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달라이 라마 이야기

by 수호천사

요즘 6세 달라이 라마의 시와

그의 삶

그가 속한 티벳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흠뻑 빠져 있다.

15살의 나이에 브다라궁에 모셔가

명의상 티벳고원의 최고통치자가 되었음에도 실권은 잡지 못하고

티벳지역 실제권력자 와 몽골세력 청나라 강희 황제 사이에서 꼭두각시질 하다가 24살에 입적 한걸로 추정한다.

그의 시로 알려진 66편은 많은 시들이

한문으로 변역되는 와중에 왜곡되고

일부는 다른 사람의 시가 그의 이름을 빌려

와전되어 내려온 것일수가 있다고 한다.

근대에서도 그렇지만 온갖 이익집단들이

기득권들이 권력 투쟁에서 이긴자들이

자신들의 입김에 맞는 대로 역사를 고쳐 쓰기에

3백년이 지난 지금 현재 정확한

역사를 알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확실한것은 24살에 청해호 근처에서

독살 당했을 가능성이 제일 큰 걸로

짐작된다.

티벳 당지 실세와 몽골세력 라짱한의 권력투쟁이 전쟁으러 번져 몽골 라짱한이 이기자 6세 달라이라마가 계율을 어기고 황음무도하다고 가짜 달라이라마라고 거짓 보고 하여 강희 황제가 북경에

끌고 오라 친히 확인 하겠다고 하여

북경에 끌려 가는 도중에 도망쳤다는 설도

있고 병으로 사망하여 무지개로 기화되어 사라졌다는 전설 또 한가지는 바람으로 변해 사라져 여기 저기를 돌며 불법을 전하다가 오대산에서 원적 하셨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또 64세에 몽골 아라산지역에서 원적 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는 어린 나이가 아닌 15살에 브다라궁에 입궁 했다. 알만한 것은 다 알고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던 것이다. 다른 달라이 라마가 보통 7세 좌우에 입궁 하던것에 비하면

어쩌면 그는 행운아 였을수도 있고 어찌 보면 그게 또 그의 비극의 시작이 였을 수도 있다. 사랑 하는 여인과 생이별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꼭두각시 자리에 올라 중앙 정부와 섭정왕 몽골세력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다가 결국은 비명에 돌아 가셨을 가능 성이 크다.

그 이유는 1682년에 5세 달라이 라마가 원적 하시자 티벳트 섭정왕 桑结嘉措쌍제쟈춰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 하기 위해

원적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후에 강희제가 알게 되고 노발 대발 하자 부랴 부랴

6세 달라이 라마를 찾아 부다라궁에 모셔 왔다고 한다. 그는 밤마다 변장을 하고 궁을 나서서

사랑하는 여인과 밀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그의 반대 정치 세력들이 퍼뜨린

헛 소문인지 진실인지는 확인 할바가 없다.


그가 속한 갈로파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파계행위 였다.


在那东山顶上升起皎洁的月亮

年轻姑娘的面容

时时浮现在我心上


저 동쪽산마루에 밝은 달에 떠오르면

어린처녀의 얼굴이

내 가슴에 떠오르네



曾虑多情损梵行

入山又恐别倾城

安得世间双全法

不负如来不负卿


정이 많으면 범행(부처님 길)에 방해될까 걱정했네

산에 오르면 또한 경성과의 (경국지색)

이별이 두려웠네

둘다 얻을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겠지

여래에게도 그대에게도 미안치 않는 법




하지만 그때당시 대부분 신도들과 대부분 승려들은

그의 사랑시를 사랑시로 보지 않고

더없는 높은 경지에 오른

불교 교리중 비밀로 전해내려오는

사상을 음유로 써내린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부다라궁을 떠나기전 쓴 시로 알려진

从布达拉宫山顶上 브다라궁의 상공에서

圣心所化光辉照四方 성심이 빛이 되어 사방을 비추네

我身化作一贤者 내몸이 현자가 되어

到藏地的北方再北方 이땅의 북쪽 그리고 더 북쪽에 이르러

为度无怙苍生离孽障

무고창생이 업장에서 멀어지게 해주리라


아마도 부다라궁을 떠나야만 더 많은

대중들을 구할수 있는것이 그의 숙명이 였을지도 모른다.



티벳트 실권자가 그리고 몽골세력 라짱한과의 전투에서 져서 피살당한다.

그후 그는 아마

고민하고 방황 했으리라

일신의 생명을 잃게 될까봐 한 걱정이 아닌

일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그의 거취가 자기 민족 중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 하고 고민 했으리라 생각 된다.

그의 달라이라마 신분 취소와 북경으로의 압송은 중앙 정부와 약소국 실세지간의

밀당과 정치공작의 산물이 였다.

그사이에 몽골세력 까지 섞여 있었으니

그 혼잡함은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섭정왕도 개인 욕심보다는 몽골 세력을

몰라 내고 청나라에도 완전히 부속되지 않기 독립을 유지 하기 위해서 모진 애를 썼지만 절대적 실력 차이 앞에서는 힘이 균형을 유지할수가 없었다. 결국은 청나라 군대가 티벳트에

들어 가고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고 되었다.


조선말 러시아와 일본 세력 청나라

세력을 끌어들여 어떻게든 조선이란

나라를 유지해 나가려 애를 썼던

고종 민비 등이 생각 난다.

건륭황제 때에 와서는 또 다시 6세 달라이라마 신분을 인정 해주었다.

그들이 그 신분을 인정해줘서

그의 운명과 그의 신분이

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6세 달라이 라마가 변장하고 애인을

만났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다만 그의 자신의 족속을 아끼고

종교지도자로서 지역 통치자로서

최선을 다하려 했던 심정들도 시를 통해서

느낄수가 있다.


진정성이 더욱 중요하고 어떤 자리가 차려 졌을때 그 자리에 걸맞는 행동을 했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그 자리에 오른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 신분에 맞는 일들을 하려고 애썼을 그 사람

관세음 보살의 화신이라는 하늘이 내린 신분과 평범한 아녀자의 남자이고 싶고 한 여자를 사랑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수도 있는 마음 그 맘은 본인만 알수 있고 그렇게 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뒤섞이면서 끝도 시작도 없이 쉬임없이 이어져 내려 가고 있다.

그렇게 서슬프런 힘을 과시하던 만주족은 언어조차 사라진채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지고 몽골 세력 역시 존재감을 잃었고

티벳트 인들은 천년전과 다름없이

전세계 주목을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언어 문자도 보존하고 약재 신앙도 유지하면서 살아 남았다.

그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길잃고 건강을 잃은

이들에게 마지막 청정지대가 되어주며

털소말린 고기와 진귀한 약재들을

쌓아두고 우리의 지친 몸과 영혼이

와서 쉬다 가기를 환영하면서

그 곳에 머물며 잘 살아 가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참으로 축복 받은 땅인것 같다.

인류의 마지막 청정구역이자

마지막 홍수가 들이닥쳐도 유일하게

평안무사할 노아방주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백년 다시 천년이 흘러도 그 곳만은

그렇게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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