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림보 Feb 19. 2023

내가 서 있는 길은 왜 잿빛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찌감치 발바닥이 쓰라려 왔고 이제는 더 이상 주위의 시선 따윈 안중에 없다. 그저 얼른 가서 문자 그대로 ‘쉬고 싶다’. 


 집 앞을 몇 발짝 남기고였을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랗다. 아니 파랗다 못해 퍼렇게 보였다. 분명 더운 여름이지만 순간 시원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고개 들어 하늘은 본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분명 아침 출근길만 해도 바닥을 바라보며 걸었었지. 잿빛 아스팔트. 잠에 취해 흐릿하게 걸었다. 


 좀 더 기억을 되짚어 보건대, 난 분명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티 없는 구름에 크게 숨을 내쉬던 그 상쾌함을 즐겼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그저 걷기 바빠 밑만 바라본다. 굽은 목. 처진 어깨. 흐릿한 눈. 


 “거북목이잖아. 관리해야 해.” 


 며칠 전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언젠가 깁스한 것처럼 정면을 바라본 채 다녀서 억지스럽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돌아온 집의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큰 한숨과 함께 반쯤 포기한 채 침대에 엎어진다. 그리고 하루 동안 안고 있던 짐들도 함께 털어낸다. 아. 살 것 같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내가 서 있는 길은 왜 잿빛일까. 모르겠다. 다시금 한숨과 함께 덜어놓은 짐들이 보인다. 순간 머리 위로 하늘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파랗다. 그랬다. 매일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때도 하늘은 항상 똑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저 머리만 조금 들어본다면 볼 수 있었다. 


 관점의 차이. 분명 지치고 힘들 수는 있다. 온통 잿빛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아있는 색들은 있다. 퇴근 후 가볍게 마시는 맥주 한 캔, 투덜대며 상사 흉을 보는 정겨운 여자친구의 전화 통화, 유튜브에 나중에 볼 동영상으로 넣어 둔 ‘잠잘 때 듣기 좋은 빗소리’ 플레이리스트. 고개를 조금만 들어보자. 파란 하늘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