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즈음에… 마지막 회상

by 수호천사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모두 자초한 일이다.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고

오히려 조금 흥분된다.


목석처럼 돌처럼

한 반년을 더욱 그렇게 살 수도 있었고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다 부숴버리고

몇 년간 방랑하며 곳곳을 여행하며

그렇게 살 수도 있었다.


최근 몇 해간 극강의 나르시시스트들과

머리로 몸으로 깡으로 싸우다 보니

웬만한 악인들은 귀요미로 보인다.

상대할 의욕마저 느끼지 못한다.


극강의 나르들과의 싸움조차

이젠 시들해지고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

점점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극강이라 표현했었던 것도

과대 평가 해줬었던 것 같다.

별것 아닌 인간들이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연민의 감정이라곤 꼬물만치도

남아 있지 않은 감정 자체가

메말라 버린

강시 같은 존재 들에 불과했다.


그런 인간들로 인해

아니 지금 돌이켜 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유로

내 황금 같은 시간들을

너무나 허비해 버렸다.


겪었어야 할 운명이라 피할 수 없었겠지만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맘가짐 몸가짐을

얻을 수 없었겠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회한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승승장구해 나아가던

내 인생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고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보게 되고

겉으론 화려하고 번지르하고

의기양양한 인간의 숨겨진 추악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너무 가까이 있은 탓에

우연히 보게도 되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믿었던 인간의 추악함을 보고 진저리를 쳤다.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었다.


스스로는 안팎이 똑같이 살고

똑같이 얘기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살면서 저지른 실수조차도 언제든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치를 생각이고

외면한 적도 외면할 생각도 없다.

다른 이들도 그럴 줄 알았다.

길에서 만난 인연도 아니고

수십 년 이어온 인연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실상은 거짓과 왜곡이 보였음에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었던 것은 아닌지

거짓과 진실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뒤엉켜져 버려 이젠 진실을 기억해 낼수 없고

풀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풀 의욕도 상실했다.

그리하여 니체가 말한 그 어두운 심연 속에 던져 버리기로 맘먹었다.



고로 이젠 돌아보지 않고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자문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기로 맘먹었다.

굳이 동행한다면

니체 쇼펜하우어 王朔 王德峰

김주환 지나영 교수 책들과 동행하고

엊저녁 꿈과 같이 꿈속에서 그들과

대화하면서

인생이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해보려 한다.


두 번 죽었다 살아난 나는

더 이상 죽는 것도 모든 것을

다 잃는 것도 환상이라 생각하고

다음 여정을 걷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경지가 높은 경지라는 뜻은 아니다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특별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남다른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나를

조금 더 남다른 길로 인도하였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다만 우연히든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길에 이끌려 서든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오게 된 이상 내 길을 나만의 길을

걸어가보려고

다짐을 했을 뿐이다.


후회나 두려움은 없다지만

아주 가끔 십 년 전 내가 그립다.


파안대소할 수 있고 노발대발할 수 있고

이유 없이 즐겁고 이유 없이 슬플 수가

있던 그

때 내 모습이 아주 가끔 그립다



사계절이 반복되듯

이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또다시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변한 것은 내 몸무게

양쪽머리에 히엿해진

내 머리카락뿐

내 맘은 여전하니까.


좀 더 일찍 남다른 길에 들어섰을 뿐

난 여전히 나이니까.

언젠가 모든 것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믿고

새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더 이상 그 누구의 동행도 바라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보련다.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그곳에서

뭔가 나만의 역할을 하며 그렇게

살아 보련다.


가끔 가장 아름다운 축복과 존중은

살포시 지긋이 멀리서 봐주면서

맘속으로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고

진정한 존중이라 생각 한다.

한두명 그런 친구들이 있고

서로 그런 맘가짐을 알고 있고 읽을수 있다.

세상에 단 한명만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부처 일수도 있고

관세음 보살일수도 있고

친구 혹음 가족의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 관세음보살일수도 있다.

어떤이들은 한동안만 동행해주고 어떤 이들은

평생 곁에서 동행해주는 차이가 있울 뿐이다.

그 곁이 굳이 신체적 거리로서의 곁이라는

뜻은 아니다.

곁에 없어도 항상 느낄수 있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옆에 오래 두어도 느껴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


억겁의 시간전부터 이어온 필연적인 인연처럼

그것은 운명이라면

항상 느낄수 있으니까.

말을 안해도 느낄수가 있으니까.

굳이 동행하지 않아도

동행하고 있는 것이니까.

사랑한다고 말을 안해도

느낄수 있는 것이니까.

곁에 없어도 곁에 머문것이며

곁에 있어도 없는것과 같은 인연은 이제는 보내주고

홀로 가보련다.

그길에서 보는 풍경과 느낌을

지금 처럼 인연 닿는 이들에게 전하며

그렇게 한동안 살아 보련다.

굳이 욕심이 하나 있다면

어떤 이들에겐 내가 그 관세음 보살의 모습이 였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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