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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Dec 28. 2021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타지 결혼생활-나의 이야기

나는 나름대로 꽤 안정적인 삶의 궤적을 밟고 있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벌어 스스로 먹고살았다. 처음 취업하여 차를 사고 방 한 칸의 신축 오피스텔에서 27평의 브랜드 신축 아파트에 가기까지.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했고 결정에 대한 책임도 혼자 져야 했다. 물론 그 이후에 독립적인 삶을 누리는 기쁨도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가끔은 혼자 일구어 가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 외롭기도 했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 좋기도 했다.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것들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연차를 내고 혼자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혼자'서 구축해나가는 삶의 모양은 완벽한 행복까지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괜찮았다. 안분지족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직업은 군인이었다. 만남이 더해갈수록 자연스레 그와의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장교고, 일정 시기마다 전혀 연고가 없는 타지로 발령을 받는다. 그게 어느 지역이 될지 미리 알 수도 없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하려면 나는 내가 그간 열심히 마련해놓은 모든 기반들을 놓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그게 싫다면 장거리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함께하기 위해 결혼하는 의미가 없어졌다.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그간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구축해온 가치관과 신념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 안에서 갈등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그와의 미래를 꿈꾸는가?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질문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또 답하기를 반복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고민 끝에 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가 동반된 결심은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적응해서 살겠지. 하고 미래의 나에게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을 맡겼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중이다.


1년이 다 되도록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타지 생활, 경제적 능력 상실, 그와 함께 찾아온 진로 고민, 익숙하지 않은 아내의 역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매일 되풀이되는 삶, 삶, 삶. 


주말마다 5성급 호텔 여기저기로 혼자 놀러 다니던 나,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 늘 쇼핑이었던 나, 즐거웠던 취미생활, 사람들과의 만남,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등은 이제 끝이 나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나, 100원이라도 더 싼 제품을 찾는 나, 힘들고 외로울 때에도 남편에게 아내의 역할을 성실히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 아무도 없는 타지, 외로운 취미생활 등이 내 일상을 함께한다. 너무나 확 바뀌어버린 환경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요즘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기는커녕 제자리걸음만 간신히 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냐면 모든 선택에 나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을 뜻한다.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내 정서를 흔들어서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것, 남편을 따라오면서 경제적 능력이 상실됨으로 인해 점점 기회비용을 계산하며 내 세계가 좁아져가는 것,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아닌 어떠한 역할로써만 존재하는 것 등을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배우자와 함께하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지점이 어디일까를 매일 고민한다.


분명히 내가 선택한 삶이다. 물론 그 선택이 무색하지 않게 사랑하는 남편과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일상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가 두고 온 내 삶의 짙은 흔적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그곳에 남아 내게 끊임없는 메아리를 울린다. '혼자'여서 외롭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혼자'여서 외로웠던 게 아닌가 보다. 삶은 언제나 내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고 난 스스로 해답을 찾을 때까지 외로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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