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말리우스

2

by 박규동


숙취라는 무게에 깔린 메피스토는 침대에서 미끄러지듯 굴러 떨어졌다. 그는 비틀거리는 계단을 짚으며 1층으로 내려섰다. 화장실에 다녀와 소파에 몸을 뉘인 그에게 육신은 불길에 달궈진 닻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와인에 젖은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것만이 유일한 해방이었다.


두 번째 단잠을 청한 후, 오후가 되어서야 아침의 잔상이 의식을 스쳤다.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열던 모세, 그리고 메피스토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던 시선. 그는 조금 더 쓸모 있는 악마가 되어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하지만 소파의 포근함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평생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배고픔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소파에 옆으로 누워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나태의 악마 벨페고르여, 나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하고 밥을 먹을 힘을 주소서.”


메피스토는 술 냄새가 섞인 신음과 고통의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기어갔다. 주방 테이블 위에는 지옥에서 방금 배달된 듯한 커피 한 잔이 그를 기다렸다. 빨대를 통해 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이자, 그의 심장이 경련하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커피를 해치운 그는 나태의 악마를 향한 감사로 성호를 그었다.


커피로 각성한 메피스토는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를 하며 하루의 계획을 구상했다. 몸에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그는 재채기를 터뜨렸다. 입에서 튀어나온 불꽃이 샤워 커튼을 검게 그을렸다. 물기를 닦아낸 후, 그는 모세의 방에 들어가 로션과 헤어드라이어를 서슴없이 사용했다.


정원의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따스한 햇볕 아래 눈을 감았다. 빛이 점점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혹시 악마로서 철이 드는 과정은 아닐까 메피스토는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잔디 위에 던져지고 짓밟힌 담배꽁초는 그의 본성을 증명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 그는 저택의 문을 박차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도시에 몸을 던진 메피스토는 지옥의 마차에 몸을 실었다. 택시 뒷좌석에 앉은 메피스토는 룸미러에 걸린 십자가 장식을 보며 불편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도로는 차가운 금속의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그중 일부는 영혼을 팔아넘긴 악마들과 함께 길을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의 메피스토를 연신 살피던 택시 기사가 어색한 침묵을 깨뜨렸다.


“혹시 외국분이세요?”


숙취가 가득한 머리를 흔들리는 창문에 기댄 채, 메피스토는 눈을 돌려 기사를 응시했다.


“외국인처럼 보입니까?”

“워낙 멋쟁이처럼 하고 다니셔서요.”

“기사님도 멋쟁이시네요.”


메피스토의 농담에 택시 기사는 순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그의 차로로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택시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메피스토의 몸이 앞으로 쏠렸고, 택시 기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욕설을 내뱉는 기사를 지켜보던 메피스토는 곧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슴이 설렜다. 그러나 기사는 차에서 내리는 대신 룸미러의 십자가를 쥔 채 깊은숨을 내뱉었다. 메피스토가 내뱉은 뜨거운 숨과는 다른 공기를 품었다. 화를 다스린 기사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조수석의 하모니카를 집어 들었다. 그는 뜬금없이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다시 운전을 이어갔다.


‘뭐지?’


당황한 메피스토는 햇빛을 반사하는 은빛 도시를 응시한 후 기사에게 물었다.


“악기를 꽤 잘 다루네요.”

“예전엔 꿈이 가수였어요. 기타도 치고, 색소폰도 불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결국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가수가 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 안 한 거 아니에요?”


택시 기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신 거겠죠.”

“교회를 꽤 열심히 다니시나 봐요.”

“예, 뭐.”

“교회에 갈 시간에 연습을 더 열심히 하고, 음악계 인사들을 만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면, 지금쯤 가수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교회 다니는 게 문제라는 말씀이세요?”

“아니요.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지 않나요? 굳이 교회라는 특정 장소를 가야 하나요? 게다가 하나님은 기사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기사님께서 일요일 오전의 시간을 꿈을 이루는 데 사용하길 바라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메피스토는 룸미러를 통해 택시 기사의 흔들리는 동공을 포착했다. 기사의 눈에 숨겨진 욕망과 혼란이 꿈틀거렸다.


‘이상한 남자네.’


택시는 날붙이 같은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사각형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메피스토는 택시비를 건네며 기사에게 미소 지었다.


“3주만 교회에 나가지 말고, 다시 가수가 되는 꿈을 붙잡아보세요. 분명 이루어질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

“예?”

“혹시나 잘못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분명 용서해 줄 테니까. 아무튼 내가 기도드릴게. 좋은 하루 보내요.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난 메피스토는 뒷좌석 문을 닫기 전, 기사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


‘파이몬이시여, 하늘이 잊은 양에게 자비를 보여주소서.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소서. 그에게 예술과 아름다움의 새로운 정의를 나누어 주시길.’


백화점 회전문 앞에 선 메피스토의 검은 복장은 태양에서 떨어지는 빛을 모두 빨아들였다. 그는 거대한 백화점을 우러러보았다.


‘이게 신전이지, 시장이야?’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은 그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지구 반대편을 응시했다.


쏟아지는 폭격에 길을 잃은 아이들. 무너지는 콘크리트 잔해. 폭력에 눈먼 군인들. 하늘로 치솟는 불꽃과 굉음.


메피스토는 다시 눈을 떠 백화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가을 오후, 뛰어노는 아이들, 화단에서 피어나는 꽃향기, 대리석 건물을 채운 클래식 음악. 평화를 응시하던 메피스토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 평화로운 곳을 어떻게 지옥으로 만들 수 있을까. 중동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메피스토가 백화점 안으로 발을 들이자, 날카로운 향수 향이 그의 코끝을 찔렀다. 그는 재채기를 터뜨리며 주위를 살폈다. 혹시 누군가 자신의 ‘불꽃’을 알아챈 것은 아닐까, 그는 긴장했다. 다행히 모세처럼 그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인간은 없는 듯했다. 메피스토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음악과 향기, 실내 분수와 조각상들.


‘벽이나 지붕 없이 구름 위에서 아버지의 빛과 바람을 온전히 맞을 수 있다면, 천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군.’


그는 털코트를 입은 여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짐을 들어주는 남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듯 통화를 하며 사뿐히 걸어가는 여자를 보고 메피스토는 그들의 계급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 바빌론을 걸어갈 편한 신발이 필요해.’


메피스토는 운동화가 가득한 매장으로 들어섰다. 벽지에는 달리기에 몰두하는 완벽한 몸매의 광고 모델들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었다. 카운터에서 나온 직원은 그 광고 모델들과는 달랐다. 걸음이 불편해 보일 정도의 고도비만 여성 점원이 아름다운 음성으로 물었다.


“찾으시는 신발 있으실까요?”

“편안하고, 검은색이면 됩니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높은 곳에 전시된 신발을 내려 메피스토에게 건넸다.


“한번 신어보시겠어요?”


메피스토의 눈에 그녀의 따뜻한 배려심은 아름답게 비쳤다.


“사이즈가 맞지 않네요. 조금 더 큰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발에도 살이 찌는 모양입니다.”


점원은 메피스토의 농담에 웃으며 다시 한번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냈다.


“저도 다이어트 중인데 정말 죽을 맛이에요.”


메피스토는 카운터에 놓인 샐러드를 바라보았다.


“맛없는 건 굳이 드시지 마세요. 자신을 고문할 필요는 없잖아요. 지금 이대로도 아주 아름다우신데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은 샐러드나 공장에서 나온 건강기능식품 따위 없이도 얼마나 잘 살아왔는데요.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점원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메피스토는 그녀를 위로했다.


“설령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한들, 당신의 날씬한 모습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걸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나요? 당신의 마음씨와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에 빠질 거예요. 브랜드와 광고에 현혹되어 돌아가는 세상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메피스토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얻은 새로운 신발을 신고 매장을 나섰다. 쇼핑이 이토록 고된 노동인 줄 잊고 살아왔다. 그는 운동복을 구매하며 모세를 위한 옷도 잊지 않고 함께 계산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백화점을 걷던 메피스토는 카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쇼핑백들을 의자에 내던진 후,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커피를 마셨다. 신발을 벗고 의자에 발을 올린 채 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은 아버지와의 내기가 뒷전인 듯 보였다. 그는 자신처럼 쇼핑백을 한가득 든 채 미로 같은 공간에 길을 잃은 사람들을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결국 마몬이 이겼군. 완전히 자기 세상이야. 축하한다.’


그는 탐욕의 악마인 형제에게 묵상하듯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친 후 눈을 떴을 때, 그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덩치 큰 고등학생 두 명이 다른 학생의 목을 잡은 채 온갖 옷 가게를 배회하고 있었다. 모세의 목을 잡고 힘을 주던 남자아이들의 손에는 모세의 지갑이 들려 있었다.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쇼핑백들은 메피스토에게 이 상황의 전말을 말해주었다.


‘학교에 있을 줄 알았는데.’


메피스토는 지옥에서 만났던 악마 하나를 떠올렸다.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모든 악마를 만나보았지만, 유독 특이했던 몇몇은 잊을 수 없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뱀의 지옥에서 마주쳤던 남자인데….’


그의 귓가에 그 악마가 했던 말이 흐릿하게 울려 퍼졌다.


“한쪽 뺨을 맞으면, 상대의 양쪽 뺨을 다 찢어놓아야지. 폭력은 즐겁고 파괴는 황홀해. 그런데도 말이야, 물질을 위해 휘두르는 폭력은 나에게 전혀 명예로워 보이지 않는다네.”


메피스토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안드로말리우스.

모세와 그를 괴롭히던 무리는 다른 매장으로 사라졌다. 부모의 관심 없이 자란 부잣집 아들 모세에게 돈이 갖는 의미는 크지 않을 터. 다만, 빼앗기는 순간의 비참한 고통만은 진하기만 했다.


메피스토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안드로말리우스. 쉬운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닐지라도, 애초에 옳다는 것이 무엇이오. 인간들의 선과 악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그들의 악이 사랑을 배신하는 모든 것이라면, 우리의 악은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것. 모세에게 쉬운 길을 보여주시오. 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이 뱀의 길을 걷게 해 주시고, 그 뱀을 환하게 비춰 모세의 잃어버린 자유를 치유해 주시길.’


메피스토는 의자에서 발을 내려 신발을 신었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 안의 TV로 영화를 보던 그는 영화 속 가족이 싸우는 장면에 흥미를 느꼈다.


'모세의 부모라는 양반들이 아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다면, 모세의 인생은 분명 나아졌겠지.'


메피스토는 핸드폰을 꺼내 거짓의 군주 벨리알에게 문자를 보냈다.


‘배 목사님. 모세 부모님이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할 방법이 있을까요? 뭐, 목사님이 죽으라면 죽을 사람들인데 뭐가 어렵겠어요. 그렇죠?’


휴대폰을 집어넣은 메피스토는 의자 위에 쌓여있는 쇼핑백을 들어 올렸다. 짐을 들어줄 하인조차 없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그는 무거운 짐을 이끌고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전 같은 백화점을 떠나 택시에서 내린 후, 메피스토는 초인종을 눌렀지만 모세가 집에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악마를 맞이하며 대문이 열렸고, 그는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을 지나 열린 모세의 방문으로 메피스토가 들어섰다. 침대에 엎드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모세는 아무런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집에 악마가 있으면 신기해서라도 거실로 나와 인사를 할 텐데. 게다가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다니.’


메피스토는 모세가 누워있는 침대에 그를 위해 구매한 쇼핑백을 던지듯 놓았다.


“이게 다 뭐예요?”

“편한 옷을 사러 갔다가, 네 옷도 몇 벌 사 왔지.”

“교회에 짐을 두고 왔다는 건 거짓말이었죠?”

“당연하지.”


인간과의 교류에서 어색함을 느껴본 적이 없던 메피스토였다. 선물을 건넸으니 이제 돌아설 차례였다. 그가 등을 돌리는 순간, 모세의 목소리와 함께 안드로말리우스의 열기가 그의 등에 닿았다. 메피스토는 자신의 기도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자신감 넘치게 모세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너, 내가 악마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지?”

“네. 왜요? 불이라도 뿜으시게요?”

“아니. 선물이 하나 더 남아있어. 따라와 봐.”


모세는 귀찮은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메피스토를 따라 거실로 나섰다. 모세는 마치 강아지가 간식 냄새를 쫓듯 길을 찾는 메피스토의 뒤를 밟았다. 메피스토는 모세 본인조차 몇 번 들어가 보지 않았던 집의 지하실로 내려섰다. 지하실 특유의 습한 냄새와 짙은 어둠이 모세에게 서늘함을 안겼다. 모세가 보는 메피스토의 등은 지하실의 어둠, 그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메피스토가 계단 중앙에 멈춰 서자, 모세는 남자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메피스토가 지하실의 불을 밝힌 후, 모세는 울음소리의 근원을 직시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두 명의 남자아이들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거대한 나무 십자가에 묶여 있는 두 아이.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백화점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눈과 입을 가린 천은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내가 집에 온 후, 아저씨가 올 때까지 거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지하실 바닥을 본 모세는 놀란 고양이처럼 계단 뒤로 몸을 넘기며 주저앉았다. 처음 모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보일러를 잇는 파이프인 줄 알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뱀들은 지하실 바닥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뱀들은 아이들이 묶인 십자가 밑을 유영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듯했다. 뱀들은 모세와 메피스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겁에 질린 모세가 메피스토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뱀이지. 네가 허락만 한다면 이곳의 아름다운 뱀들이 저 두 놈을 먹어 치울 거야. 반대하는 건 아닐 테고?”

“이게 아저씨가 악마라는 증거예요?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손쉽게 죽여버리는 게?”

“악행? 아니. 아무것도 없던 지하실에 십자가, 뱀, 그리고 저 두 놈을 모아놓은 나의 마법. 이게 증거지.”


메피스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바닥의 뱀들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크고 작은, 붉고 푸른 뱀들은 연기를 피해 십자가를 향해 기어올랐다. 메피스토는 뒤돌아, 겁에 질린 모세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직 확신이 안 드나 봐? 부자가 천국에 갈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는데. 너의 집을 봐. 푸른 잔디가 깔린 거대한 저택. 너희 부모님도 분명 누군가가 힘들게 번 돈을 갈취한 것뿐이야. 저기 십자가에 매달린 두 놈이 너에게 그랬듯이. 애초에 돈이라는 건 자원이고, 자원은 무한하지 않잖아? 누군가 배를 채우면 누군가는 굶주림의 고통을 겪겠지. 너는 알잖아? 빼앗기고 굶주리는 고통을.”


메피스토의 논리는 담배 연기를 타고 모세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연기는 모세가 겪어온 고통의 장면들을 재생했다. 학교에서 당했던 치욕들, 아무리 돈을 갖다 바쳐도 만족하지 못했던 그들의 끝없는 욕심. 그들에게 당한 신체적 고통, 그들이 찾아올까 봐 숨어 지내야 했던 수치스러운 정신적 고통. 모세가 바라보는 메피스토의 등은 넓고 단단해 보였다. 메피스토는 모세의 생각을 읽는 듯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 두 놈이 사라지면 겪을 자유의 달콤함을 상상해 봐. 네 마음속에 남은 고통? 내가 치유할 수 있어. 아니, 뱀과 십자가가 치유할 수 있지. 너의 선택이야.”

“좋아요. 결정했어요. 그런데 경찰한테 걸리면 어떡하죠?”

“진심으로 경찰 걱정을 하는 거야? 눈앞에서 권능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는데? 경찰이나 법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저런 놈들이 아니라. 너, 1년에 실종되는 아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나 보네.”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어떻게?”

“죽여요. 뱀에게 먹이세요.”


메피스토는 다시 한번 깊게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 후 지하실 바닥으로 힘껏 내뱉었다. 연기를 피해 기어 다니던 뱀들은 두 남자아이가 매달린 십자가 위로 타오르듯 기어올랐다. 십자가에 묶인 두 명의 몸을 휘감은 뱀들은 독이 흐르는 이빨로 그들을 물어뜯었다. 모세는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졌던 암이 치유됨을 느꼈다.


‘앞으로는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학교생활이 즐거워질 거라니, 믿기지 않아. 자유다. 드디어 자유야.’


메피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하는 그에게 모세가 물었다.


“그런데 이거 다 어떻게 치우죠?”


메피스토는 모세가 농담이라도 던진 듯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계단을 올랐다. 지하실 문을 닫기 전, 메피스토는 뒤돌아 말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가 있어. 그는 네가 겪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난 말이야, 그저 저 두 놈이 뱀에 물려 고통받고 죽어가기를 원했어. 쟤들이 무슨 짓을 했든 간에, 내가 원했던 것이 있었고, 내가 원한 대로 된 거야. 다른 것들은 상관 안 해.”


모세는 지하실을 떠나기 전, 백골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뱀들이 휘감은 십자가를 응시하는 모세의 마음에는 평화와 치유가 깃들었다.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메피스토는 검은 정장을 벗어던지고 편안한 검은 잠옷을 걸쳤다. 그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꺼내 검색창에 입력했다.


‘한 달 안에 도시를 혼돈에 빠트리는 법.’


유용한 정보는 없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검색 기록을 훔쳐보며 비웃고 있을 것이다.


‘도시의 모든 길바닥에 뱀을 풀 수 있다면, 도시는 불바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안드로말리우스가 이유 없는 응징을 선사할 리는 없어. 게다가 이미 충분히 많은 신세를 진 셈이고. 군인들을 이용한다면? 아니야. 얕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일으킨 잠깐의 혼돈은 금방 정리될 거야. 인간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해. 그들이 스스로 깨닫게 해야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윤리와 도덕은 결국 거짓과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국 나도 아버지처럼 말하고 있군.’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던 메피스토는 문밖의 노크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자신이 사준 새 옷을 입은 모세가 서 있었다.


“편하네요. 아저씨 돈은 어디서 났어요?”

“내 친구가 너희 세상에서 돈을 만드는 역할을 하거든.”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요. 옷도, 다른 것들도 전부요. 병이 고쳐진 기분이에요.”


병이 고쳐졌다는 모세의 이야기에 메피스토는 급히 1층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권능이 돌아오고 있어.’


메피스토는 정수기 앞에 컵을 든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고작 정수기에 엄청난 집중을 보이는 메피스토의 뒷모습에 모세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어떤 기행을 펼치든 겁이 나지 않을 듯했다.


메피스토는 눈을 감고 정수기에 컵을 대어 물을 받았다. 이내 물은 점차 붉어져 적색의 와인으로 변했다. 메피스토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만든 와인 한 잔을 모세에게 권했다. 메피스토 역시 물컵에 담긴 와인을 마시며 주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모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저씨, 진짜 악마 맞네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능력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아저씨 친구들한테 부탁하면 다 해결해 주잖아요.”

“야. 관계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지금이야 서로 웃으며 우리끼리 베풀고 살지, 결국은 다 갚아야 할 빚이다.”

“이제 아저씨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정말로 믿어요. 그런데 악마라면 아저씨는 지옥에서 온 거예요? 아저씨 친구들도 다 지옥에 있어요? 지옥은 정말 끔찍한 곳이에요?”


메피스토는 와인에 비치는 지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세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야 했다. 붉은 포도주안의 세상과 같이. 그러나 메피스토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영혼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 만족하고 살면, 살만한 곳이야.”

“아저씨랑 아저씨 친구들은 왜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데요?”

“내가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대부분은 한때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들이었다고 해. 우리가 찾아낸 그 진리가 창조주가 만든 세상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사실이었던 거지.”

“그래서 지옥에 갇힌 거예요? 근데 왜 기억을 못 하는데요?”

“내가 예전에 한 연금술사와 내기를 했는데, 그때 기억을 포함해 가진 것을 전부 다 잃었거든. 그래서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진짜 내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라.”


모세가 바라본 메피스토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와인에 감성적으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삶의 끝없는 질문에 답 없는 슬픔이 담긴 것일까. 모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메피스토에게 건넸다. 메피스토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집에서 피우지 말라며.”

“이십 년, 삼십 년 전만 해도 다들 집에서 피웠는데 왜 이제는 안 되나요?”

“그렇지. 그렇게 넓게, 멀리, 크게 보란 말이야. 이제야 말을 좀 알아듣네.”


물컵에 담긴 붉은 와인과 담배 연기는 그들의 손에서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거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관찰했다. 메피스토는 전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사는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나빠요.”

“완전히 좋고 나쁜 게 어디 있겠어.”

“아니에요. 나빠요. 아저씨가 악마라는 증거를 보여줬듯이, 저도 아저씨한테 보여줄게요. 세상이 나쁜 곳이라는 증거를.”


메피스토는 비가 쏟아지는 가을 하늘보다 더 어두워진 모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의 슬픔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 특히 어린것들에게는 더욱 가혹해.’


메피스토는 한 달 안에 도시를 혼돈의 성소로 만들지 못할 경우 자신도 그들과 같은 슬픔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었다.


“세상이 나쁜 곳이라는 증거. 그걸 꼭 보여줘야 한다. 알았지?”

“당장 내일이라도 보여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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