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걸로 망가지지 않아요, 잘 해낼 겁니다.
위클래스 상담선생님과의 협력지도가 시작되었다. 초등 고학년 쯤 되면 위클래스를 기피하는 학생들도 있어서 준하가 주변 친구들의 시선을 신경쓸까봐 염려했었는데, 저학년이어서일까 준하는 그런 게 없었다. 상담 선생님은 상냥하고 친절하셨고, 준하는 자기만 상담선생님을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고 싶어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준하가 위클래스에 다녀와도 초반에만 잠시 궁금해했을 뿐 나중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1학년은 아직 자기 중심의 세상을 살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인 부분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우선 준하와 면담을 나누고 주양육자인 아빠 그리고 함께 사는 할머니와도 통화를 하셨다.
담임인 나는 입학 전 받아둔 가정환경조사서를 보고 아이가 엄마와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정은 직접적으로 대화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준하가 은연중에 주말에 엄마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어서 '사별은 아니구나, 이혼하고 아이만 따로 한 번씩 만나는구나.'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학부모 상담 때도 이 부분을 보호자가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담임이 먼저 물어보기가 어려운데, 상담선생님은 전문가답게 아이의 가정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을 해주셨다.
-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이혼을 하고, 아이는 아빠, 할머니와 살고 있다.
- 아이를 향한 아빠의 주된 감정은 이혼으로 인한 미안함이다.
- 할머니는 일을 다니셔서 등하교를 돕지 못하신다. 통화하실 때 손자 양육으로 인한 버거움을 토로하셨고, 평소 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자주 표현하시는 것 같다.
어느날 준하가 아무렇지 않게 혼자 교실에 들어왔던 날이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니 그 날은 아빠의 일 때문에 할머니께서 교문까지 데려다주고 가셨다고 했다. 할머니와 오니 바로 교문에서 헤어져서 혼자 걸어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빠가 데려다주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와, 그럼 평소에 할머니께서 데려다주시면 바로 문제 해결이네요!"
"할머니 일하신다니깐요. 어쩌다 한번 데려다주신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하다가 아이 마음을 결국 몰라주고 이 시기를 지나가면 어쩌죠?"
아침에 아빠에게는 매달리면서 할머니와는 잘 헤어지는 이유는 아빠와 달리 할머니는 자신의 떼를 안 받아줄 거라는 걸 아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떼를 쓰다가 혼이 나는 것보다 순순히 할머니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불안감을 억누르고 상황에 맞춰 행동하는 '학습된 순응'의 모습, 일종의 선택적 불안조절이랄까?
준하의 마음에는 부모 이혼 당시 애착 대상이었던 엄마와의 불안정한 분리로 인한 심리적 충격과 불안, 그리움 그리고 현재 주 양육자인 아빠마저 자신을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이 있다. 아이가 아빠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 언뜻 아이가 아빠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준하가 아빠를 너무 좋아하나봐요."
"막상 집에 같이 있으면 아빠한테 신경도 안 써요. 자기 혼자 잘 놀구요. 근데 꼭 아침에 헤어질 때마다 이러네요."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빠와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니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 그러다 등교하며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의 분리불안감이 치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것을 아빠에게 표현하며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빠가 더 오래 자기 옆에 있어주고 더 많은 관심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단호함이 필요했다.
아침마다 아빠가 단호하게 아이를 떼어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이혼으로 인한 미안함, 아이에게 또 상처를 줄 수는 없다는 두려움이 양육 태도에 영향을 미쳐서인 것 같았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혼을 해서 아이가 힘들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 큰 상처를 줄까봐 장기적으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를 반복해온 것이다.
단호함과 무정함을 혼동하면 안 된다.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아빠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까 봐 염려하고 있는 것인데, 준하의 불안을 잠재우려면 아빠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했다. 아빠마저 흔들리면 아빠는 나의 감정을 조절해주지 못하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인식을 줘서 분리불안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아빠는 한결같이 너의 뒤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함께 사는 가족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아빠가 없을 때에도 난 네가 잘 해낼 거라는 걸 믿는다."
부모가 단호한 양육태도를 실천하면 아이는 부모를 믿고 안정을 찾아간다.
<적용방법>
- 일관된 규칙 정하기: 아이와 헤어지는 시간을 3분, 5분 등으로 정하고, 이 규칙을 반드시 지킨다.
"울어도 괜찮지만 약속한 시간은 지켜야 해"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해주고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꼭 안아주고 "이제 들어가, 잘할거야"라고 격려하며 돌아선다.
- 매일 아침 등교 의식 만들기: 서로 "사랑해!", "좋은 하루 보내!" 같은 말을 나누며 아이에게 안정감과 긍정적 신호를 준다.
- 부모의 감정 관리하기: 아이가 울면 부모도 불안하고 슬퍼지기 쉽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하고 '나는 아이를 돕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때 아이에게도 안정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다정하되 단호한 일관성을 지켜야한다. 아이는 이를 통해 세상은 안전하며,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게 될 것이다.
교사와 형성된 긍정적 애착
준하가 담임인 내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오는 것은 내가 아이에게 새로운 안정 기지가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선생님은 규칙과 질서를 상징하며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롭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행동임을 준하는 알고 있었다. 아빠와의 헤어짐은 감정적인 영역이지만, 선생님과 교실로 향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신호이므로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준하의 행동은 아빠와 선생님이라는 두 가지 다른 관계의 특성을 구분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선생님의 손을 잡는 것은 '헤어짐으로 인한 분리불안'의 순간에서 '학교 생활'의 시작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신호이자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등교 후 '학생'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선생님이 안내자 역할을 하며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학생의 올바른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준하가 등교 때마다 아빠와 헤어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관계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아이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이다.
위클래스 상담을 통해 아이의 가정환경을 파악하고 아침에 아빠와 헤어지는 의식 정하기, 어떨 땐 위클래스에 먼저 갔다가 교실에 오기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지만 준하의 등교 전쟁은 6월이 다 되도록 지속되었다. 즉, 당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못된 마음도 들었다.
엄마가 교문이 아닌 중앙현관까지 바래다주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젠 모두 교문에서 헤어져야 한다고 지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준하만 매번 아빠가 교실까지 데려다주게 하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준하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시는 교장선생님께 준하 좀 교실로 데려다달라고 부탁드려본 적도 있다. 넉살 좋은 교장 선생님께서 해보겠다고 하셨는데, 준하 울음소리만 더 커져서 이틀 만에 항복하셨다. 그래놓고 준하는 급식 시간에 순시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또 새침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아빠의 단호함이 더해진걸까, 준하도 이제는 그냥 다른 친구들처럼 교문에서 보호자와 헤어져 교실로 오는게 더 편하게 느껴진걸까? 7월 즈음이 되자 시나브로 그 등교 전쟁이 끝이 났다.
준하는 아빠의 바람대로 민우와 함께 웃으며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경쟁하듯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이 참 대견했고 마음이 놓였다.
부모가 이혼을 했다고 아이에게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 계속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오히려 아이는 그를 통해 자신이 뭔가 결핍된 사람이고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게 되어 없던 화도 더 생길지 모른다. 난 괜찮을 수 있는데 자꾸 미안하다, 괜찮냐고 하면 그냥 괜찮기는 싫은 그런 마음 상태.
부모의 이혼은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다면, 아이가 이해할만한 수준에서 설명을 해주며 그것은 어른들의 선택이지 절대 아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줘야 한다. 부모 각자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 선택을 했으며 아이 역시 자신의 상황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고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함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혼을 했다면 아이를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늘 함께 있지 못해도 아이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부모 자신이 아이 뒤에 있잖아요. 그 자체가 아이의 보루입니다. 대견하고 멋진 아이로 바라봐주세요. "
보통 영유아기에 안정애착을 반드시 형성해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아이의 영아기에 주양육자가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고 아이가 점차 자율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을 것이다.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세상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게 된다.
우리 반 준하의 경우에도 영아기에는 부모가 함께 했으며 엄마의 보살핌을 주로 받았다. 비록 유아기 때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늘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아야 했지만, 아빠가 주 양육자로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결국 준하는 학교 생활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다.
아이의 보루인 부모가 든든히 뒤에서 지켜봐 주면 아이는 세상으로 조금씩 더 나아간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불안해진다.
"네가 초등학교 생활을 잘할 거라고 믿어. 넌 멋진 사람이야.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구나. 넌 정말 대단해!"
냉정해 보이겠지만 난 준하를 안쓰럽게 보지 않는다.
'너보다 더한 환경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며 살아낸 사람들이 있어. 넌 사랑받으며 자랐고, 모두 함께 살진 못하지만 널 사랑하고 지원하는 아빠와 엄마, 할머니가 계시잖아. 널 안쓰럽게 보는 어른들 눈빛에 약해지거나 징징대지 마. 넌 건강하고 영리하고 용감해. 넌 너답게 네 생활을 해야 해. 그리고 난 그런 너를 응원해. 넌 잘하고 있어, 준하야'
준하의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힘든 시간과 고민들이 결국 거름이 되어 이야기꽃이 피어났네요. 그런데 어쩌죠, 우리 준하 이야기는 아직도 끝이 아니에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던 준하, 2학기 참관 수업에 와준 엄마를 만난 후, 안하던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까지 쓰려면 다음 연재를 또 기약해야겠습니다.
준하의 이야기는 아이를 사랑함에도 부부의 사정으로 이혼해야 했던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이혼 사례를 보면 아이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아니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도 아이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저의 이 글은 그런 사정까지 다 담지는 못했습니다. 자꾸만 다른 사례들이 떠올라 한 편의 글에서 어떻게 품어야 하나 손끝이 길을 잃었습니다만 결국 준하 이야기로 좁혀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