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입학 전 가정환경조사서의 '담임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 란에 아무 말도 적혀 있지 않았던 달님이.
머리를 길게 기른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게 단발 사과머리를 하고 아침마다 연년생 오빠와 함께 큰 도로를 건너 느지막이 교문을 통과하는 우리 달님이.
매일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시는 교장 선생님께서 어느 날 달님이 얘기를 하셨다.
"내가 매일 아침에 그 반 여학생 올 때까지 기다리잖아. 그 애까지 오면 이제 전교생이 다 온 거야."
"네? 누구 말씀이세요?"
내심 달님이를 생각하며 좀 더 자세히 여쭤보았다.
"맨날 오빠랑 같이 산 넘어서 종 치기 전에 오는 여학생 있잖아.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코도 훌쩍이고 좀 안쓰러워 보이던데, 교실에서 잘 지내나?"
"아, 우리 반 달님이요. 성격이 착해서 친구들하고 잘 지내긴 하는데, 아직 한글을 못 떼서 우리 반 해님이랑 같이 오후에 두드림 수업도 하고 있어요."
사실 착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착하다'는 말의 함정에 아이를 가두게 될까 봐 조심스러운 면이 많지만, 교장선생님과의 대화는 그 정도로 마무리했다. 어차피 디테일은 나의 몫이니.
착해 보이는 이면에 달님이는 어딘지 주눅이 들어 있고, 주의가 산만한 대신 친구들의 눈치를 살펴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재빨리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예를 들어 친구가 지우개를 떨어뜨리면 부탁받지 않아도 누구보다 빨리 지우개를 주워주고, 모둠을 구성할 때 인원수가 안 맞으면 자기가 먼저 빠져준다. 이런 행동은 어른의 세계에서는 배려와 양보의 미덕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아직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8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주의 깊게 봐야 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달님이의 자존감은 괜찮은지, 친구들 사이에서 달님이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균형을 맞춰주어야 한다.
입학 전 한글교육 방임의 함정
입학초기 달님이는 한글이 완전 미해득 상태였다. 사회성 같은 관계 지능은 무사히 발달해서 첫인상과 말하는 모습으로는 미해득을 알 수 없었지만, 수업 시간이 되자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바로 드러났다.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일 때 작은 소리로 읽거나 발음을 뭉개서 한글을 못 읽는다는 것을 숨기고 싶어 했으나 당연히 표가 났고, 친구들은 담임인 나의 눈치를 살펴 놀리는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1학년 3월에 한글을 처음 배운다는 것이 국어 교육과정의 출발점인데 비해 실제 국어와 수학 교과서에는 이미 문장으로 된 안내 지문이 나온다. 입학하는 아이들의 한글 수준은 천차만별로 분포하니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막막하다.
그래서 1학년 교과서는 모순 덩어리다.
다른 학습 내용을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한글이 그 자체로 학습 내용이 되는데, 그 기초한글을 배우기 위해 문장부터 읽어야하니 말이다. 국어교과서보다 어이 없는 건 수학교과서. 국어시간에 가나다를 배울 때 수학시간에는 문장을 읽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곧바로 등장한다.
교과서 속 문제 수행을 위해 지시문을 읽어야 할 때 아이들이 아직 한글을 못 읽는다는 교육과정의 전제에 따라 교사가 읽어주거나, 또래 간의 학습 촉진을 위해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한글을 습득하고 따라와 주면 좋으련만 달님이의 한글 실력은 좀처럼 늘지를 않았다.
3월에 자음과 모음, 기초 낱말부터 공부할 때에도 달님이는 좀체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교과서를 읽을 때 눈이 글자를 따라가지 못하니 소리와 글자를 연결하지 못했다.
"달님아, 읽기 전에 손가락으로 시작 부분을 딱 짚고 있다가 소리를 들으면서 손가락이 따라가고 눈도 글자를 봐야 돼. 그래야 글자와 소리를 맞춰보지."
그러나 달님이의 속도에서는 그것이 너무 어려웠나 보다. 어느새 손가락은 갈 곳을 잃어 엉뚱한 곳을 짚고 있었고 달님이의 귀와 눈과 손가락은 모두 따로 놀았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하나 배워가는 수업인데, 정작 그런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이미 기본기가 있는 아이들은 수업 내용이 귀에 더 쏙쏙 들리는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아는 것을 하나라도 더 발표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수업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학습욕구뿐 아니라 시청각주의력과 사고력이 필요한데 달님이에게 이 역량이 충분했다면 이미 취학 전에 어느 정도 한글을 익혔을 것이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렇게 한글을 떼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달님이에게는 이런 내재적 역량이 부족했다. 이런 경우 외부적으로 더 많은 양적 투입을 해주어야 한다.
달님이 수준의 아이를 위해 한글책임교육의 일환으로 '채움교사'라는 정책이 있는데 이는 수업 중에 이 아이만 따로 빼내 일대일로 맞춤 한글교육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채움교사가 모든 학교에 보급된 것이 아니어서 우리 학교에는 해당이 없었고 내가 달님이에게 개별지도를 해주려면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두드림 수업 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해님이와 달님이를 동시에 봐주기에 역부족이었고 생각보다 아이들의 한글이 늘지 않았다.
보호자의 역할
달님이 엄마가 해님이 엄마만큼만 교육에 협조적이라면 달님이 실력이 더 빨리 늘 텐데, 학교에서 못다 한 한글 과제를 집으로 보내도 아이 혼자 좀 해보다 고스란히 들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달님이 엄마에게 기대를 못하니 연년생 오빠는 어떠한가 궁금했다. 2학년의 달님이 오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학습 수준을 여쭸다. 100점이 수두룩한 받아쓰기 공책을 보여주며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잘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오빠가 알아서 잘하니 엄마는 달님이도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는가 보다.
오빠가 달님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은? 5% 정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모른다고 면박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겠고.
아침마다 20분씩 함께 걸어서 등교하는 것만 해도 대견한 남매다.
2학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문장 받아쓰기 시험을 치자 달님이는 계속 0~10점을 받았다. 오답문장 쓰기 과제를 해오기는 하지만 검사해보면 읽을 줄을 몰랐다.
달님이 엄마와는 두드림수업 신청 전 한번 연락을 주고받은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받아쓰기 시험에도 아이에 대한 조력이 없자 연락을 한번 드려야겠다 싶었다. 웬만하면 가정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려던 나인데, 그동안 내 안에 참아오던 응축된 에너지를 끌어모아 달님이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님, 달님이 한글이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늦어서 아이가 위축된 모습이 보입니다. 저도 교실에서 신경 써서 봐주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 가정에서도 달님이 한글 공부를 함께 봐주시면 달님이 한글 실력이 더 빨리 늘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것보다 우선 받아쓰기 문장 쓸 때 읽는 연습을 같이 시켜주시면 달님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알겠다는 답장이 왔고, 그 뒤로는 확실히 집에서 받아쓰기 오답 적기 과제를 봐준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써온 문장을 읽어보라고 하면 예전보다 한결 정확하게 읽었다. 아이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달님이 열심히 공부해 왔네! 누구랑 같이 공부했어?"
"엄마하고 같이 했어요."
달님이가 배시시 웃었다.
후회가 되었다. 지레 달님이 엄마에게 말해봤자 챙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내 선에서 지도해보려 했었는데, 그러지말걸, 진작에 연락드릴 걸. 그랬으면 달님이가 더 빨리 발전하고 자신감을 길렀을 텐데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달님이 엄마가 가정지도를 병행한 후 달님이 한글이 조금씩 향상되는 게 보였다.
학교를 믿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입학초기 기초 한글습득은 가정에서 반드시 함께 챙겨서 한글이 아이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내 아이가 느려 보일수록 학교의 한글교육을 온전히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있음을 알고 잘 챙겨봐 줄 필요가 있다.
달님이가 가정에서 세심히 케어받지 못하고 한글미해득으로 위축되는 사이, 교실의 여왕벌이 달님이의 자존감을 노리고 있었다.
여왕벌의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