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만큼 자랍니다.

당신이 피그말리온

by silvergenuine

당시 우리반에는 남학생이 6명이었는데 준하와 매일 함께 등교하는 민우를 뺀 4명이 모두 준하를 괴롭혔다기에 준하와 네 아이들을 1학년 연구실로 불렀다. 다들 다소 긴장한 채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연구실 의자에 앉았다.


준하 어머니의 문자 내용과 준하의 말을 바탕으로 한 명 한 명씩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지석이가 준하를 발로 찼다고 하던데."

"(지석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닌데요."

"준하야, 왜 지석이가 널 찼다고 한 거야?"

"차지는 않았는데 찰 것처럼 발을 들었어요."

"그럼 찬 것은 아니구나. 지석이는 왜 차려고 그랬니?"

"차려고 한 거 아니에요. 그냥 놀고 있었는데요"

"혹시 준하 쪽으로 발을 들었니? 어느 정도 높이였어? 아, 무릎 높이... 그래, 알겠어. 찰 것처럼 시늉을 한 거야? 그랬구나. 차는 척 장난을 쳤는데 준하는 그걸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앞으로는 발로 차는 시늉을 하지 마. 장난이 아니게 될 수도 있어. 우선 넌 먼저 교실에 가 있어."


지석이를 먼저 보내고 유승이와의 일에 대해 물었다.

"유승이가 널 때렸다고? 어디를 어떻게 때렸는지 유승이한테 시범을 보여줘 봐."

그러자 하준이가 팔을 들어 유승이의 팔을 톡 쳤다.

"살살 안 해도 돼. 네가 맞은 정도로 쳐 봐."

준하가 다시 유승이 팔을 톡 쳤다. 정말 살짝, 5cm 높이에서 손을 탁 놓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이 정도 강도였어? 이건 그냥 닿은 것 아니야? 때린 걸로 보이지 않아. 이거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유승아, 넌 준하를 때리려고 그렇게 한 거야?"

유승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준하 부르려고 팔을 툭 쳤던 것 같아요."

"그렇구나. 준하야, 유승이가 때리려고 한 게 아니라 너 부르려고 툭 친거래. 친구가 안 보고 있을 때 팔을 톡톡 두드릴 수 있잖아.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그러면 유승이도 우선 교실에 가 있어."


유승이도 교실로 가고 이제 영태와 해님이가 남았다. 이 두 아이는 같은 1학년 중에서도 하는 행동이 너무 어려서 정말이지 준하한테 맞으면 맞았지 때렸을 것 같지가 않다.

"준하야, 영태와 해님이가 널 어떻게 괴롭혔어?"

"저한테 같이 놀자고 하면서 자꾸 따라다녔어요. 같이 안 논다고 저리 가라고 해도 자꾸 따라왔어요."

"그걸 괴롭혔다고 말한 거야? 내가 볼 땐 얘들이 널 싫어해서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너랑 놀고 싶어서, 그렇게 따라다니는 것도 노는 걸로 생각한 거지. 네가 같이 안 놀고 싶을 순 있어. 그럼 왜 같이 못 노는지 이유를 말하면서 잘 거절해야 돼."

듣고 있던 영태와 해님이에게

"준하한테 같이 놀자고 따라다녔어? 준하가 저리 가라고 한 건 놀이가 아니라 진심이었대. 앞으로는 준하가 안 논다고 하면 섭섭하더라도 돌아서서 다른 놀거리를 찾아야 돼. 알겠니?"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 행동을 멈추기를 당부하고 교실로 보냈다.


이제 준하와 나만 남았다.

"준하야, 선생님이 판단하기에 친구들이 널 일방적으로 괴롭힌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이 일을 가지고 엄마에게 친구들이 때리고 괴롭혔다고 말하면 준하 엄마는 직접 보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 심각하게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하실 거야.

발로 차는 시늉을 한 거와 진짜 찬 것은 다른 거잖아. 그런데 친구들이 찼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 돼. 팔을 때렸다고 생각한 것도 친구가 왜 그랬는지 먼저 물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아.

영태랑 해님이의 경우에는 오히려 네가 걔들을 무시해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앞으로는 이런 일들 있으면 친구 입장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고, 그게 잘 안 되면 선생님한테 말을 해줘. 내가 도와줄 거야."


그날 아이들 하교 후, 각 아이별로 상황을 정리해서 준하 아빠와 엄마 모두에게 전달했다. 담임 의견으로

'혹시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준하가 엄마에게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한 행동에서 엄마의 관심을 끌어내려고 한 마음이 엿보이니 아이 마음을 헤아려주시되 이 부분에 대해서 가정에서도 잘 지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당부드렸다. 거짓말이란 표현을 사용하면 부모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에둘러 표현했고 부모가 알아서 준하의 거짓말에 대해서 따끔히 지도해 주길 기대했다. 지어낸 말로 인해 준하가 너무 혼나는 건 아닌지 지레 걱정도 했다.


짧은 대답들이 돌아왔다.

아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준하가 정말 괜찮을까요? 1학년 아이들이 모르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학교 폭력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지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난 교실 안 모든 아이들을 향한 입장에서 준하가 일방적으로 친구들을 매도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준하가 과장해서 말한 부분이 있었네요. 가정에서도 이야기 나눠보고, 이 부분도 잘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도의 반응을 바랐다.

준하의 아빠는 나를 믿어주긴 했지만, 본인이 가정에서 어떻게 지도해야겠다는 가타부타의 언급이 없었다.

준하의 엄마는 여전히 준하가 했던 말만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있었고, 아이의 말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받은 오해와 피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음 날 급식 시간에 준하와 함께 앉게 되어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내보았다.

"준하 어제 그 일로 집에서 많이 안 혼났어?"

"(천진한 표정으로) 안 혼났는데요."

"아빠, 엄마가 아무 말씀 안 하셨어?

"몰라요, 그냥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던 거 같아요..."

난 뭔가 답답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준하의 말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잘못한 사람이 되고, 선생님에게 불려 가 저마다 해명을 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고 생각할 줄도 알아야 했다.

또 솔직히 담임 시점에서 평소 준하의 모습을 보면 준하가 말했던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말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면이 있었다. 평소 친구들에게 준하가 큰소리칠 때가 더 많았고 눈치 빠르게 자기 몫을 잘 챙기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준하가 정말 친구들 때문에 불안하고 속상해서 그랬었다기보다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준하가 그렇게 말을 하게 된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불안이 큰 엄마가 준하가 해주는 학교 이야기들 중에서 부정적인 내용에 더 크게 반응을 했을 것이고, 준하는 그런 엄마의 관심에 따라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일부 각색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

가정에서 그냥 묻어두고 지나간다고 해서 이 부분을 나까지 어물쩡 넘어가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준하야, 지석이가 널 찼다, 유승이가 널 때렸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말을 하면 거짓말이 돼. 네가 오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확인하지 않고 진짜 그랬던 것처럼 말하면 그 친구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되잖아. 앞으로는 친구들 입장도 생각해 보고 너만 피해본 것처럼 말하지 않도록 해."

안타깝게도 나의 이 지도는 준하를 반성하게 만들기보다 또 다른 문제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다음날, 급식을 먼저 다 먹고 교실에서 놀던 준하가 아직 급식을 먹고 있던 나에게 무척이나 신이 난 얼굴로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왜? 무슨 일이야?"

"교실에서 지석이가 제 머리를 막 때렸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놀고 있는데 지석이가 갑자기 머리를 막 때렸다고요."

"근데 네 표정은 왜 그렇게 신났어? 같이 장난친 거야?"

"아니에요, 같이 논 게 아니고 지석이가 절 때린 거예요."

말하는 내용과 준하 표정의 불일치로 일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교실로 와서 수업을 보류하고 상황을 자세히 확인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당사자들에게 사건의 위치와 동선에 맞게 재현해보게 했다.

지석이, 유승이가 같이 놀고 있었고, 준하가 먼저 우리반의 최애 놀잇감을 차지했다. 그걸 지석이가 같이 하자 했고, 준하가 약 올리며 거절했다. 거절당한 지석이는 같이 좀 하자며 손바닥으로 준하 정수리를 통통 쳤다.

기본적으로 때리는 건 잘못이라고 지도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실에서 남자아이들 간에 그 정도 신체 접촉은 피차 허용되는 편이었는데 준하가 빌미를 잡은 건가 싶었다. 통통 친 것이 어느 정도 강도였는지 재차 확인하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남녀자원자들의 머리를 통통 쳐보며 이 정도로 맞으면 얼마나 아프게 느껴지는지 물어보았다. 다들 전혀 또는 별로 아프지 않다고 하는데 준하는 여전히 그게 너무 아팠다고 했다. 결국 난 소리를 치고 말았다.

"제발 피해자인 척 그만해! 그건, 친구가 나쁜 의도가 아닌데 네가 그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잖아!"

아이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상황은 일단 그렇게 종결했다.

엄마가 담임에게 연락함으로써 자신이 과장하고 지어낸 내용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자 준하는 그랬던 자신을 인정하기보다는 지어냈던 내용을 사실로 만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그게 자신의 수치심을 지키는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그 뒤에도 준하는 거 봐란 듯한 고자질을 며칠 비슷하게 반복했다. 이에 고민이 깊어지던 나에게 불현듯 준하의 의도가 다른데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혹시 엄마와 살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가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준하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연구실로 데려가서 마주 앉았다.

"선생님은 준하가 요새 친구들이 자꾸 괴롭힌다고 말해서 걱정이 많이 돼. 이유가 뭔지 궁금하고. 그러다 든 생각인데 너 혹시 엄마 있는 곳으로 전학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여기 친구들이 괴롭힌다고 하면 엄마 있는 데로 오라고 할까 봐?"

준하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아니어도 좋다. 난 준하의 문제 행동을 바로 잡고 싶었다. 좀 더 밀어붙였다.

"만약 그런 거라면 선생님이 준하 엄마와 아빠에게 준하 마음을 전해줄게. 난 준하를 좋아하고 준하가 우리반에 계속 있으면 좋겠어. 그래도 준하가 그렇게 엄마 곁에 가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준하 마음을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 줄게. 정말 전학 가고 싶어?"

"아니에요."

"정말? 그런 거 아니야? 계속 우리 학교 다니고 싶은 거야?"

"네."

"진짜지? 알겠어. 준하 마음이 그게 아니라니 나도 정말 다행이다. 준하야, 이제 교실 가자. 그리고 친구들 행동 때문에 너무 불편해하지 말고 이해할 건 좀 이해해 줘. 친구들도 준하 좋아해."

우린 손을 잡고 함께 교실로 돌아왔다.


그 뒤 준하의 그런 고자질은 싹 사라졌다. 여전히 선생님의 관심을 많이 요구했지만, 다 애교로 승화되었다.

매일 씩씩하게 등교했고,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놀며 건강하게 1학년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간 후, 준하의 소식은 따로 들려오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전 담임인 나에게 문의가 왔을 텐데 무소식은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고맙다, 준하야. 브라보, 유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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