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의 한글 공부(3)

우리 반 콩나물들에게 물 주기

by silvergenuine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했는데 어느 날부터 정신 차리고 각 잡고 공부했더니 성적이 치고 올라왔다-

라는 경험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그 어느 날 공부를 해야겠다는 내적동기를 스스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어느 정도의 지능과 학습환경이 갖추어져 있었기에 본인의 목표설정과 노력이 부여되면서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듯 제대로 타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학습과 마찬가지로 한글 습득 역시 본인의 내적 동기와 노력, 학습 환경이 맞물렸을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기 한글 습득에는 다음과 같은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1. 내재적 요인

학생 개인의 특성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성장 과정에서 발달시켜 나가는 개인 내부의 특성을 말하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인지발달 수준: 음운 인식 능력을 지니고 한글의 소리와 글자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인지 능력

-주의집중력: 교사의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고, 학습 과제 수행에 집중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

-기억력: 자모음의 소리와 원리를 이해하고 장기 기억으로 저장 및 적용하여야 새로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

-학습동기, 태도: 학습에 대한 흥미, 관심, 자아효능감

-시지각 능력: 글자의 모양과 방향 등을 구분하여 인식하는 능력


2. 외재적 요인

학생을 둘러싼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환경을 말하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정환경: 가정에서 한글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거나 그림책을 자주 읽어줌으로써 언어발달 및 한글 습득에 영향을 미침

-사전 경험(선행학습):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취학 기관에서 기초 한글을 미리 접하는 경험

-학교 및 교사의 지도: 정규 교육과정 및 개별 맞춤형 지도(두드림교육, 한글책임교육)

-또래 집단의 영향: 또래 모델링을 통해 학습이 촉진되기도 함. 한편, 또래 친구들보다 한글 해득 수준이 낮을 때 학습소외감이나 심리적 위축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학습 좌절이 아닌 학습 동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함

-언어적 상호작용: 일상생활에서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풍부하고 정확한 언어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어휘력과 문해력 발달의 기초를 쌓음


앞서 이야기한 지우의 사례는 평균 수준의 지능, 정서 안정, 학습동기 같은 내재적 요인은 충분했으나 가정 상황으로 인한 학습환경의 결핍으로 한글습득이 늦어진 경우로써, 초등학교 입학 후 적절한 지도를 제공받으며 순탄하게 한글을 습득한 경우이다.


반면 이제 풀어놓을 이야기는 학습 환경은 주어졌으나 내재적 요인의 부족으로 한글 습득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이다.


내가 두 번째로 1학년 담임을 맡은 우리 반은 같은 1학년 중에서도 기초학력 수준이 제일 낮은 반이었다. 1학년 놀이체육 전담선생님은 같은 1학년 중에서 우리 반이 제일 어리고 제일 해맑으며 제일 규칙을 이해 못 하고 인지 능력뿐 아니라 신체능력도 제일 발달이 늦다고 담임인 나를 볼 때마다 말씀하셨다.

"난 그 반 수업이 제일 힘들어, 일주일에 두 번 보는데도 이런데, 수업을 어떻게 해?"

"그래도 몇 명 우수한 애들도 있잖아요?"

"그 반의 우수한 애가 다른 반 평균이야."

"아, 진짜요? 전 우리 반만 보니깐 잘 몰랐어요. 다른 반도 비슷한 줄 알았죠"


하긴 2학기에 반별 피구대항전을 했는데 우리 반은 모든 반에 전패를 했었다. 마지막 12월 즈음에 딱 한 세트를 이긴 적이 있었는데 뿌듯하게 교실로 돌아오던 아이들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 우리가 드디어 이겼어요! 다 이긴 건 아니고요, 한 세트 이겼어요."

"우와, 우리 반이 드디어 한 세트 이겼구나. 고생했다. 드디어 해냈구나!"

매번 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나였지만,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평균적인 신체 발달이 느렸던 만큼 인지 발달도 함께 느린 편이었다. 실제 영유아기를 비롯하여 7세 이전까지는 신체 활동 자체가 인지 발달의 재료가 되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1학년 전체가 받아쓰기 급수표를 공유해서 같은 내용으로 시험을 치면 다른 반은 백점이 열 명도 넘는다는데, 우리 반에서는 백점이 한 명도 있다 말다 했다. 80~90점이면 잘한 거였고, 0점에서 50점이 절반이었다.

옆반 선생님이 조언을 하셨다.

"틀린 문장을 열 번씩 쓰게 하면 돼. 몇 번 해보면 자기가 힘드니깐 안 틀리려고 더 노력할 거야."

틀린 문장을 열 번 쓴다는 것은 학습이라기보다는 벌칙인 것인데, 그 열 번을 쓰려면 끈기와 과제수행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아이라면 애초에 0점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틀린 문장이 너무 많으니 열 번은 도저히 안 되겠고, 세 번씩 정확히 써오라고 숙제로 내주었다. 다음날 숙제 검사를 해보면 또 틀리게 쓴 부분들이 있어서 그걸 또 고치게끔 지도해야 했다.

하다못해 받아쓰기 시험을 친 직후, 친구들과 비교해서 서로 다르게 쓴 부분을 찾아보게도 해보았다. 뭐가 맞는지 상의해서 함께 받아쓰기 문장을 고쳐오도록 한 후 채점을 해보아도 백 점을 맞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방법은 그나마 중상위권인 아이들끼리 짝을 이루면 효과적인 방법으로, 하위권끼리는 서로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중상위권과 하위권을 짝지으면 일방적인 베껴쓰기가 되는데 그것도 시간 안에 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도 교사의 지도, 또래학습, 가정협력지도를 총동원하며 1년 동안 애쓴 결과 전반적인 한글 실력은 끌어올려졌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새어버린 것 같아도 그를 통해 콩나물이 자란다. 우리 반 아이들도 조금씩 발전하여 대부분 교과서 지문도 또박또박 읽고, 어디 가서 웬만한 글자는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으로 1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한글 미해득자가 남았다. 그것도 두 명이나.

우리 반 학생은 오붓하게 15명이었다. 80대 20의 파레토 법칙을 적용해 보면 상위권이 3명, 하위권이 3명일진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받아쓰기만 놓고 보자면 90~100점이 3명, 0~10점이 3명인 셈이다.

해님, 달님, 별님이.

이미 도움반으로 입학했던 별님이는 한글또박또박 검사대상이 아니었고, 해님과 달님이는 1, 2학기 검사 모두 미해득으로 결과가 나왔다. 1학기에는 까막눈에 가까운 미해득이었고, 2학기에는 기본적인 글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끝내 미해득 기준을 넘지 못한 채로 2학년에 진학했다.


햇님과 달님, 별님이의 이야기는 다음 연재들에 이어갑니다.

※ 글 속의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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