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긋나긋하며 온화한 말투와 함께 처지를 위로해 주는 말은 지친 하루에 힘이 되었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치열했던 틈바구니 사이에서 그한마디가 단비였겠지. 종일 하늘 높은 선임들에게 한시라도 밑 보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예민해진 내게 잠시나마 나른함을 주었다.
그렇게 정이 들다 보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 원래 내가 정이 많은 타입이라서 그랬을지도.
나중엔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소한 안부부터 앞으로 일까지. 좀 더 알고 싶은 사이가 되었고, 그때마다 언제든 답을 주었기에 참 고마웠다. 물론,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서버린 때도 있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의 가시 돋친 말 때문이라 생각했고 사과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무어라 쓴 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후로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으니 잘 해결된 셈이었다.
전역을 거의 앞두고서는 조바심이 나기까지 했다. 그는 학교가 서울이었고 난 부산이었기에 더 이상 만남은 무리겠다 싶었다. 어떻게든 더 그를 알고 싶고, 인연을 이어갔으면 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전역일을 이후로 서서히 지워져 갔다.
지금은 카톡 프로필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전화해보고 싶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은 기억나는지. 아니, 무엇보다도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 물어보고 싶다.
난 친구가 없다. 정말이지 친구라 할만한 사람이 없다. 혹자가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진정한 친구만이라도 사귄다면 성공했다고 하는데 지금 죽으면 난 실패다. 그 와중에 '
만약 그 한 명이 이 녀석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수 없이 해본다. 어쩌면 나 홀로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의 말과 태도, 표정이 호감이라는 것은 모두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