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의 한글 공부(4)

저도 울리고 싶진 않았어요

by silvergenuine

1학년 반편성, 핵심은 '균형 있는 출발선'

초등학교 1학년 반편성은 보통 1월 가입학식 때 받아둔 가정환경조사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 조사서는 기본적으로 성별, 쌍둥이 여부, 이주배경 학생, 특수교육 대상 여부, 형제자매 관계 등을 파악하여 학급의 균형을 맞추는 데 사용된다. 입학생의 한글 해득 수준 학교마다 사용하는 양식이 달라서 그 반영 여부가 갈리는데, 1학년 담임 경험이 있는 교사들은 한글 해득 수준을 기입하도록 하여 반편성에 반영하는 것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왜 한글 해득 수준을 반영해야 하는가?

1. 개별 지도 효율성 확보

한글 미해득 학생이 한 반에 과도하게 몰리는 것을 방지하여 각 학급의 담임교사가 세심한 개별맞춤지도를 제공할 수 있다.

2. 수업의 하향 평준화 방지

학원에서는 수강생의 레벨을 나눠 수준별 수업을 제공할 수 있지만, 공교육 현장에서는 다양한 학습 수준의 학생들이 한 반에 섞여 있기에 학생들의 평균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한글 미해득 학생이 한 반에 집중편성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수업의 하향평준화를 방지하기 위해 한글 해득 수준 반영이 필요하다.


해님이, 달님이와 함께 한 그 해의 입학 전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한글 해득 여부를 기입하는 란이 없었다.

다만, '담임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란'이 있어서 그 란을 통해 학부모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대어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해님이의 그 칸에는 딱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

'한글을 아직 못 뗐어요.'

두 해 전 한글 미해득이었던 학생을 한글 술술 어린이로 지도해 낸 경험을 떠올리며, '흠, 그럴 수도 있지. 3월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면 되겠지'라고 야심 차게 생각했다.


한편, 달님이의 '담임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란'은 그냥 비워져 있었다.

'2학년에 올라가는 연년생 오빠가 한 명 있네... 이제 집안의 첫 1학년이 아니라고 그냥 당연한 절차처럼 입학을 시키는 건가. 좀 무심해 보이는데, 그래도 바로 위 오빠가 있으니 집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해님이와 달님이를 한 반으로 편성했고 랜덤 뽑기를 통해 나의 반이 되었다.

달님이의 한글 실력은 입학 첫 주에 바로 드러났다. 어중간하게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고만고만하게 웬만한 활동들을 해내건만, 아예 글자를 못 읽으면 간단한 활동 안내를 읽는 것에서부터 막히니 개별적 도움 없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달님이의 한글 수준은 해님이보다 더 낮았고 이 때문에 수업시간에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졌다. 우리 달님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해님과 달님이의 고군분투 1학년 이야기


우리 해님이는 통통하고 눈이 송아지처럼 큰, 귀여운 외모의 남자 아이다.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눈도 바쁘게 돌아간다. 선생님에 대한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바로 해서 수업 흐름을 끊어놓기 일쑤다. 근데 그 내용이 영 불안하다.

1년 동안 천 번쯤 들은 말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교과서 뒤의 붙임 딱지를 떼야할 때면

"선생님, 저 이거 안 떼져요, 해주세요."

"한쪽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힘 있게 잡아당기면 돼."

"안 돼요. 선생님, 못 하겠어요. 도와주세요"

3월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교과서 뒤의 붙임딱지면을 떼어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내가 떼어주기도 하고, 가위로 잘라내게도 했다. 그러다 2학기가 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끔히 잘 떼어내게 되었는데, 해님이는 끝내 손으로 떼어내지 못하고 가위를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 머리와 손의 협응이 어려웠던 것이다.

문장을 보고 따라 적도록 하면 눈과 손의 협응이 되지 않아 자기가 어디를 적고 있었는지를 놓쳐서 중간에 멈춰버린다.

간단한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것도 되지 않았고, 사람이나 토끼 같은 동물, 나무, 꽃 등의 형태를 그리지 못했다. 색칠하기 활동에서도 적절한 색깔로 구역을 구분해서 색칠하지 않고 한 가지 색으로 다 칠해버렸다. 색종이 접기를 하면 반으로 접기 같은 간단한 과정도 따라 하지 못해서 항상 도와달라고 했다.

인사하는 모습이나 웃고 떠드는 모습만 보면 보통의 1학년 학생인데, 입학 후 이어진 활동들 속에서 해님이가 일반적인 수준의 1학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해님이 엄마와 상담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같아 3월 3주 교육과정설명회날을 기다렸다가 교실을 방문한 다른 학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갈 때, 해님이 엄마를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해님이 어머님, 해님이 학교 생활에 대해서 좀 더 말씀 좀 나누고 싶어요."

설명회 내내 조용히 앉아계셨던 해님이 엄마는 해님이처럼 눈이 컸다. 가정환경조사서에 아이가 한글을 아직 떼지 못했다고 쓰기까지 엄마 딴에는 또 얼마나 애를 써봤을지 짐작이 갔다. 일단은 교실에서의 해님이 모습에 대해 소상히 말씀을 드렸다. 님이 엄마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참아왔던 눈물을 쉴 새 없이 쏟았다.

"선생님,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어머님께서도 집에서 신경 많이 쓰실 텐데 오늘 제 얘기 듣고 너무 속상하셔서 어떡해요. 어머님 너무 고생 많으시고요, 일단 제가 학교 수업 시간에 해님이를 잘 챙겨볼게요. 그리고 4월부터 두드림수업이라고 방과후에 저와 개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수업이 있어요, 신청 안내드리면 그때 꼭 신청해 주세요. 학교 수업에서 못다 한 내용은 제가 쉬는 시간에 최대한 보충해주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끝내지 못한 것들은 가정에 과제로 보낼 수 있으니 그런 것은 가정에서 좀 도와주세요."

아들의 발달 수준에 대해 품었던 막연한 불안감의 실체를 조금씩 마주하며 엄마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해님이가 밝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점점 나아질 거예요."

해님이 엄마를 토닥였다. 해님이 엄마는 담임인 나를 믿고 협조하였고 해님이의 학교 과제를 열심히 도우셨다. 그러나 해님이의 발전은 경미했다.


그러던 4월 말, 울산 지역교육청에서 기초학력부진학생을 지원하는 '움터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 공문을 보내왔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공문이었는데, 해님이에게 필요한 검사와 사후 지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고 움터 프로젝트에 해님이를 추천했고 이내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원래 움터 프로젝트의 지원대상은 난독 학생, 경계선 지능 학생, 학습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인데, 해님이는 1학년이라 이제 처음으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보게 되는 것이다.

웩슬러 아동 지능검사(K-WISC-V), 한국어 읽기 검사, 아동 청소년 행동 평가 척도, 주의력 검사, 학습 동기 및 습관 검사, 학부모 상담, 가정환경조사, 담임교사 관찰 기록 등을 통해 인지적, 정서적, 환경적 요인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기에 나 또한 움터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었다.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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