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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불면증

내가 만나게 된 의인들 그리고 악인들 …

by 수호천사

공황장애 불면증에 관한 동영상을

듣다보니 나도 비슷한것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이었을거다.


매일 매일 스트레스 받는 업무에

보람 없고 인정 못받는 일들에

파묻혀 주말마다 친구들 있는 옆도시에

스트레스 해소하려 다니던 그때


하루는 본사쪽 업무파트너랑 사내메신저로

스트레스 해소로 같이 사업 하자는둥 잡담 을 하다가

갑자기 멘붕이 왔던것 같다.

갑자기 머리 속이 텅 비고

어지럽고 여긴 어디고 난 누구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에 빠져

밖에 나가서 십분정도 쭈크리고 앉아

정신을 다시 붙잡아 맸던 기억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그날 그 감정 느낌 불안감은

내가 본사업무파트너로 부터 옮겨 받은것 같기도

하고 내가 옮겨 준것 같기도 하고

암튼 둘다 동시에 멘붕에 빠져

그날 오후 내내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이틑날도 반나절 얼이 빠져 나가 있었던것

같다.

그 파트너 이전 여자파트너랑 함께 일할때도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것 같다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일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으면서

우락부락 치며 올라오는 화를

애써 서로 참다보니

동병상련 느낌과 동시에

서로를 동정하는 느낌과 동시에

호감 그리고 너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불쾌감을 동시에 느꼈었던 같다

결국은 그 사람이 회사를 퇴사 하고 나서야

그런 감각이 없어지고

불안 증세가 낫아졌다.


그때 우리가 좀 더 일찍 우리가

거대한 기계속의 한두개 스크류에 불과 하다는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서로 각자의 가정을 위해 부모님을

위해 대기업 직원이라는 허울을 유지하기

위해 월 2백만원을 벌면서 월20억원 짜리

부담을 감당하며 하루 하루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견디어 냈던것 같다.


그때는 참 어리석었다.

그게 뭐라고.


이용당해도 그런줄도 모르고

달성 불가능한 일을 요구 받아도

항의도 못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면서도

사명인줄 알고 해낼려고 무수히 애쓰고

밤을 지새웠던 날들

허나 보람없고 캄캄 하기만 했던 나날들


한달에 한두번 실수하면 수많은 곳에서

항의를 받고 손가락질 받지만

밤을 새가면서 손이야 발이야

빌어서 오차 없이 일을 진행시켜도

항공 운수 비용을 매월 수천만원을 절약해도 금전적 보상도 연말 우수사원도

s급 평가도 없었다.

s급 평가는 커녕 B급 평가도 선심을 주듯

격려 차원에서 준다고 내년엔 좀 더 열심히 잘 하라고뭘 잘하라는 것인지 뭔훗날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지들은

뒤에서 실익 A급 평가 다 챙겨갔다.

난 잘하는건 당연 한거고

실수 한두번 하면 무능한 사람

항공 비용 수천만원 고객사 라인 스톱

배상비용 수천만원을 내 잘못인양

이곳 저곳에서 나한테 물아붙혔다.

연봉 3천만원도 안주면서 수십억 책임을 지우는 양심 꼬물만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회사동료들

애초에 고객사 생산 계획을 맞출수 있는

캐파를 해외 공장이든 로컬 공장이든 다 합쳐도 맞추지 못하면서도 고객사 오더는 닥치는대로 받아내고 말도 안되는 납품 계획을 보내 와서는 고객사도 속이고 사내 동료도 속이고 한마디의 거짓말을 세마디의 거짓말로 덮고 안전재고는 오로지 조달담당자인 나 한명한테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고 누구도 가이드 해주지도 않고 결재 하는 이들은 책임을 같이 지게 될까봐 상세 업무를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니가 알아서 안전재고를 잘 확보해 하고는 장기재고 생기고 나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많이 비축했나 비난 했다. 어느 영화속에서는

임자 하고 싶은 대로 다해 임자 뒤에는 내가 있잖아.

내 뒤에는 그런 사람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원자재 업체의 상습적인 납품 지연

그것 역시 원자재 업체의 캐파 부족과

기술력 부족 다른 주요고객사 우선 대응 본사 구매담당자의 무능함(썩후에 알고보니 일부러 무능한척 업체와 한편 먹고 업체에 한없이 상냥하고 같은 회사 소속 동료후배들은 거지대하듯 차갑게 냉대하고 무시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된건 몇해 후였다. 말이라도 덜 차갑게 하지 참. )

등이 이유 었으나

내가 직접 본사로 날아가서 눈으로

직접 환인 할수도 없는 일들 뿐이 었으나

사내외 모든 업무 관련자들은 면책 하려면 제일 쉬운게

나한테 책임을 덮씌우는것이 었고

저마다

나한테 책임을 돌리는 재주가 있었다.

영업담당임원 한테서 시말서를 쓰라고 황당한 요구를 받은 적도 있다.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그런 요구를 해온 그 인간은 수년째 놀고 먹으면서도 자기 옛 부하들 한테는 아직도 인기있고 멀쩡하게 생겼다.

자기 부하들은 끔찍히 챙겼다.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출하 계획

원자재 도착 일정을 나에게 전해준 이들은 자기들이었음에도 그것을 증명할 시간도 내게는 없었다.

내가 담당한 제품은 영업담당자는 팀장까지 다섯명이

챙기고 있고 생산 계획 담당자1명까지

1:6의 끝이 없는 쌰움을 1년간 지속했었다.


일년에 내 손을 거쳐서 직접 발생한 매출액만 수백억 넘었으나 공로는 나를 피말려 죽일 듯이 쥐어짠 영업팀 몫이었다. 거짓으로 거짓을 뒤엎기 바쁜 인간들한테만 푸짐한 보상이 쥐어 졌다.


불가능한 요구 사항을 공급 업체에 메일로 요청 하고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항공 운수로 물건을 받고 그 항공비용발생은 불가피 하며 나로 인한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그 사유를 파악 해야 하고 수십개의 메일을 뒤져서 사유를 품의서에 기재해 두어야 했다.

제품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다른 그룹 계렬사들은

다 쓰고 있는 erp시스템도 없었다.

90~2000년대처럼 엑셀로 영업오더 전달 받고

그것을 다시 알록 달록 음영을 넣어서 고객사 별로

출하일 별로 다시 본사 생산 시간 예상하고 해운운반시간

예측하여 다시 내가 엑셀로 본사에 출하 계획 요청 했었다. 본사의 원자재 공습업체 원자재 수급부족 품질이상은 밥먹듯 했고. 세관에서 하루 이틀 늦게 통관됟어도 생산계획 출하계획이 다 뒤틀리고 생산 계획 담당자들은 영업담당자들은 그 불가항력적인 사유들이 자기들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듯이 그러면 왜 더 일찍얘기 해주지 않았냐는둥 하루의 대부분은 그런 쓸데없는 말싸움과 항공운수 비용 발생 사유증명에 사용하거 품의 올리고 온전히 다시 재고 확인 출하계획 엑셀표 정리는 퇴근후에 하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최대한 내 불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도 하루 20시간이 부족한 나날들이 었으니까.

혼자서 세사람 몫 네 사람 몫의 일을 업무량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는 못 받고 부당한 대우과 처우

대접을 받으 면서도 그에 항의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내 편은 한명도 없었다.

할수 있는건 안되도 되게 만들려는 노력뿐이였다.

모진 스트레스를 받다 받다 결국은 내 전임자 처럼 사직하겠다고 사직서를 올리고 사직으로 그 일들을 피할수 밖에 없었고 그제서야 그 분들중 한분이 그날 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뭔가 좀이 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니면 그간 고생한것을 어느정도라도 느꼈는지 다른 부서에 이동배치를 해주었다.


새로운 인원한테 인수 인계를 한달반 동안 하고나서 다시 태여난 느낌과 해방감을 잊을수가 없다.

그 해방감은 한두달도 가지 못했다.

두달도 못채우고 그 후임자가

스트레스를 이겨못낸 탓인지

주말에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취해서인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너올수가 없었다.

같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A에서 Z까지 가르쳐주고 나한테 살갑게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해맑은 아이가 24살 밖에 안된

애가 ..

마치 내가 당할 일을 다른 사람이 당한것처럼

몇해동안 매년 5월이 오면 여러해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후에

연속 세명한테 인수인계 해줬는데

다들 두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해 나가 버렸다. 두 부서 업무를 반년 가까이

동시에 챙길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에 증명된 사실들

결국은 한명이 하던 업무를 세명 한테 분배 하여 줬음에도

주요 원자재 구매 담당자는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해 나가고 또 새로 사람 뽑고 그런일들이 반복 되었다.

결국은 수년후 경쟁업체들 성장으로 우리 회사 시장 점유율 하락후에야

현지 생산라인 대폭 추가 원자재 국산화 등

조치후에야 반년을 못 채우고 사직해 나가는 현상은 해결 되었다.


성과급제요. 공정한 연말 평가요

모두 빛 좋은 개살구

공정 공평이 사기업에 존재할리가 만무하다.


감히 회상 조차 하기 싫었던 일들을

인생의 또 다른 전곡점에 서서

망각을 위한 기억 차원

아니면 20년 다닌 회사를 마무리 해야 하는 착잡함

시원 섭섭함에

짧은 글들을 남겨 본다.


좋은 추억을 쌓은 일들도 많지만

나쁜놈들도 적지 않았다.

모든걸 내려놓으니

여러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담담히 떠오른다.

산전 수전 다 겪고 나니

건강을 지키는것이 제일 중요한 일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일들도 맡아 보고 보람도 느껴 봤지만.

2017년초까지 그때 사진 보면 새치 하나 없던 검은 머리가

2년만에 양쪽에 흰 머리가 가득 생기고

다시는 원래 검은 머리결로 돌아 갈수

없게 된것을 보면 모두 꿈 같고

좀 덜 진지하게 임했을걸 하는 약간의

후회도 든다. 한 직장에서 20년이상

다닌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 한다.

다만 여러가지로 아쉬운 부분 들 역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강산이 두번 변하는 동안

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이것 역시 나란 사람의 역사라는 생각에 기록해 본다.

망각을 위한 기억이라고 할까

아직도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트라우마로 남아 몇일씩 밤잠을 설친다.

일부 더 끔찍한 일들은 아직도 차마 적지조차

못하겠다. 언젠가 그 일들을 줄거리로

소설로 적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원호가

중동무역 경험으로 기업 소설 무수히 남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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