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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Mar 28. 2022

잘 있거라 포항아

마지막 인사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평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짧지만)을 부산/경남에서 살아왔다. 당연히 부산 남자를 만나 그와 결혼하고 부산에 뿌리박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나는 포항 해병대 1사단에 근무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국내여행을 좋아했던 내가 여행으로도 와본 적 없던 포항시의 시민이 된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을 함께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2021년 1월, 여태 살아온 삶의 흔적이 짙게 남겨진 내 고향을 떠나오면서 참 많이 울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연애시절, 주말마다 나는 포항을 방문했다. 금요일 퇴근하면 중앙고속도로(30km)-울산고속도로(30km)-동해고속도로(60km)를 열심히 달려 남편에게로 왔다. 함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나는 다시 동해고속도로-울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지나 출근을 했다. 외지인으로 잠깐씩 왔다 갔다 했던 포항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거주민으로 살게 된 포항은 또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


 일단 주변에 발레학원이 없었다. 선택지가 많아서 여기저기 골라 다녔던 때와는 달리 집에서 기본 10km 이상은 나가야 발레학원들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수업방식이 낯설어 적응이 어려웠다. 또 포항으로 오면서 일을 관두고 왔는데 나에게 일이란 경제적 도구일 뿐 아니라 자기 효능감, 자아정체성 등 '자기(self)'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라서 무력감, 무능감, 공허함 등에 시달리면서 계속적으로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 더불어 찾아온 경제활동에 대한 상실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족족 나와 마음이 맞지 않았다. 아마 내가 살아온 환경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 또한 나와 맞지 않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커피를 배우러 만났던 바리스타 선생님, 동네 새댁 모임, 발레학원,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병원 등 이곳에 적응해보려 노력했던 모든 활동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위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모든 측면에서 포항이라는 도시가 싫어지던 때였다.


 "경기도로 발령이 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지긋지긋하던 찰나에 남편의 근무지가 경기도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이사 전 포항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그렇게도 탈출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곳이었지만 막상 마지막 밤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마지막은 항상 처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살아온 과정과 흔적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 좋았던 기억들을 가장 앞자리에 놓아둔다. 


 처음 설레던 마음으로 이곳에 이사 왔던 2021년 1월 2일의 기억, 남편과의 신혼생활의 시작, 유독 슬펐던 날에는 남편 손을 꼭 잡고 아이스크림과 빵을 사러 갔던 길들, 집 앞 오렌지 마트, 해병대 서문, 양주골 오리마을... 이제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남편과 단 둘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싫다, 밉다, 떠나고 싶다 노래를 불렀어도 1년간 거리와 집안 곳곳에 쌓인 추억들은 막을 수 없었나 보다. 결국 이렇게 1년 3개월 만에 떠날 줄 알았다면 좀 더 힘들어하지 않았을걸. 좀 더 즐겁게 시간을 보냈을걸.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일어나는 한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기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동해바다의 도시, 포항. 내 개인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을 남긴 도시. 어쨌든 남편과의 소중한 첫 신혼생활의 시작을 열었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잘 있어라 포항아.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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