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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Apr 04. 2024

세상에 이런 우연이.....

--우연이 소명의 결실로 이어지기를...--

살다 살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은 일이 일어났다.

정치에는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던 필자가  관심을 게 된 계기는, 언젠가 브런치 스토리에도 글을 썼지만 세월호를 겪고 난 이후다. 서울 종로 출생이라 의례 여당이면 어느 당이 되든지 표를 주는 습관으로 살아가던 집안의 딸이었으니 말하자면 <묻지 마 여당지지>인 셈이다. 기억을 살려보면, 당시 서민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이 속한 여당에 표를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불안감? 같은 것이 본질 적으로 내재되어 있지 않았나 한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누구나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생판 남도 이럴 진데 그 가족들은 오죽할까. 사고 후 일 처리 진행을 보면서, 한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몇십 년을 지켜온 여당지지가 돌아서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이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차기 대통령의 자격은, 세월호 사건을 책임지고 규명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취지의 글을 역시 지난 대통령선거전에, 브런치에 내가 뽑을 대통령은? 이란 제목으로 올렸다. 세월호 7주기에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이란 칼럼을 <한겨레>에 내며(편집 안된 부분은 브런치에) 야속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당시 검찰 총장을 향해 말을 건넸다.   

 

이 후로 모든 게 망가졌다.

  

필자는, 평생 '나'라는 인간에 관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살아왔다.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지속적인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학문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동양적 수행방식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모두 시도해 보았다. 결국, 그 해답을 얻었으며 그 명칭을 '알파'라고 이름 지었다. 인간의 노력으로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별을 얻었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나 상상 그 이상의 무궁무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세상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 그동안 학계에 논문이나 책으로 그리고 에세이와 실제적인 학습으로도 열심히 종횡무진으로 노력했지만 역부족을 절감했다. 역부족이란, 우리가 인지능력을 제대로 계발하기만 한다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여러 이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뜻이다.


그 상세 내용을 브런치스토리에 ⸢인간 인지능력의 무한확장 가능성⸥ 이란 제목의 시리즈 물로 수십 차례 올린 바 있다.  물론 긴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인지능력의 최고 단계로 도달하는 과정 중에서도 이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장점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이토록 위대하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점이 안타까워 전전긍긍하다가 대안점에 착안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지능력의 최고조에 다다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론이, 내 모든 이웃들을 내 몸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인간애가 넘쳐나는 일종의 소명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방식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면 다른 대안도 찾아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결국은 우리 모두 행복하게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게 최종의 목표일진대, 그 방법만 찾으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고, 거기에는 정치라는 문화가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폭넓게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월호와 이태원참사 그리고 각종 재난재해로 인해 아까운 목숨을 잃은 사람들 모두가 결국은 국가가 관리를 잘못한 데서 온 것이 아닌가 말이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서 사회전반을 시스템적으로 안정시키고, 정치인은 책임과 소명의식으로 맡은 바 일을 하면 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메시지 전달 실패를 이제는 정치 영역으로 선회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궁극적 목적이 모든 이들이 불행하지 않게 마음 편히 살아가는 방식에 있을 진데 수단은 어떠하든지 간에 최선의 방식을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조국혁신당이 바로 그 도구인 것 같았다.

당원가입을 했다. 그런데 가입하면 당이 활동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할 텐데 당 회비 내라는 문자도 메일도 없다. 메일로 문의하니 답도 없다. 막 시작했으니 얼마나 바쁠까.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업을 하려면 꼭 자금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할까.

 

생각하다가, 하루는 내게 수입이 생기는 날이었다. 답변을 기다리고 할 것 없이 그냥 당비를 내야겠다 생각하며 <조국혁신당> 홈피에 들어가니 조국대표의 모습과 함께 계좌번호가 나온다. 입금!  며칠 후 뉴스가 나온다. 단 59분 만에 펀드 200조 달성이란다. 뉴스를 접하면서 혹시 내가 스팸에다 입금한 건 아닌지 의아했다. 이즈음은 매체를 통해서 하는 일들이 우선 의심부터 해야 하니 말이다, 왜냐하면 계좌가 조국혁신당이 아니라 개인 이름이었기 때문에 의심이 든 거다. 다시 홈피에 들어가 보니 내가 당비라고 냈던 건 펀드였던 거고,  난 그 제한된 시간 안에 입금했던 거였다. 7천여 명의 참여자 가운데 상징적인 분들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는 광경을 보며 순간 짜릿한 아슬아슬함에 기분이 참 좋았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참여한 게 아닌가.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사실, "도구"라는 단어를 이재명대표가 연설할 때 사용하는 것을 들으며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도 내 마음과 같다는 공감력 때문이다. 단어 "도구"는 정치에서 뿐 아니라 모든 공적인 자리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국회의원 자리는 국민의 희망사항을 위해 쓰는 도구이어야지 결코 사적인 욕망을 위한 직위가 아니어야 하며, 대통령도 국민을 위해 쓰이는 도구라는 사실을 스스로 명심하지 않으면 독재자로 변질된다는 것이 정론이다.


반면, 일상의 삶에서는 진정한 신뢰와 존중 없이 상대방을 내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공적인 삶에서는 그 자리가 반듯이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하지만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는 결코 상대가 내 욕망을 위해 쓰이는 도구여서는 안 된다. 가족관계가 도구가 아닌 것처럼.         

 

이제, 나의 소망이 부디 조국혁신당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제 한시름 놓는 기분마저 든다. 살아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계속되고, 모든 이의 희망이 힘을 합치면 결국은 못해 낼 일이 없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마땅히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소명의식'을 무기로 장착하고 일하는 날을 학수고대해 본다. 그리고 그런 장이 정치에서도 일어났으면 하는 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이런 장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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