진정한 마음과 관계의 깊이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평온한 시기에는 누구나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막상 상황이 흔들릴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본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위기의 순간에 곁을 지키는 사람과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사람, 책임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과 그것을 남에게 돌리려는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바로 이런 때다. 결국 위기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감춰져 있던 본질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지금의 자그마한 논쟁과 소란 역시 단순한 소음으로만 치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그것이 옥석을 가리는 과정이 되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잠시의 불편함과 혼란을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보다 선명해진 기준과 분별일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우리가 지금껏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읽는 눈을 키워온 것도 대개는 순탄한 날들이 아니라 흔들리던 그 순간들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가게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