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쟁의 규칙을 선도하는 체제 (3-1편)

1편 : 군산복합체의 탄생

by 김장렬

세계 첨단 방위산업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막상 미국을 쓰려하면, 한 나라를 다루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F-35는 여러 대륙의 하늘을 날고 있다.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순환하고 있고, 군사 위성은 지구를 멈추지 않고 돈다. GPS 신호는 전장의 정밀유도무기뿐 아니라 민간인의 휴대전화에도 닿는다. 우리가 길을 찾는 그 순간에도 군사 기술은 작동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다.

미국의 항모전단 (출처 : https://namu.wiki/w)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유형의 국가를 보았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해 버틴 나라가 있었고, 수출로 산업을 키운 나라가 있었으며, 동맹에 기대어 생존을 설계한 나라가 있었다. 제재 속에서 자립을 강요받은 나라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은 “무기를 만드는 나라”라기보다, 무기가 돌아가는 구조를 설계한 나라에 가깝다. 냉전은 미국 안에서 완전히 끝난 적이 없다. 전쟁이 멈춘 뒤에도 연구는 계속되었고, 평화가 선언된 뒤에도 예산은 유지되었다. 그래서 미국을 한 편에 담기는 어렵다. 미국은 세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먼저, "1. 군산복합체의 탄생", 전쟁이 어떻게 산업이 되었는지. 군산복합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전쟁 준비가 어떻게 상시 체제가 되었는지.

두 번째는 "2. 기술이 전장을 설계하다", 기술이 전장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스텔스와 항공모함, 네트워크 중심전이 어떻게 세계의 규칙이 되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3. 미래는 계속 미국의 것인가", AI와 우주, 극초음속 경쟁 속에서 이 거대한 구조가 여전히 유효할 것인지.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자.

<1편 : 군산복합체의 탄생>

1945년 8월, 총성이 멈췄다. 유럽은 폐허였고, 일본은 무너졌다. 병사들은 귀향했고, 세계는 평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리버티 선박을 2,700척 이상 건조했다. B-17과 B-24 폭격기는 수만 대가 생산되었고, B-29 폭격기는 태평양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B-29 폭격기 폭탄 투하 장면 (출처 : https://namu.wiki/w/B-29)

M4 셔먼 전차는 약 5만 대 이상 생산되어 유럽 전선을 채웠다. 자동차 공장은 폭격기 공장으로 바뀌었고, 조선소는 밤낮없이 돌아갔다. 표준화된 부품, 대량생산 체계, 컨베이어 벨트. 산업혁명의 논리가 전장에 적용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생산했다. 유럽의 산업 기반은 무너졌지만, 미국의 산업은 온전히 남았다. 전쟁은 사건이었지만, 산업은 구조가 되었다.

M4 셔먼 전차 (출처 : https://biz.chosun.com/industry/company)

1. 총력 생산 체제의 산업이 전쟁을 이기다


전쟁의 승리는 병력의 숫자보다 생산력의 숫자에 가까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업 국가였다. 그리고 곧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다.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다. 냉전은 총력전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준비는 총력 수준이었다.

소련 1949년 8월 29일 22kt급의 RDS-1을 터트린다(출처 : https://namu.wiki/w/)

미니트맨(Minuteman)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지하 사일로에서 대기했고, Polaris와 이후 Trident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전략핵잠수함에서 운용되었다. USS 노틸리스(Nautilus)는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으로 대양을 항해했다. B-52 전략폭격기는 지금까지도 운용되며 핵 억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준비는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더 이상 전쟁 때마다 동원하지 않았다. 대신, 항상 준비된 상태를 유지했다. 산업은 임시 체제가 아니라 상시 체제가 되었다.

B-52 전략폭격기 (출처 : https://www.g-enews.com)

2. 냉전과 군산복합체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영향력을 경고했다. 군, 정부, 산업이 결합한 구조가 민주주의에 과도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구조는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출처 : https://www.chosun.com/economy)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은 전투기와 전략무기를 개발했고, 보잉(Boeing)은 전략폭격기와 우주체계를 생산했다. 노스롭 그루먼( Northrop Grumman)은 첨단 항공 기술을 연구했고, 레이시온(Raytheon)은 미사일과 방공체계를 확장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는 잠수함과 장갑차를 공급했다.

미국의 방산기업 (AI 생성 이미지)

의회는 예산을 승인하고, 군은 요구를 제시하며, 기업은 기술로 응답했다. 방산기업이 위치한 지역은 국방 예산과 연결되었고, 대학과 연구소는 국방 연구를 수행했다. 무기는 전략을 바꾸었고, 전략은 예산을 낳았다. 예산은 다시 산업을 키웠다. 이것은 계약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였다. 전쟁 준비는 국가 경제의 일부가 되었다.

3. 군산복합체의 기술 엔진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는 미국에 충격을 주었다. 기술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였다. 그 대응으로 1958년 고등연구계획국(ARPA)이 설립된다. 이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단기 무기 개발 기관이 아니었다. 미래 기술을 선점하는 조직이었다.

미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개발 중인 수직이착륙 무인항공기(출처 : https://www.theguru.co.kr/news)

이곳에서 연구된 기술은 군사와 민간을 동시에 바꾸었다. ARPANET(세계 최초의 패킷 교환 방식 네트워크)는 훗날 인터넷으로 발전했고, GPS 위성 체계는 정밀유도무기의 기반이 되었다. 스텔스 개념 연구는 F-117 전투기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은 무기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기술 생태계를 만들었다. 군사 기술은 민간으로 확산되었고, 민간 기술은 다시 군사로 흡수되었다. 전쟁은 병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문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군산복합체의 기술 엔진이자, 미래 전쟁을 미리 설계하는 실험실로 자리 잡았다.

F-117 전투기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4. 전쟁은 사건이 아니라 체제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군산복합체 구조를 시험했다. 베트남전은 그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구조는 유지되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 체계를 유지했고, 핵 억지 삼위일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육상 ICBM, 전략핵잠수함, 전략폭격기. 이 세 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 (출처 ; https://namu.wiki/w)

미국의 국방 예산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세계 최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것은 단순한 군비 지출이 아니다. 연구개발, 산업 기반,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비용이다. 인터넷과 GPS는 군사에서 시작되었지만, 세계의 일상이 되었다. 방위산업은 무기를 넘어 기술 문명을 만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 대비는 멈추지 않았다. 준비는 정책이 아니라 제도가 되었다. 그 제도 위에서 군산복합체는 굳어졌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아이젠하워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한가. 군산복합체는 국가를 보호하는가, 아니면 국가 정책을 이끄는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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