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 특유의 냄새가 코에 닿는다. 매년 겨울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마다 트라우마와도 같은 시린 기억들을 꺼내놓게 만든다. 나는 11월에 태어났다. 계절상으로는 가을에 속하지만 니트와 코트를 꺼내 입기 시작하는 초겨울로 진입하는 시기다. 이 맘 때가 되면 이유모를 우울감이 너울이 큰 파도치듯 몰려온다. 파도가 해안가의 모래를 싹 쓸어가듯 소소한 행복과 따뜻한 기억을 훅 앗아간다. 아마도 해가 짧아졌기 때문이리라 그렇게만 생각했다.
문득 돌아본 기억에서 나는 겨울마다 슬펐다. 3월이 생일인 친언니는 항상 친구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하고 11월생인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슬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10월쯤이면 가정 내에 불화가 찾아들었다. 부모님의 불화에 집안 분위기는 항상 냉각상태였고 그런 환경은 내 생일인 11월을 지나 12월까지도 계속되기도 했다. 생일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보내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어린 마음에 서운하고 아쉬웠지만 생일 따위가 가정의 불화를 제거하는 것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운한 티도 내지 못했다. 다시 봄이 오면 냉랭했던 부모님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다시 언니의 성대한 생일파티가 시작되었고 나는 홀로 부러움을 삼켜야 했다. 한 해만 그랬던 게 아니고 내내 그랬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니는 모두가 기뻐하고 환영하고 축복하는 3월 봄에 태어났고 나는 낙엽이 떨어지고 쓸쓸하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에 태어났기 때문인가 보다.'
지금까지도 내가 가을,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어제는 31번째 생일이었다.
한 개씩 나이가 더해갈수록 생일에 대한 의미부여도 줄었다. 뭐 그리 특별한 날이겠나. 31년 전 11월 15일 나를 낳느라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나, 그날 태어나 지금껏 살아남느라 수고한 나 자신한테나 특별한 날이겠지. 근데 내 생일을 누구보다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는 한 사람이 생겼다. 바로 남편이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나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
곧 나의 존재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내가 곁에 있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생일이 시작되는 자정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열심히 준비한 선물 같은 하루를 보내며 난 처음으로 온전히 행복한 생일날을 보냈다.
퇴근길에 제법 많이 차가워진 바람이 코 속에 들어온다. 이상하게도 우울함이 아닌 행복한 웃음이 난다. 떨어지는 낙엽들, 5시만 돼도 어둑해지는 풍경들을 보며 슬퍼하고 잠 못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길거리에서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붕어빵을 보며 남편이랑 올 겨울에 붕어빵이나 실컷 먹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웃음을 지어본다. 이제 겨울은 내게 우울한 계절이 아니다. 나는 11월에 태어나 겨울에도 피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