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내가 어때서
이 두 글에
세상을 헤쳐나가는
궁극적 물음과 해답이 있다.
더 이상 외부에서 해답을 얻지 않는 순간
나만의 신을 알게 되고
신의 가호를 받게 된다.
수많은 이들이
좀 더 일찍 이 글을 알았었더라면
국가가 곧 우리 정체성
우리의 인격 가치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그 어느 나라에 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게 사명이 되어 살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그것이 천시 인화 지리가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하기에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수 있는
권리는 천부인권이다.
행복을 추구할수 있는 권리
그 행복에 풍요 자유 평화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오직 스스로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치를 만들어가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치 않고
공동체에 진정성 있게 그 생각을 드러내먄
인연이 닿은 이들은 그것을 보고
감명을 받거나
위로를 얻거나 한다.
서로 닮아 가고 그 생각이 다듬어져
공동의 가치관으로 자리잡혀 가게 된다.
그것만이 민족 인종 언어를 초월한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출신이 비천하거나
과거가 맘에 안 든다 하여
소기소침 혹은 자격지심에 빠질 이유는
없다.
톨스토이는 살인 강간 도박
모든 죄는 다 저질렀던 인간이다.
또 그만큼 절실하게 뉘우치고
스스로의 죄를 글로 남긴 인간도 찾기 힘들다.
너무 생생하게 남겨 대신 낯 뜨거울 정도지만
만년의 그를
그리고 그의 작품을 싫어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의 글들에는 진실과 회한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고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인종이 다른
민족이 다른 그 누구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잘 쓰려 애 쓸 이유 없다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픈 말을 하면서 살면 된다.
내일과 무상이 어느 것이 먼저 다가 올진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 때에도 그랬고
중국 문천 대지진 당산 대지진 때도
그랬다.
수많은 이들이 왜서 죽는지
영문도 모르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혹여 돌아오더라도
수많은 하고픈 일들을 채 마치지 못한 채로
타인의 눈빛 속에서 살기보다는
나만의 사명을 다하면서 살기로 한 순간
한두 번 생과 사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순간 더 이상 내게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일을 했고
그 일들이 즐거웠는지 중요치 않았다
어디에서 살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
한 달 후에 영영 떠난다면
어떤 준비를 해두면
후회를 덜 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나 자신과 하나님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길을 걸어갈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