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갈 동네
무심코 걷다 보니 16년전 이 도시에
도착해
첨 살던 집앞까지 걸어 왔다.
기대반 걱정반
새로운 도시에서
아는 사람 한명 없는 도시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던 그 날…
집앞의 지하철도 없었고
고속철역까지 버스로 한시간30분 걸려서
재개발대상 낡은 주택들을
돌고돌아 울퉁불퉁한 길들을
달려서만 도착 가능하던 그 시절이
생생히 눈에 떠오른다. 버스노선번호까지
기억난다.
첨에 이동네에 왔을 적엔 동쪽이 서쪽 같고
서쪽이 동쪽처럼 느껴져 시차에 적응하듯
그 느낌을 제대로 적응하기까지
2년은 넘게 걸린것 같다.
강변 아파트로 옮긴후로
첨 살던 동네엔 별로 가지 않다보니
더우기 반년 넘게 살지 않은 탓인지
옛날 살던 동네에 도착 하니
또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지금 오후 세시인데
흐린 날씨인데 구름이 참
이상하네 구멍이 나있네.
이시간에
태양이 동쪽에 뜰리는 없는 일이고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 빛 구멍이 더 커지고서야
자세히 보니 그쪽이 서쪽인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언간 이 도시에 도착한지도
16년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도.
한순간의 꿈같은데 벌써 16년이 지났다니
꿈같은 일들의 연속이여서 그런지
실감나지
않는다.
옛집 앞의 대학교는 그대로다.
건물 색상도 그대로고
신축된 건물도 없다.
첨부터 계획된 신도시이고
시증심에 있던 대학교들을 한곳에 모은지가
어언 20년이 넘었으니까.
16년전만 해도 대학교 울안에 맘대로 드나들며
학교 가운데를 지나 대학교 앞의 공원에 자주 가고
여름엔 대학생들이 지은 시들이 붙은
백미터 가까이 되는 대자보 벽들을 훑어가며
시들을 읽기도 하고
교내에서 음악동아리 학생들이 공연하는 공연도
감상할수 있었다.
코로나 후인가
여러 대문마다 얼굴식별기기가 안팎으로
설치되어 있어 외부 시민들이 더이상
헉교내를 방문할수 없게 돤듯 하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시를 써서 붙히는것 같지도 않다.
교내 음악회도 동아리 공연도 사라진지 오랜듯 싶다.
코로나 전후 세상은 어느 나라 어느 동네든
돌이킬수 없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것 같다.
긍정작인 면에서든
부정작인 면에서든
사실 긍정과 부정 역시 내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많아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도 …
학교벽에 배달기사들이 배달음식을 걸어 놓고
사진을 찍어서 증빙을 올린다.
학교네 교직원 혹은 학생들이 시킨것 같다.
몇몇 학생들이 카드를 찍고 철문을 열고 들어 간다.
선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중엔 내 집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그 철문이 아마 그들의 수십년간의
안정적인 삶은 보장해줄 것이다.
전쟁같은 천재지변만 없다면
누군가의 눈엔 부럽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게 갑갑해 보이기도 할만한
안정된 직장 안정된 생활…
현재의 나로서는 모든게 불확실한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들이
많아지니까. 그런 것들 위주로 보이는 듯 싶다.
아침에 16년간 다닌 세탁소에 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도시에 오기전부터 시작했을 세탁소
부부가 운영하는 그 세탁소는
구정기간 보름정도 쉬는 것 외에는
쉬는 날이 없어 보였다.
직원이 없이 부부가 사장이기도 하고
직원이기도 하면서 세탁소를 운영해 오고 있다.
세탁소 한켠에 주방도 있고
쉬는 공간도 있다.
오래된 세탁소이고 수선도 해주고
싹싹하다보니 장사도 꽤 잘 되어 보인다.
그래도 난 그런 삶을 살 자신이 없다
아니 그런 삶을 살기 싫다.
그럼에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곳에서 같은 일을 어찌보면
따분할수도 있는 일을
20년 넘게 견지할수 있다니.
내 아이는 대학을 나오면 이 도시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갑자기 내가 시간여행자가 된 느낌이 든다.
순간이동으로 16년전과 현재를
갔다리 왔다리 할수 있는 그런 초인간적인 존재.
그럼에도 그건 망상임을 잘 알고 있다.
양미간에 주름이 패이기 시작하고
양머리로 시작하여 생긴 흰머리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간다.
언젠가 나도 가루가 되어 먼지가 되어
날려 사라질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땰은 또 자신만의 운명이 있고
삶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전생의 공덕에 따른 여러가지 시련과
수확이 있을거라는 것을 안다.
일정기간만 동행하고 그 후론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지켜보는게
각자의 숙명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가끔은 간섭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우리말도 가르켜주고
다른나라에 바로 바로 적응할수 있는 언어능력과
적응능력 자신을 먹여살릴수 있는 능력
알바를 하더라도 좀 더 높은 페이를 받을수 있는
기능을 가질수 있도록 인도해줘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최소 세가지 네가지 언어를 배워야 헌다고
생각하는 이것 또한 내 스스로의 욕심이고
두가지 언어만 배워도 충분한
딸애의 학우들에 비하면 그것이 딸애에겐
축복이 아니라 언젠가 철이 들면 곤혹이고
부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그래도 점점 많아지는 과외들
어찌하랴 그것 역시 우리 가족의 운명인 것을
풍요속의 빈곤
떠날수 있는 자의 여유와
떠나야 살수 있었던 자들의 DNA를
모두 갖고 태어난 우리들의 운명인것을.
온전히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외로울수도 있는 집시인같은 삶
더 크게 넓게 보면 누군들 집사인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디에서든 조용히 묵묵히 살아야 하는 운명
수행하기 딱좋은 운명
그래서 자꾸 불경 명상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태어나보니 억만장자 혹은 권력계승자
백퍼센트 확정된 운명 역시 따분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운명에 따라 3대 세습 독재를 악을 쓰며
지키고 있는 그 무리들도 가엽다는 생각도 든다.
이젠 내려놓을수도 없는 자들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비참한 꼴로
강제로 내려놓는 운명을 맞을수도 있는 운명
이렇듯 운명은 불 공평한듯 하면서도
전체로 보면 또 공평한것도 같다.
결핍으로 인해 채울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채우고나서는 또 비워야만 새로운 것들을
담을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육도윤회 인과보응을 믿는다.
집착을 하나씩 줄여나가련다.
내 미래에 대한 과한 기대도
내 딸애의 미래에 대한 과한 걱정도
진인사 대천명이 괜히 내 삶의 신조가 된것이
아닌것 같다.
여러가지 선택을 할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고
선택은 스스로 할수 있게끔 나둬야 함을
그게 내가 해야 할 선택임을 느낀다.
그로 인해 모두가 자유를 얻길 바란다.
너무 많은 기대보다는
건강하게 무탈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것
스스로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내 그 길로
나아가는 것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그렇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동안
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모두는 각자 운명이 있으니까.
나 스스로에 대한 바램은
이제는
큰 풍파없이 여생을 보낼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만 이뤄지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보리라.
지금껏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졌듯이
이젠 뭔가를 바라는 소망도 아니니
이루어 질것도 이루어 지지도 않을 것도
없으니 홀가분 하기도 하다.
내가 주로 살아갈 동네는 점점 확실해져 간다.
그런 삶을 시작할수 있게 되었음에
그런 운명을 주셨음에 감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