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어쩔 수가 없는 현실
'모른 채로' 성실히
40대 이상의 성인들에게 혹시 국민학교 시절 IQ가 얼마였는지 물어보면 희미하게나마 학교에서 받았던 지능검사 결과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지능검사를 시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낙인 효과와 서열화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이 정책은 폐기되었다.
현재는 자신의 지능지수가 궁금하다면 개인적으로 비용을 들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사설 심리 상담 센터나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등에서 검사를 제공하며 지능지수 외에 정서상태나 주의력(ADHD)등의 검사를 추가할 경우 20만 원에서 50만 원 내외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대부분의 부모는 지능검사에 대한 접근성과 비용의 문제뿐 아니라 정확한 지능 지수를 아는 것으로 인한 낙인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막연히 '평균은 좀 넘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능 검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크게 염려할만한 수준이 아닌 이상 아이의 정확한 지능 지수를 '모른 채로'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해나가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교실 현장에서는 학생의 인지적 한계에 대해 모른 채로 지나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해님이의 움터 프로젝트 검사를 위해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한 후, 기관에서도, 가정에서도 한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담임교사인 나는 수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해님이의 지능지수 자체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여러 학습 부진 학생들을 지도해 보았지만, 해님이는 단순히 느린 수준을 넘어 학습내용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여 어떤 절차에 따라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기본적인 글자 외에 받침, 겹모음, 겹받침을 읽고 쓰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거나 쓰지 못하며 남의 말을 따라한다.
-기본 연산이 되지 않으며 손가락, 동그라미, 수모형 등 구체물을 이용한 덧셈과 뺄셈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이접기, 만들기, 그림 그리기가 안 된다.
해님이 수준으로 한글이 안 되는 달님이, 수학이 안 되는 영태도 있었지만 해님이는 그들의 어려움들을 모두 모아놓은 상태였다.
해님이가 수업 시간에 따라오지 못한 부분을 보충해 주려면 쉬는 시간에 개별지도를 해주어야 했는데, 해님이에게 인지적 한계가 분명 있었고 본인의 학습 동기와 주의집중력이 약했기 때문에 지도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학습 내용을 짚으며 설명하는 사이 해님이의 눈동자는 어느새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국어교과서에 쓸 내용을 보고 적으라고 하면 금세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고 주변 상황을 살피느라 주의가 다 흩어졌다. 문장 하나를 보고 그대로 적으라고 해도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에 맞게 정확하게 옮겨 적지 못했다. 말로만 지시해서는 불가능하고 아이가 적는 부분을 손으로 짚어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알려주어야 했는데 학교에서의 시간과 교사라는 인적 자원은 한정적이었으므로 결국 이런 세심한 지도를 해준 사람은 가정의 엄마였다. 못다 한 공부를 집으로 보내면 엄마의 도움 아래 완벽하게 답안을 작성해 왔다. 그 점이 감사하고 힘이 되었으나, 막상 아이에게 내용을 물어보면 여전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님이에게 작은 성취를 누적시키면서 학습 동기를 키워주고 싶었지만, 학습적인 영역에서 작은 성취 하나를 이루어내는 것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십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마주한 검사 결과와 부모의 부정
해님이의 검사결과를 마냥 기다리던 나는 결국 7월에 접어든 후 먼저 센터에 문의 전화를 했고 곧바로 자료를 공유받았다.
가장 알고 싶었던 해님이의 웩슬러 지능지수는 62점으로, 이는 전체 인구 중 하위 3%에 해당하는 드문 수치로 경계선 지능 정도를 예상했던 나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주의력 검사 결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소견도 있었는데, 이는 지능지수 결과와 함께 그동안 겪었던 학습지도의 어려움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지능지수에 따른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기준이 70점 이하여서 특수반 선생님께 교내 메신저로 문의를 드리니 깜짝 놀라며 바로 나를 찾아오셨다. 한글과 수학 학습 외에도 사람, 동물, 나무 같은 그림을 아예 못 (따라)그리는 것, 종이접기를 못 따라 하는 것 등의 특징을 확인하시고는 올해의 신청 기회를 놓치기 전에 바로 신청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면 받을 수 있는 지원 내용에 대해서 알려드릴 겸 본인도 해님이 보호자와 직접 통화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담임으로 느꼈던 막막함에서 벗어나 이제 해님이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잠시, 해님이의 부모님과 통화를 해보니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셨다. 검사장의 환경과 시간제한, 아이 눈높이에 맞는 설명 부족 등을 탓하며 검사 결과를 불신했고, 더 세심히 가르치고 기다려주면 아이가 깨우치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계셨다.
해님이에게 그런 세심한 개별 교육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특수교육인 것인데, 해님이 부모님은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고, 또 아이가 사회적 낙인을 받게 될까 봐 염려되는 마음이 커서 신청을 보류하고 싶어 하셨다.
해님이 부모님의 현실 부정과 망설임에 나보다도 특수반 선생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셨다.
IQ 50~70은 경도 지적장애에 해당하므로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주로 받으면서 국어와 수학만 개별화 교육계획에 따라 아이에게 맞는 수준의 학습을 하게 된다. 교실에서 같은 학업성취기준을 적용받으며 좌절하기보다 본인에게 맞는 목표에 따라 점진적으로 학습하는 게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치료 등에 월 일정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부모 상담 등 가족을 위한 심리적 지원도 제공받을 수 있는데 신청 보류로 인해 이러한 기회 역시 모두 미뤄두게 되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부모가 신청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제도적인 도움이 없다.
그저 1학년을 마치기 전까지 담임으로서 해줄 수 있는 교육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끝내 한글 미해득 기준을 넘지 못한 채 1학년을 마쳤고 문해력까지는 바라지도 못했지만, 기본적인 문장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1학년은 학교 적응활동 위주이며 통합교과(즐거운 생활,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수업이 많아서 학습적 부담이 적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해님이는 엄청한 학습 장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좌절감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인의 성향을 만나 공격적으로 표출될 위험성이 엿보인다.
해님이의 검사결과에도 강점이 있었으니 학교 생활을 좋아하고, 사회성이 일반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을 좋아해서 따라다니고, 방법은 서툴지만 눈치껏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으며, 수업 시간에는 최대한 자기의 약점을 숨기고 아는 척 버텨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얼핏 보면 보통의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적극적이고 활발한 아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습이 주를 이루는 학교 수업 속에서 개별맞춤형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신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존감이 낮아지고 좌절감, 분노, 우울감이 커질까 봐 염려가 된다.
2학년에 올라가서는 부모님이 해님이를 위해 결단을 내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을 받게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를 통해 해님이가 적절한 지원 속에 자신의 역량을 키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라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