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지심 불가유 방인지심 불가무

사람 해칠 맘은 갖지 말고 사람을 방비함은 맘은 없어서는 안 된다.

by 수호천사

선의 잣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민의 감정과

축은지심을 타고난 것과 같은 이치다.

연민의 감정과 측은지심을 양심이라 부른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 양심이 없이

태어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미약하게 남아 있던 그 양심을 주저 없이 버린다.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독하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요 등등

반인륜적인 성구속담들이 생긴 것이다.


역사는 이긴 자가 자기 입맛에 맞춰

기록한 역사이니까.

기록자도 선지자 신은 아니므로

본의에 따라 아니면 본의 아니게 편향되게 쓸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전해 내려오던

와신상담은 수많은 사람을 에게

힘든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인생대역전을 이룬 이야기로

널리 전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구천이

대단하고 귀감이 되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임금의 신분으로 풀로 짠 돗자리에서

잠을 자고 곰의 쓸개를 맛보며

적국에서의 고난을 기억하며

범려와 문종을 등용하여 끝내는

오나라를 격파하여 복수해 낸 쾌거만

기억한다.


그러던 중 부차가 병에 걸리자, 범려는 구천을 설득해 부차의 똥(!)을 핥게 하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불사하게 한다. 부차의 병이 쾌차할지의 여부를 알아본다는 명분이었지만 부차의 환심을 사고 구천에 대한 의심을 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부차는 자신의 변까지 핥아가며 아부하는 구천에게 넘어가 버렸고, 건강을 회복한 뒤 구천과 범려를 월나라로 돌려보내게 된다.


그가 복수를 위해

손으로 대변까지 찍어 먹으며 병세를 어쩌고저쩌고 알려주면서

태연자약하게 아부할 수도 있던 인간

그러면서 그의 심리는 어디까지 왜곡되고 삐뚤어졌을까.


그 후 중국 역사상 4대 미녀로 꼽히는 서시를 상납하여 오나라 왕 부차가 정사를 그릇 치게 하고

삶은 볍씨를 오나라에 상납하여

그해 농사를 망치게 하고

끝내는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범려는 그의 위인을 알고 있으므로

문종에게 구천은 환난은 함께 해도

부귀영화는 함께 할 인물이 못되니

함께 은퇴하기를 권한다.

문종은 그 귀띔을 듣지 않고

어떻게 천신만고 끝에 이 자리에 올랐는데

설마 그런 일들이 생기겠냐고

자리에 연연하여 남게 된다.

결국 범려는 관직을 사직하고

문종은 남아 있다가

구천에 의해 자결하게 된다.

그 직전에 남긴 말이 한신이 남긴말로

오전 되어 내려온 그 유명한 말이다.

범려는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 : 비조진 양궁장, 교사 주구 팽)” 내용의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했으나, 문종은 월나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아 자결하고 말았다.

쓸모가 다하면 냉정하게 버려진다는 의미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은 사기(史記)에 전해진다.


생사를 넘나들면서 쌓은 정도 결국은

인간의 무한한 욕심과 변화무쌍한 의심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성공한 후에는

흑역사를 알고 있는 가까운 지인들부터

거리 두고 제거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특히 개인의 생명권이 재산권이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안주낙업이란 있을 수 없다.


공권력은 골고루 모든 곳에 공정 공평하게

모든 일들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각각 개인이 깨우치고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과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런 각오와 지향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세상에는 절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우월감을 갖는 그런 인간들도 있다.

그런 인간들을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극도로 발달되어 있는 사람들을 사이코 패스라 한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지르고

법의 심판을 받아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 평범한 이웃으로 동료로

천의 얼굴 만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익과 가치관이 부딪혔을 때 본모습을

보이고 그 어떤 극단적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백 명에 3명 정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명기하며 살아가면 깊게 엮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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