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의 한글 공부(1)

한글 못 뗀 내 아이, 안심하고 입학시켜도 될까?

by silvergenuine

"초등학교 1학년, 한글은 얼마나 알고 입학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그림책을 소리내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며, 겹모음이나 받침에서 다소 막히더라도 내용의 맥락에 맞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1학년 학습을 시작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


입학할 때 아이들의 한글 습득 수준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1. 한글 선행 그룹

많은 부모들이 '다들 한글은 웬만큼 떼고 입학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학 전 한글 교육에 신경을 쓴다. 부모가 직접 교육하지 않더라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일정 수준의 기초 한글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등 여러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60~80%의 아이들이 미리 한글을 접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며 이들은 읽기, 기본적인 낱말 쓰기, 맞춤법은 틀리더라도 소리를 듣고 받아쓰기를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


2. 기초 해득 그룹

간단한 낱말이나 받침이 없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아이들. 학교에서 배우는 한글 수업을 통해 빠르게 한글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3. 한글 미해득 그룹

기본적인 낱말을 포함한 기초한글을 거의 읽지 못하는 수준의 아이들로 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 학생의 10% 내외이다. 1학년 학급당 정원 20명 중에 평균 2명 정도의 한글 미해득자가 분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전국 평균이며, 각 학급에는 저마다의 변수가 작용한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1학년 반편성을 할 때 한글 해득정도를 반영하지 못했을 경우 한글 미해득자가 특정반에 몰리기도 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학구에 따라 어떤 학교는 한글 미해득자가 0명, 어떤 학교는 10%를 훨씬 웃도는 한글 미해득자가 나온다.

한글미해득 학생은 정규국어수업만으로 한글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기에 교사의 개별적인 추가 지도가 필요하다. 최근 '한글책임교육'을 강화하여 한글 미해득 그룹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이의 역량과 가정환경 등에 따라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이상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과서 지문을 막힘없이 읽지만, 1학년의 경우에는 한글 습득 수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학습 자신감 혹은 학습 소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1학년 교실에서는 초반에 한글만 좀 잘 읽어도 '똑똑한 아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시간이 흘러 학습 내용이 발전하면 진짜 학습 역량이 드러나며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 즉, 한글이 다가 아니다, 한글은 학습을 위해 갖추어야할 장비이니 이것을 먼저 챙겨들었다, 늦게 들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판가름나지 않는다.


공교육은 아이의 한글을 책임져줄 수 있는가?

필자가 경험한 사례들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보고자 한다.


먼저 나의 1학년 때를 돌아보면, 난 위의 세 그룹 중 기초 해득 그룹에 속하는 수준으로 입학을 했다.

부모님께서는 미취학인 내가 글자를 모른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으셨고 국민학교 들어가면 어련히 배울 거라고 생각하셨다.

나에게 한글을 알려준 건 두 살 터울의 언니였다. 우리집에 몇 권 없던 책 중에 디즈니 '신데렐라'가 있었는데, 언니와 나란히 앉아 손으로 글자를 짚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내가 6살 쯤이었나, 언니도 완벽하게 읽지는 못 했지만 나와 소리내어 읽으며 내가 모르는 글자를 조금씩 알려주었다.

[신데렐무도회에 입고 갈 옷어서 생쥐들의 움을 받 직접 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빨간 글자 또는 받침을 뗀 단모음 글자만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글자나마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문장을 못 읽으니 답답했고 막힘없이 술술 읽고 싶다는 바람만 막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집중시간이 짧았고 겹모음, 겹받침 같은 게 너무 어려워서 금세 싫증이 나버렸다. 그래서 이내 책을 내려놓고 마당에 나가 놀았고, 까막눈의 스트레스 따위는 어느새 땀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도디따의 추억>

내가 입학하기 전, 두 살씩 터울이 지는 언니와 오빠가 저녁마다 방바닥에 엎드려 학교 숙제를 하고 있으면 그게 너무 부러웠었다.

"오빠야, 팔 아프지? 숙제에 글씨 내가 써주면 안 돼?"

"글씨도 모르면서 뭘 해."

"보고 따라 쓰면 되잖아!"

"글씨체가 달라서 선생님한테 다 들켜."

"글씨체가 뭔데? 다르긴 뭐가 달라!"

"말귀를 못 알아듣네, 아무튼 글씨 쓰는 건 안 돼. 그럼 옆에 있다가 글씨 틀리면 네가 지워."

난 지우개질 특명을 받고 옆에 앉아 지우개를 꼭 쥔 채로 오빠가 글씨를 틀리게 쓰기만을 기다렸다. 마치 약이라도 올리는 듯 틀리지 않고 한참을 쓰던 오빠가 드디어 글자를 틀려주어

"여기 지워."

라고 말하자 난 너무 신이 나서 외쳤다.

"우와, 도디따, 도디따!"

옆에 있던 부모님께서 내 외침에 웃음을 터뜨리셨다. 혀가 짧아서 '조짔다'(조졌다)를 '도디따'로 발음한 것이다. 가족들이 내 발음에 웃어서 기분이 상하는 와중에도 "어디? 여기 지우면 돼?"하며 공책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힘껏 지우개질을 했다.

미취학 시절, 이러한 나의 숙제를 향한 열망은 '도디따'의 일화로 우리 가족에게 남아 한번씩 회자되곤 했다.


7살이 되어 병설유치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교육과정에 기초 한글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글자를 따로 배우지 못했다. 다만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읽어주셨는데, 난 글자보다는 이야기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한글을 떼지 못한 채로, 그러나 나도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설레임을 품고 1학년에 입학했다. 3월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가갸거겨를 시작으로 빠르게 한글의 원리를 이해했고 '나, 너, 우리, 학교, 선생님' 같은 글자가 적힌 교과서를 재미있게 배워나갔다.

받아쓰기 시험을 자주 쳤었다. 요즘 1학년들 받아쓰기는 학기초에 급수표를 나누어줘서 아이들이 미리 연습해오게 하는 반면, 당시에는 즉석에서 선생님께서 불러주시는 교과서 속 문장을 적었다.

아이들이 많이 틀려서 그랬는지 여러번 시험쳤던 문장들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비둘기가 나뭇잎을 떨어뜨렸습니다.

-개미가 사냥꾼의 발목을 물었습니다.

교과서 이야기 속 문장들이라 무리가 없었고, 왜 우리 아이가 받아쓰기 점수를 못 받아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만드느냐고 민원을 넣는 학부모도 전혀 없었다. (없었겠지?)


나처럼 한글을 못 떼고 입학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학교에서 배운다 하여 그 실력이 똑같이 느는 것은 아니었다. 둘 다 키가 커서 일 년 내내 같이 앉았던 내 짝꿍은 한글을 빨리 습득하지 못했고, 받아쓰기 시험을 칠 때면 내가 공책을 중간으로 슥 밀어 베껴 쓰게 해주곤 했다.

어느 날은 그 친구에게 뭔가 심술이 났던 내가 공책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채점 결과 20점을 받은 걸 보고 그 친구의 진짜 받아쓰기 점수를 처음 알아버렸다.

"우하하하, 어떻게 20점을 받아? 바보야?"

하고 놀려먹었다. 착한 친구라 화도 못 내고 얼굴만 붉혔고, 나도 머쓱해졌다. 그 뒤로는 다시 내 공책을 보여주었고 우린 계속 같은 점수를 받았다.

내가 교사가 되어 1학년을 가르쳐보니 베껴쓰기만 잘 해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가 여럿이다. 그 옛날 내 공책을 정확하게 베낀 그 친구는 학습역량이 잠재된 우수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요즘의 7세 고시, 4세 고시 같은 조기 교육을 내가 받았더라면 과연 배움에 대해 열망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까?

교육학적으로 7살 이전은 아직 인지적 기능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시기여서 미취학 시기에는 신체발달, 정서 안정, 정서 발달을 우선으로 해야한다. 보통 8살에 인지적 두뇌가 발달하기 시작하기에 이 때가 진정 한글을 완성해나가고 학교 교육을 받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7살 이전에 남들보다 인지 기능이 먼저 발달하여 한글이나 영어를 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고 정규 교육과정상의 한글 교육 시기를 앞당겨서는 곤란하다.


내가 1학년 입학 후 한글을 무리 없이 익힌 것이 근거가 되어 나의 두 아들에게도 미리 한글을 떼게 하려고 전전긍긍 애쓴 적이 없었다.

첫째는 공룡을 좋아하여 공룡 이름을 읽고 쓰다 7살 될 무렵 한글을 거의 뗐다.

둘째는 7살 초반까지 글자를 거의 못 읽어서 '우리 까막눈'이라고 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7살 후반기가 되자 어느새 한글을 좀 읽더니 어쨌거나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문제 없이 학습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필순도 오른쪽왼쪽, 아래위로 뒤죽박죽이더니 1학년 교육을 받으며 바로 잡혔다.


여기까지는 나와 두 아들의 사례이다.

"한글을 못 떼고 학교에 가도 충분히 다 배우게 되니 안심하세요, 끝!"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교사로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 보니 마냥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귀여운 1학년 제자들이 한글을 깨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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