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며 위로받으며 살아내는 게 인생이겠지.

by 수호천사

麻球 마구

매일 아침 같은 가게에서 같은 메뉴만

사는 편인데

그날따라 옆집에 눈길이 갔다.

정주 시 특색 음식 후라탕과 함께

마구라는 튀김 음식을 팔고 있었다.

수십 년 만에 마구를 맛봤다.

그와 함께 어렴풋이 수십 년 전 아마도

아홉 살 무렵 일이 생각난다.

넷째 큰 아버지랑 길거리에서 麻球 튀김떡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군침을 흘리자 넷째. 큰 아버지가 사주셨던 듯싶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날 광경 장사치들의 모습까지 눈앞에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도 지금도 신기한 게 어떻게 튀김떡을

금형에 찍어낸 것도 아니고 완전한

구형으로 튀겨낼 수 있지? 하는 생각은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마법을 부린 것일까.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어 기름에 튀겨낸

중국 음식인데 완전한 구형으로 되어 있다.

참깨 芝麻지마 마 뽈 구 자를 써서 마구라 부른다.

그때 그 마구를 사주셨던 큰 아버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20년 가까이 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트럭에 치여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는데

선비들 같은 형제들과 달리 진주강 씨 답지 않게

외가 편 전주 전 씨를 더 닮았는지 생긴 것도

우락부락하게 생기셨고 키도 크고 힘도 장사고 젊었을 적 싸움도 많이 하고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 외가는 전주 전 씨 집안인데 대부분 다혈질이고 아버지의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모두 항일투사였고 일본군들과 전쟁에서 사망하셨다.

어린 시절 그쪽 집안 친척들은 대부분 기골이 장대하고

큰 건달들이 많은 걸로 기억된다.


그 피를 좀 더 많이 받으셨는지

큰 아버지는 무서움이 없으셨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여러 가지 일들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마을의 정미소를 차려 경영하여

남들보다 일찍 치부하고 정미소가 자리 잡자 그 정미소를 나의 아버지에게 외상으로

억지로 물려주고는 자신은 도시에서

2킬로 떨어진 곳에서 새로 정미소를 차려서 또 기반을 일궈 내셨다.


우리 집안이 일어서게 되는 기틀을

큰아버지가 마련해 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미소와 쌀장사를 하면서 도시 개발하기 전 부동산들을 싼 가격에

사들여 되넘기로 팔고 이자돈도 빌려주는 등

재산을 꾸준히 늘려 나갔다.

단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면

어렵게 결혼 십여 년 만에 얻은 외동딸이 공부를 안 하고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냥 애가 왜 저러지 그랬는데

언젠간 철들 날 있겠지 했었는데

8년 전 한번 2년 전 한번 조울증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병원 치료까지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어떤 일들은 아마도

태어나기 이전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후에 듣기로는 사촌동생의 외할머니가 조울증을 앓으셨다고 한다.

유전은 과학이고 필연이다.

그렇게 보면 내 사촌 여동생을 탓할 수 만도

없는 일이다.

한번 조울증 앓을 때마다 수천 만원씩 써버리고 사업한답시고 써버리고 몇 달씩 어딘가로 사라지고 돈을 다 써버리면 다시 나타나고 사기꾼들에게

사기당하고 위스키를 밤새도록 마시며

자신을 혹사하고 가족들한테 죽어버린다고 협박하고 시아버지를 폭행하고

가족들은 또 뒤 수습을 하고

그것이 무한 반복되고


재작년 발병 후 두 달간 입원 치료 후에는

안정된 상태라 한다

약물치료로 살이 많이 쪘다고 한다.

병이 낫고 나서 단 한번 연락이 왔다.

안부 전하고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고

그 병은 주의에서 관심을 줘도 재발되기 쉬운

병이라 사람들이 연락을 끊게 만드는 병이다. 내 동생의 세계에는 자녀 아들 딸 하나

그리고 75세 된 엄마뿐이다.


튀김음식으로부터 왜 여기까지 전개된 것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럽지만

이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잘 산다는 정의는 수천수만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의 첫째는 건강이라 생각한다.

육체건강과 정신건강 그리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적성에 맞는 직장을 갖고 있거나 평생 쓰고 남을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 순이라 생각한다.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이렇게 저렇게 바꿀 수도 없겠지만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낳아준 부모를 고통 속에 몰아넣느니

결혼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고

신을 믿으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었더라면

이 말은 내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도

헷갈린다.

시련을 겪은 아직도 시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심신이 아픈 상태가 아니라면

성인이 된 후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맘을

가져서는 영원히 성숙될 수 없다는 것 하나

지금 남은 삶

육체와 정신이 무탈하고 건강한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자는 것 하나


나머지 인생 성인이 되었으니

운 좋게 몹쓸 암 같은 병에도 조울증 같은 병에도 안 걸렸으니


출가한 맘으로 살았으면 하는 맘가짐을

가져 보자


내가 어느 날 넷째 큰 아버지처럼

예고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신변 정리 유산분배는 문자로 남겨놓고

살자는 맘 하나


어찌 보면 큰 아빠는 딸의 그 망가진 모습을

보지 않아서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넷째 큰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

나랑 피 한방을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어머니에

이어 딸 뒤바라지 시중까지 그 연세까지

해줘야 한다는 것이.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졌었더라면

불교 신앙을 가졌었더라면 내 동생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넷째 큰 아버지와 큰 엄마가 좀 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면 교육 방식을 달리 했었더라면


혹시 넷째 큰엄마의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은 것은 아닐까.


내가 금방 태어났을 때 넷째 큰 아버지가

나를 양아들로 입양해 주면 안 되겠냐고

간청했었다고 한다.

당연히 엄마의 거부로 그렇게 되지 않았고

만에 하나 그렇게 했었더라면 내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6세 달라이 라마의 삶을 보면서

내 사촌여동생의 삶을 보면서

내 큰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올해 초 결혼도 못하고 37살 나이에

독신으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외 6촌 동생의 삶까지 생각난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했던 어리석은 선택들이 내 동생보다 나은 것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잘 숨겨 내고 있을 뿐

다만 잘 숨기는 능력을 갖췄을 뿐

다만 잘 참아내고 있을 뿐.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고

심연에서 빠져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


이렇게 살아 내는 거겠지.

이렇게 방향을 잡아가는 거겠지.

이렇게 글로서 써서

위로하며 위로받으며 살아내는 게 인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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