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거기서 자꾸 그러시면 안 됩니다.

쓰앵님을 믿으세요

by silvergenuine

준하는 등교 전쟁을 하던 시기에도, 등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만 들어오면 여느 아이들처럼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걸 좋아하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놀거리를 찾아서 열심히 놀았다. 기질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담임인 나의 관심을 끌려고 항상 애를 썼다.


학습준비물실에 학습자료를 가지러 가려하면

"선생님, 어디 가요? 저도 갈래요."

하면서 꼭 따라와서는 준비물 바구니를 들고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교실 앞에 갖다 놓았다.

"무거울 것 같은데, 선생님이 좀 들자."

"안 무거운데요."

"진짜? 준하가 힘이 엄청 세네."


내가 쉬는 시간에 심심해 보이는 아이에게 옆반에 갈 심부름을 시키면

"저도 가면 안 돼요?"

하며 졸랐다. 심부름 하나에 준하뿐 아니라 눈치 빠른 두세 명이 꼭 따라붙었다.

"같이 가도 돼."

하고 보내주면 우르르 그 아이를 쫓아가 손에 든 물건을 서로 뺏어 들려고 해서 다툼이 되기도 했다.

"내가 들래."

"선생님이 나보고 하라 그랬어!"

이상하게 말이 와전되고 혼선이 생겼다.

"먼저 받은 친구가 들고 다른 친구들은 옆에 같이 가기만 해야 돼. 다른 친구들은 옆반 교실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 앞문에서 기다리세요."


6인 테이블에 2명씩 앉고 있는 급식 테이블에 내가 요일마다 돌아가며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데 내가 식판을 들고 올 때마다 매번

"선생님, 우리 테이블에는 언제 앉아요?"

하고 물어보고, 드디어 자기 테이블에 앉는 날이 되면

"오늘 선생님 우리랑 먹는다!" 하며 큰소리로 외치는 준하였다. 급식을 먹으며 주말에 만난 엄마의 강아지 이야기, 아빠랑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이야기 같은 걸 들려주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대출, 반납할 책이 있어서 학교 도서관에 갈 때면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도서관 같이 갈 사람?"

하고 묻곤 한다. 그러면 거의 절반의 학생이

"저요, 저요, 저도 가야 돼요."

하며 따라나섰다. 준하는 매번 재빨리 내 옆에 따라붙어서 손을 잡으려 했는데 난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준하 손을 잘 잡아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안 잡아요."

"왜요, 왜 잡으면 안 돼요?"

"한 명만 손 잡으면 다른 친구들이 서운할까 봐 그래. 손 안 잡아도 같이 가면 되지."

내가 유치원이나 1학년 때 선생님 손을 독차지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한 번도 선생님 손을 잡아보지 못했던 나는 그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차마 선생님께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마음을 알기에 섣불리 학생 손을 잡고 다니지 않는다. 장애가 있어서 손이 필요한 아이거나, 한두 명의 학생과 함께 걸을 때만 손을 잡곤 한다.


늘 담임의 관심을 갈구하는 준하로 인해 난 중심을 잡고 기울어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 그 밖에도 주도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포용적인 리더십은 아직 부족했던 준하는 친구들과 소소한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10월은 학급 운영의 결실이 보이는 시기다. 그동안 쌓아온 담임과 학생들 간의 라포로 서로 편안해지고 아이들은 학급의 규칙에 맞게 능수능란하게 학교 생활을 한다. 그러기에 10월은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기에 좋은 시기다.

모든 게 서툴렀던 3월과 달리 어엿하게 성장한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시간, 교실에는 학생보다 보호자들이 더 많았다.


그날 준하를 보러 아빠, 할머니, 엄마가 모두 오셨는데, 공개수업 중 아이와 학부모를 다 매칭해서 알아볼 수가 없기에 수업을 끝낼 때까지 난 누가 준하 엄마인지 몰랐다. 아니, 여태 전화상으로도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학교교육은 아빠에게 전적으로 맡겼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공개수업을 마친 쉬는 시간, 아이들은 저마다 보호자와 포옹하고 사진을 찍으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고 난 말씀을 건네시는 학부모님들과 한 마디씩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종이 치자 아이들은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아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준하 자리였다.

교실 뒷문 쪽 복도에서 준하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옆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주말에 엄마 만날 거야, 이제 손 좀 놓아. 수업 들어가야지."

하며 달래고 있었고, 엄마는 손을 풀지 못하고 같이 울고 있었다.


준하는 엄마의 공개 수업 방문에 매우 기뻤지만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가야 하자 엄마를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지금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엄마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달라" 라고 호소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줬구나', '내가 같이 살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아이의 손을 놓으면 아이에게 또 상처를 줄 것 같아 행동이 얼어붙고, 아이와 더 있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주양육자인 아빠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과 질책의 마음이 드는 듯 나에게 물었다.

"우리 준하가 자주 이러나요?"

담임인 나는 1학기 때의 등교 전쟁이 떠올라 준하 엄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님. 준하 1학기 때 거의 매일 아침마다 아빠 손 잡고 이렇게 못 헤어졌었어요. 준하어머님께선 오늘 처음 보셨지만, 아버님께서 1학기 내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행여나 준하 엄마가 주양육자를 불신하고 질책해서 또 다른 다툼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준하가 이제는 친구랑 같이 잘 등교하고 있고, 헤어질 땐 좀 힘들어해도 막상 교실에 오면 진짜 잘하고 있으니 어머님도 지금 이 모습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준하야, 이제 엄마 손 놓아드려. 엄마 주말에 보기로 했다며. 약속 지키실 거야.

준하 이제 교실 들어갈게요, 걱정 마시고 모두 이만 가보세요. 준하도 인사드려."

준하가 지금 이 순간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평소 모습이 아니란 걸 담임인 나는 확신할 수 있었기에 준하 손을 힘 있게 잡고 세 보호자를 모두 보내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준하는 이내 평정을 찾고 다음 일과를 평소처럼 웃으며 보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준하어머님께

"아까는 많이 속상하셨죠? 그래도 준하가 교실 들어와서 금세 또 잘하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연락해 드렸다. 답장이 왔다.

"아이가 괜찮은 척 참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순간 이게 뭔가 싶어 황당하고 힘이 빠졌다.

'어머님, 준하는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본인만 준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 같이 느껴지시나요? 뭘 더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못 믿겠고 마음 아프시면 준하가 원하는 대로 더 자주 함께 해줘 봐요.'

불쑥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현재 비양육자인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평소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주양육자와 교사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다. 누구도 엄마인 자신만큼 아이에게 잘해줄 수 없을 거라는 의심, 아이가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 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도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준하 어머니의 불신에 내 마음이 편치 못했지만, 그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헤아리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준하 어머니의 불안과 우려가 공개수업 후에는 교실 생활로 집중된 것인지 그 다음 주에 준하 어머니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었다. 회의 중이라 못 받고 나중에 전화를 드렸는데,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아서 무슨 일 때문인지 궁금해 나 혼자 애가 닳았다.

그러다 다음 날에야 문자로 연락을 받았는데 준하가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준하를 괴롭혔다고? 이상한데...'

구체적인 내용을 물으니 4명의 남학생이 준하를 밀치고, 발로 차고 때렸다고 했다.

[준하가 어머님께 그렇게 이야기했군요. 평소 교실에서 그런 상호작용을 보지 못했는데, 제가 지금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라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답장을 보내고 쉬는 시간을 틈타 연구실에 준하를 포함한 다섯 아이를 불렀다.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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