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의 한글 공부(2)

눈을 반짝이던 아이

by silvergenuine

몇 년 전 학교를 옮기면서 교사 경력 15년 만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2학년 담임은 두 번 해보았지만 1학년은 처음이라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입학식 일주일 전부터 동학년 선생님들과 모여 반편성을 하고, 교육과정을 짜고, 입학식을 준비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망의 입학식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했다. 코로나로 체육관 행사는 생략되어 각 교실에서 입학식을 하게 되었고, 입학생들만 교실에 들어오고 보호자는 운동장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행사가 10시 예정이라 교실에서 할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9시도 안 되어 교실에 들어오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1학년에게는 입학날이지만, 2학년 이상에게는 3월 개학날이기도 했기에 2학년 학생이 교실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안녕? 넌 누구니?"

"저는 송지우예요."

"넌 몇 학년이야?"

"이제 1학년 되는데요."

"올해 1학년이라고? 10시에 입학식인데 벌써 온 거야?"

학급 명단을 확인해 보니 송지우가 우리반이 맞다.

"지우가 우리반이 맞구나. 난 1학년 2반 선생님이야. 반가워. 교실에 잘 찾아왔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엄마가 출근해야 해서 이모가 지금 교실에 가있으라고 했어요."

아이가 까불지도, 주눅 들지도 않고 차분히 대답을 했다.

"그랬구나, 엄마는 출근하시고 이모가 데려다주셨어? 그래서 이렇게 일찍 왔구나. 너 정말 씩씩하다. 일단 지우 자리에 앉아보자. "

각 입학생 자리마다 이름표와 안내파일을 미리 배치해 두었기에 지우의 자리를 찾아서 앉혔다.

입학식까지는 1시간이나 남아있는데 그동안 지우가 너무 지루할 것 같아 뭔가 할 거리를 줘야 할 것 같았다.

" 지우가 뭐 하면서 기다리지? 음... 그림 그릴래?"

"네, 저 그림 잘 그려요."

그래서 아이에게 종이를 주니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말투며 하는 행동을 보니 똘똘한 아이겠구나 싶었다. 마침 1학년 입학선물로 준비해 둔 색연필과 사인펜에 아이들의 이름스티커를 미리 붙여놓으려던 참이었는데 지우에게 시켜보면 어떨까 싶었다.

"지우야, 선생님이 여기 색연필이랑 사인펜에 우리반 친구들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지우가 좀 도와줄래?"

지우가 잠시 망설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저는 글자를 못 읽는데요."

부끄러워하는 듯한 지우의 말을 듣고 좀 당황했다. '아직 글자를 모른다고? 엄청 똑똑하게 봤는데 의외인데? 요즘 1학년들은 글자를 많이 배워서 들어온다던데... 아니지, 원래 입학하고 한글을 배우는 건데 당연히 읽을 줄 안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한 거야.'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아, 그렇지! 1학년 입학하면 배우는 거니까 당연히 아직 못 읽을 수 있지. 지금 지우가 글자를 못 읽어도 이 일은 도와줄 수 있어. 여기 있는 친구들 이름 스티커를 순서대로 떼서 케이스에 붙이기만 하면 돼. 할 수 있지? 그럼 좀 도와줘."

지우는 기쁜 기색으로 이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걸로 지우가 지루한 시간을 좀 오래 때웠으면 했는데, 순식간에 일을 끝내고는 다른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야, 지우가 친구들 이름을 정말 반듯하게 잘 붙여줬네. 고마워. 그럼 이제 지우가 책상 위에 있는 친구들 이름 보고 이 색연필이랑 사인펜을 각자 자리에 올려둘 수 있겠니? 읽지는 못해도 같은 이름 글자를 찾으면 되는데, 해볼래?"

"한 번 해볼게요."

하고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일을 다해주었다.

지우에게 신경 쓰며 아침에 할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들어와 자기 이름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현관에서부터 보호자와 떨어져 안내 선생님을 따라 혼자 교실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조용히 나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첫 1학년 담임으로서 나도 떨렸지만, 나보다 긴장한 녀석들을 챙겨 준비한 대로 입학식을 무사히 치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에게 인계해 주었다.


한글 책임교육, 그 첫걸음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1학년의 학교 적응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1학년' 교재에 따라 학교 안의 여러 장소를 둘러보고, 급식실, 화장실, 도서관 등의 사용 규칙을 익히고, 선긋기, 색칠하기, 가위질, 기초 한글 따라 쓰기 등을 하며 제법 초등학생다운 면모를 갖추어 갔다.

1학년 입학 초기 한글교육의 디폴트값은 모두가 한글을 처음 배우는 단계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자모음의 종류와 소리값, 조합 원리와 읽고 쓰는 법을 기초부터 배우고, 일상에서 접하는 명사부터 읽고 쓴다. 이미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이라도 한글 자모음의 정식 이름과 조합원리, 획순 등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아이들도 신선하게 배움을 받아들인다.


입학식날 나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던 지우는 본인 말대로 글자를 거의 모르는 상태였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한글 습득 정도가 가장 낮았다. 야무지고 성실한 아이였지만 한글 미해득으로 인해 학기 초 국어 시간에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우의 강점은 수업 태도에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바르게 앉아 나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고 나 역시 지우의 이해 정도를 살피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또래 친구들만큼 한글실력을 끌어올려서 학습자존감을 지킬 수 있게 하려면 개별지도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3월 기초학력부진학생을 대상으로 두드림교육대상자를 모집할 때, 진단검사를 치르지 않는 1, 2학년은 담임의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대상자를 추천할 수 있다. 학부모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지우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지우 어머님, 지우가 입학식날 혼자 교실에 일찍 와서 저를 도와주어서 얼마나 대견했는지 몰라요.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태도가 정말 눈에 띄어요. 그런데 한글이 또래친구들보다 늦은 상태라서 방과 후에 저와 시간을 맞춰서 따로 공부를 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선생님. 작년에 지우 아빠가 갑자기 하늘나라에 가서 제가 지우 한글을 못 챙겼어요.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 지도해 주시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네, 어머님. 안 그래도 지우가 저에게 아빠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우리 지우가 엄마 걱정 안 하게 학교생활도 너무 잘하고 있고, 지금 수업 태도를 보면 앞으로도 정말 많이 발전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글도 금방 뗄 거예요."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두드림 수업으로 한글과 기초 수학을 지우에게 지도하게 되었다. 당시 다문화 학생 지도는 1대 1 지도가 원칙이었던 것에 반해, 두드림 수업은 최소 2명 이상을 지도하도록 지침이 내려와 있었다. 그래서 담임과의 방과후 두드림 수업을 희망하는 다른 학생의 신청을 받아 지우와 함께 1대 2로 수업을 구성했다. 지우와 수준차이가 많이 났기에 둘을 함께 지도하는 것이 지우에게 미안했지만, 다행히 그 친구가 지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절대 놀리지 않았고, 학습놀이 위주의 활동을 많이 해서 둘인 게 좋을 때도 있었다.

정규수업, 방과 후 두드림 수업에서 내 말에 집중하며 자신의 속도대로 배워나간 지우는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또래 친구들의 한글 실력을 따라잡았다.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글 또박또박 검사에서 1학기에는 미해득, 2학기에는 해득으로 결과가 나오며 발전 정도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첫 1학년 담임을 하며 거의 백지상태였던 지우가 한글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교육에서 한글교육을 책임져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이들의 한글 교육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으면

"학교에서 한글 기초 교육을 책임지고 제공하니, 입학 전에 한글을 다 모른다 해도 불안해하지 마세요. 아이가 열심히 배우면 금방 따라갈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2년 뒤, 또다시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나의 이 확신은 흔들림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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