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 Feb 27. 2022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흔히 말하는 시댁과의 트러블로 인한 가정불화의 에피소드는 내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올 정도로 흔한 토픽이다. 전화로 2시간이 넘게 시댁 욕만 하는 친구, 시어머니의 작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친구도 있지만 반대로 진짜 유별난 시어른들을 만나서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고생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면서(어쨌든 친구 남편분의 부모님이므로) 공감의 리액션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시부모님이 안 계신 내가 듣기에는 그것마저 꽤 부럽다. 너무 시댁에 시달린 나머지 "넌 시댁 없어서 좋겠다."라는 망언을 내뱉는 친구들도 몇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불쾌한 감정을 여실히 내비치곤 했다.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일 수 있겠는가. 내 남편에게는 상처이고 아픔인데, 감히 그게 부럽다니 말이다. 반대로 내가 "넌 그런 시댁이라도 있어서 좋겠다."라고 한다면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한다고 난리를 칠게 뻔하다. 아무튼 나는 어머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셨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외 숙모님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남편은 어머님의 사랑과 적절한 훈육을 받고 잘 자란 아들이라고 했다. 마냥 오냐오냐 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엄하게만 키운 것도 아니셨다. 어머님이 남편을 양육하신 과정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건강하고 바른 청년으로 훌륭하게 잘 자랐으니 그를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워주신 어머님께 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시외 숙모님이 전해주신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님이 남편을 그렇게 잘 해먹이셨다고 한다. 남편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밤에라도 직접 반죽을 하셔서 만두를 빚어서 쪄주셨다는 것이다. 남편은 어머님 관련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아마 모를 것이다. 남편은 어머님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슬퍼해서 나도 어지간하면 묻지 않는다. 한 번은 남편이 인스턴트 만두 말고 만두 가게에 파는 수제 왕만두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왠지 외숙모님이 해주셨던 만두 이야기가 떠올라 그만 슬퍼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남편에게 뭔가를 잘해 먹이는 것에 대한 작은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근데 작은 책임감에 비해 실제로 해먹이는 건 별로 없다는 게 함정이다.)


남편은 내게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잘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달라고 부탁해도 아무거나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그런 남편도 어쩌다 한 번씩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흔쾌히 음식을 해준다. 그러다 어제 남편이 밤에 토르티야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아이가 간식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언제나 요구를 수용해주셨던 어머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영아기의 아기는 본능적 욕구에 대한 주 양육자의 예민하고 재빠른 피드백으로 인해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다. 반면 주 양육자가 그 시기 아기의 욕구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해주지 않거나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불안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남편은 아마 어머님으로부터 요구나 기본적 욕구에 대한 충족, 애정과 관심 등을 충분히 받고 자랐을 것이다. 지금은 곁에 어머님이 안 계시지만 그 사랑은 남편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고, 내가 조금이라도 그 따뜻한 사랑에 대한 향수를 채워줄 수 있다면 배우자로서 기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작은 부분에서 결핍이 발생하기도 하고 또 아주 작은 사랑으로 큰 구멍이 메워지기도 하는 존재다.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나의 감정, 나의 욕구, 나의 일상을 기꺼이 수용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감을 잠재우고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또 그런 남편의 요구를 언제나 수용해줄 뿐 아니라 심지어 환영하기까지 하는 나는 진심으로 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이유는 남편 또한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수용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너를 낳은 너의 어머니는 아니지만, 또 어머니가 네게 주셨던 아가페적인 사랑은 줄 수 없지만 나는 아내의 위치에서 너를 돕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할 것이다. 언제나 너의 삶을 응원하고 너의 모든 결정을 존중하며 사랑스러운 너의 예쁜 마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차려먹지 않을 밥상들. 야채를 썰고 주방을 정리하는 일이 제일 싫고 앞치마가 아직도 어색한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매일 남편에게 물어본다. 뭐 먹고 싶은 것 없냐고.

작가의 이전글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