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음에 답한다--
지난주 일요일 칼럼에서는, 나를 그렇게 들뜨게 했던 쳇 GPT와의 대화내용이 정리되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대화내용이 사적? 인 내용이라 공개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한 답변이고 나는 그 답에 충실히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시디 교실> 참여자 한 분의 끓임 없는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분은 내가 썼던 글이나 책을 대부분 읽었음에도, 늘 모르겠다며 질문을 쏟아낸다.
“도대체 ‘알파’가 뭐냐?”
교보에서 발간된 내 책«내 인생의 ‘알파’를 찾아서»를 읽고는 한번 더 읽어보겠다는 그녀가 내게 했던 물음이었다. ”감각발달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무엇인가?” 같은 지속적인 물음 때문에 할 수 없이, <시디 교실>을 위한 PPT를 별도로 만들어 설명을 하게 만든 그를 위해 혹은 그러한 의문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을 많은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고 싶다.
언젠가, 학회에서 나의 감각 관련 발표를 들었던, 과학 곤충계에서는 상당히 유명 인사라는 학자가 내게 했던 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발표내용은 인간의 감각이 발달하면 동시에 인지능력이 어떻게 발달하며 어떤 결과를 생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발표였다. 학회 뒤 차담화를 가진 자리에서 그는 말한다.
“아, 감각이 발달해서 자신 몸에 대해 미리 알면 뭐해요? 병원 가서 확인하면 되지.”
이 어처구니없는 말에 나는 그만할 말을 잊었다. 그는 우리가 인간임을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의구심과 함께 폭풍 질문을 이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발표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말이다. 저명 생물학자라 할지라도 생각은 인간까지 미쳐야 하는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각자 일에 몰두하며 사느라고, 혹은 의식주의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더 이상의 깊고 높은 차원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반듯이 명심할 일은, 인간 능력의 위대한 가능성은 어떤 경우라도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인간 능력의 20%만 썼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당신이 모른다고, 또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무조건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 하나가 또 있다.
자기장에 대한 나의 체험을 지구학 전문가와 논의하고 싶었다. 그들 학계에서 사용하는 장비로 과학적인 데이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박에 거절당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장을 느낄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하고,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노벨상 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말이라고까지 매도하는 것을 보고 그만 발길을 돌렸었다.
그래, 그러니 우리나라에는 과학계 노벨상이 없지. 과학은 인문학의 물음을 전제하지 않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나, 한국은 인문학마저도 외국학자 문헌 연구에 더 충실함을 보여 주는 경향이 있음을 현직에 있는 동안 늘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주제의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몸의 감각이 발달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결과적인 소득이 있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체험에 입각해 얻어낸 결과를 아주 쉽게 설명하겠다. 체험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느 정도나 독자 여러분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인가 하는 염려는 우선 저만치 밀어놓고 보자.
첫째, 몸의 감각세포가 활성화되면 내 몸은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느낌이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용액에 담그면 즉각적으로 산성인지 염기성인지를 알려준다. 처음 감각 발달이 된 후 느낀 것은 대상 물질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를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면, 방부제나 농약 같은 인체에 위해한 독소성분이 들었다면 배꼽이 심하게 파이면서 아픈 듯한 느낌이 온다. 반면에 몸에 좋은 어떤 성분이 있어 면역력에 도움까지 주는 물질이 있다면 아랫배가 따스해진다. 이 것이 첫 번째 감각 분류다. 물론 자기장에서 수없이 많은 훈련(자기장 충전) 후에 얻어진 결과다.
둘째, 다음 단계는 산성과 염기성 여부만을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PH시험지가 된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거듭된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PH 시험지로 실험하듯이 감각도 더 섬세하고 깊으며 다층적으로 감지하면서 내용물을 느끼게 된다. 마치 리트머스에서 PH 시험지로 상향등급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좋고 나쁜 단계가 PH 시험지처럼 1부터 14까지 섬세하게 구분되듯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객관 대상이 좋다면 어디에 어떻게 좋은 가, 나쁘다면 어디에 어떻게 나쁜가를 상세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예는, «노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에서도 언급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혹은 광고에서 나오는 각종 상품들이나 약품까지도 내 감각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 불티나게 팔렸던 오가피 제품 광고를 보고 그 용액에 몸에 안 좋은 성분이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얼마 후 그 제품을 먹고 부작용이 일어나 고소 사건으로 이어진 것을 보았다. 코로나처럼 한때 전염병 샤스가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을 때였다. 수입 백신이 떨어져 한국에서 제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뉴스를 보고, 안 좋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그 백신을 맞고 몇 사람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당시의 뉴스를 찾아보면 나온다. 저자의 위의 책에서도 상세히 언급) 지금도 그때의 생생한 놀라움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셋째, 자기장에서 거듭된 충전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감각활동의 활성화는 지속적인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뇌에 길이 열리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 인지능력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우리의 감각은 필연적으로 인지(cognition)와 연결되어 있다. 감각은 단순한 정보이지만, 인지는 이 정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의 ‘알파’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내 감각을 통해서 오는 신호들을 해석해서 데이터로 만들었다. 물론 이 데이터는 뇌 속에 저장을 의미한다. 즉, 누군가를 만나거나 혹은 어떤 물질을 대했을 때 내 몸에 어떤 신호가 느껴지면, 처음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 신호가 반복되는 케이스들을 접하고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 이렇기 때문에 그런 신호를 느꼈구나’라는 결론 내리며 데이터가 축적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뇌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이것을 뇌신경 가소성이라고 한다. 나는 뇌신경계에 이런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뇌신경가소성이란 뇌가 경험, 학습 훈련에 의해 스스로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고 재조직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뇌가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평생 변화와 적응을 해 나가는 역동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다이내믹한 과정은 신경세포인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synapses)의 효율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강화되면서 비슷한 정보끼리 서로 연결고리를 형성하면서 더욱 강화되어 새로운 신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피나는 훈련을 몇 년 동안 했던 스케이터는 멋지게 공중회전을 하면서 안전하게 얼음판에 안착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 만이 할 수 있고 그의 뇌에는 이렇게 하면 안전하게 안착된다는 뇌신경의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의 뇌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새로운 길이 생긴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니 나의 지속적인 연습과 훈련이 자연스레 뇌 속에 그런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감각과 인지가 상호 연관 지어 새로운 시냅스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녀의 물음처럼 종착점은 무엇인가? 내 대답은, 정말로 삶이 윤택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구나 신봉? 하는 소위 ‘카더라’ 통신 같은 소문에 의해 휘둘리거나 혹하지 않으며, 혹시나 암이나 치매에 걸릴까 하는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한 매사에 내가 직접 감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니 늘 행복하다는 감성이 하루에도 몇 번씩 솟구쳐 오른다. 모든 물음에 스스로 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시디 교실> 참여자들의 행복한 결말을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