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술에 취해 붉은 얼굴을 한 데미안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다니까. 네가 이 세계에 도착한 사실 자체로 혼란이 시작될 것이란 걸. 균형이 무너지는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고.”
“이해가 가지 않아. 도시가 혼란에 빠지면 아버지는 내기에서 지는 거야.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자신이 지는 내기를 시작한 거지?”
“아버지가 질지 어떻게 알아?”
“뉴스 안 봐? 바깥세상을 봐. 이대로만 두면 나의 승리라고.”
“네가 과연 도시를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가만히 놔둘까?”
데미안이 건넨 담배에 불을 붙인 메피스토는 침묵을 지켰다. 데미안의 담배 연기는 그 침묵을 깼다.
“네가 말하는 사랑이나 낭만, 그것들은 효율적인 게 아니거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줄까?”
“그래.”
“내 생각에 아버지는 이번 계기로 너의 기강을 잡으려는 것 같아. 네가 인간들의 세상에 간섭하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도시를 가만히 놔둔다면, 너의 인간 친구들이 위험에 처하겠지. 그래도 뭐, 너는 불타는 도시와 시체들을 등진 후 천국에 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네가 친구들을 위해 도시의 혼란을 정화한다면? 너는 하찮고 고통이 가득한 인간으로 살아야 해. 어떤 선택을 내리던 너는 지는 거야. 넌 진심으로 아버지가 본인이 질 수도 있는 내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해?”
메피스토는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데미안은 문을 열고 나선 메피스토의 등을 응시했다.
'네가 이기면 좋겠지만, 네가 이길 방법은 없어.'
늦가을의 저녁, 서늘함 속에 이슬비가 내렸다. 메피스토는 이슬비를 뚫으며 자전거의 페달을 거칠게 밟고 있었다. 그가 골목에서 나왔을 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피를 뿜으며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메피스토의 자전거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러나 거리를 순찰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에 자전거의 바퀴는 다시 굴러갔다.
그가 모세의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섰을 때 가득한 인파는 그대로였다. 골목길을 지키는 병자들은 메피스토를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 바다가 갈라지는 듯한 인파를 뚫고 메피스토는 모세의 집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슬비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그는 계엄군과 대치 중인 골목의 끝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인 병자들의 성벽은 불타고 있었다. 발화의 근원은 알 수 없었다. 불타는 시체들의 벽은 병자들과 모세, 메피스토를 막아주고 있었다.
메피스토는 대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자신 앞에 엎드린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메피스토는 그곳에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입에 치유의 연기를 내뿜었다. 메피스토의 연기를 흡입한 사람들은 군인들을 향해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 병자들은 줄을 서 치유의 차례를 기다렸다. 메피스토는 그의 방 창문을 올려다봤다. 2층의 창문에선 모세가 병자들을 돕는 메피스토를 내려다보았다. 메피스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차례가 다가와 메피스토의 치유를 기다리는 병자에게 메피스토는 말했다.
“나도 잠시만 쉬게 기다려봐요.”
메피스토의 말을 들은 병자는 그의 앞에 엎드렸다.
“엎드리지 좀 말고.”
저택의 문 앞에서 병자를 고치던 메피스토는 담배의 불을 붙여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저택의 문이 열리고 집에서 나온 모세는 메피스토의 옆에 앉았다.
“사람들을 고쳐주기로 한 거예요?”
“몰라.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야.”
“여기서 계속 사람들을 고쳐준다는 뜻이죠?”
“그럴지도. 그래도 도시에는 화염과 피가 끊이지 않을 거야. 너무 기대하지 마.”
담배 연기 때문인지, 지나간 최루탄의 가스 때문인지 메피스토의 눈은 따가웠다. 그의 붉은 눈은 건너편 멀리 지쳐 서 있는 군인들을 향했다. 불이 붙은 시체의 벽을 가운데에 두고 대치 중인 병자들은 두통과 발작을 참아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메피스토는 모세에게 말했다.
“모세야 너 주방에 들어가서 물이랑 음식 좀 가져와라.”
바쁜 부모님 때문에 모세는 매일 배달 음식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모세는 주방에 음식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주방에 들어섰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물병들과 유통기한이 지난 빵 몇 개가 전부였다. 모세는 물과 빵을 집어 저택의 대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렸을 때 레라와 가인 역시 대문 앞으로 나와 입구의 메피스토 옆에 앉았다. 모세는 물병들과 빵을 메피스토에게 건넸다.
“이것밖에 없었어요.”
“충분해.”
메피스토는 물병 안에 자신의 연기가 섞인 입김을 불어넣었다. 메피스토는 레라에게 물병을 건넸다.
“골목에 있는 사람들한테 한 모금씩 나누어 줄래요? 병에 도움이 될 겁니다.”
“모자라겠는데요.”
“안 모자랄 겁니다.”
물병을 손에 쥔 레라는 군인과 대치 중인 병자들의 전선으로 향했다. 그녀는 고통을 참아내는 병자들에게 한 모금 한 모금씩 물을 건넸다. 메피스토는 모세에게 건네받은 빵을 반으로 찢었다. 메피스토는 찢어진 빵을 다시 반으로 갈랐다. 빵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부족한 이들을 위한 빵은 모자라지 않았다. 권능을 되찾아가는 메피스토는 끊임없이 빵을 찢어내 가인과 모세에게 주었다.
“사람들 나눠줘라.”
정원의 잔디 위에 있는 편한 의자 대신, 메피스토는 저택의 입구, 차가운 콘크리트를 베개 삼아 누웠다. 자리에 누운 그는 하늘 위에 떠 있는 금성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메피스토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콘크리트에서 잠이 깨었을 때 그의 앞에는 더 많은 수의 병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메피스토는 아직 잠들어 있는 옆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까치발을 들어 멀리 보이는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군인들의 앞에 세워진 시체 벽에서는 파리가 태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물과 빵을 얻은 병자들은 더 이상의 치료가 필요 없었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메피스토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남은 병자들의 치료를 위함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만 치유하다가 내기가 끝나겠어. 애초에 마르바스와 엮이는 게 아니었는데.
언제 그의 주머니로 돌아왔는지 모를 핸드폰은 진동음을 울려댔다. 메피스토는 벨리알의 이름을 확인한 후 전화를 받았다.
“배 목사. 왜 전화했어.”
“이제는 또 배 목사라고 부르네.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왜? 교회는 장사 잘돼서 좋다며?”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는 네가 있는 교회로 다 옮겨가니까, 여기는 파리만 날린다.”
“파리는 여기도 날려. 그리고 여기가 왜 교회야? 왜 전화했어.”
“마르바스와 계약을 한 게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안드레알푸스에게 기도를 한 거야. 너도 알잖아. 바벨탑이 무너지고 그놈은 권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니까.”
“형님은 도와주기 싫다며. 헌금이 부족하니까 마음이 바뀌셨어?”
“네가 상도덕을 안 지키니까 그렇지. 아무튼, 내가 상황을 정리해 줄게. 거기 있는 교인들한테 돌아오라고 좀 전해줘.”
“형이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데?”
“나라님들, 군인들이랑 밥을 한번 먹을게. 계엄령도 해제하고. 차근차근 다 풀어볼게. 너도 알잖아, 나 말 잘하는 거.”
“형님이 정치인들하고 얘기해서, 상황이 다 정리되면은 도시에 혼돈은 사라지는 거네?”
“그렇지?”
“그러면 나는 아버지와의 내기에서 지는 건데?”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데.”
메피스토는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소리를 지르는 벨리알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정원의 잔디 위로 던졌다. 잠에서 깬 모세는 메피스토에게 물었다.
“우리 부모님은 무사하겠죠?”
“그럼. 지방에 계시니까. 여기보다는 훨씬 안전하실 거야. 당분간은 이곳에 오시거나 연락하기 힘드시겠지만.”
메피스토는 명의처럼 자신의 앞에 줄 선 사람들에게 연기를 내뿜기를 반복했다. 두통과 발작이 사라진 사람들은 메피스토를 위해 대치 중인 벽 앞으로 당찬 걸음을 옮겼다. 병자들의 치유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엄군 역시 철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메피스토는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모세를 불렀다.
“모세야, 내가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네.”
“내가 돌아가게 되는 날에는….”
메피스토와 모세는 군인들과 대치 중이던 시민들이 누군가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모습을 보았다. 사십 대 후반의 군인은 비켜선 시민들 사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군인, 그의 뒤로 지는 해는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메피스토는 그의 그림자를 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가 메피스토의 앞에 서자 주위의 병자들은 혐오와 경계가 섞인 태도로 남자를 주시했다. 군인은 메피스토에게 악수를 요청하는 손을 뻗었다.
“나 여기 사령관입니다.”
“이름이 미겸이에요? 희한한 이름이네.”
“동영상 봤습니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지도 다 압니다. 경찰이나 국정원에서도 당신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고 하네요? 어떤 인간이 주민등록증도 없을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간첩이 폭도들을 이용해서 정부에 폭력행위를 하는 것, 그건 따로 처벌하기로 합시다. 그런데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내가 간첩이라고? 뭐, 그래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뭡니까.”
“지금 이 사달이 난 게, 당신이 병을 고치는 영상이 퍼진 이후인지, 아니면 진짜로 병이 퍼져서인지. 내로라하는 박사들도 정체를 모르는 질병을 당신은 숨 한번 내뱉으면 쉽게 고쳐내지 않습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북에서 온 간첩이 탄저균을 뿌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뭐, 증상이 엄연히 다르니까.”
“사람들이 왜 아픈지, 병의 이름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하는 거요?”
사령관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소와 함께 메피스토를 노려보았다. 악마와 장군을 둘러싼 시민들은 사령관의 손을 경계했다. 사령관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읊조렸다.
“인간이 천연두를 어떻게 정복했는지 아세요? 병의 유일한 근거인 당신이 저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같이 안 간다면요?”
“체포하고, 끌어서라도 데려가야죠.”
“이 사람아. 주위를 둘러봐.”
사령관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화난 군중을 둘러보았다.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인간들은 폭도들이지 더 이상 시민들이 아닙니다. 내일 해가 질 때까지 자진해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실탄을 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 아파서 동네 의원을 찾아온 병자들을 쏘겠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보안법을 위반했고, 당신을 지키느라 계엄군에게 저항하는 여기 모두는, 화학전을 일으킨 주동자를 옹호하는 반국가세력입니다.”
“실탄도 많이 가져오고, 열심히 쏘세요. 열심히 쏴서,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이십시오.”
“내일 저녁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사령관은 화를 숨긴 채 뒤를 돌아 골목을 걸어갔다. 그가 돌아가는 길을 메운 병자들은 그에게 증오의 눈빛을 보냈다. 그는 당장이라도 누군가 달려들지는 않을까 언제든 허리춤의 권총에 손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패한 시체 벽을 넘어 진지로 복귀했다. 군인의 뒷모습을 바라본 모세는 메피스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한테 다 돌아가라고 말해야 해요.”
“아픈 사람들 치료하라고는 네가 나한테 말했는데?”
“내일 다 총으로 쏜다고 하잖아요. 아저씨가 합의점을 찾아봐요.”
메피스토는 담배를 문 입으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 방식대로 할게.”
그는 모세의 어깨를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너지고, 정전된 골목에 달빛은 유난히 빛이 났다. 메피스토는 저택의 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정원을 지나쳐 현관의 문을 연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멈추어 섰다.
지하실의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자국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메피스토는 늘 그래왔듯이 지하실의 계단에 앉아 눈을 감았다.
'늘 이곳에 있던 것을 압니다.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지하실의 구석, 구석 모든 곳에서 날아온 파리떼가 검은 구름처럼 비행했다. 지옥의 파리떼는 서로의 몸을 비비며 지하실을 맴돌았다. 메피스토는 파리들의 몸이 그을리며 불타오르는 냄새를 맡았다. 먹구름 같던 파리떼는 지옥 불 같이 불타올랐다. 불이 사그라진 자리에 서 있는 남자에게 메피스토는 인사를 건넸다. 그 남자는 휠체어에 앉아, 고양이와 두꺼비, 인간의 머리까지 3개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언제 부르나 했어.”
“파리 대왕님. 3천 년 전에 끝내지 못한 일을 매듭지어봅시다.”
“그때의 일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나의 수치를 아는 척하지 말아라.”
“가나안의 정당한 신, 파리 대왕이 어째서 밤하늘 금성의 빛에 숨어 지하실에서 미천한 악마와 만남을 갖습니까? 모두 아버지가 두려워서 아닙니까? 바알,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바알의 몸은 파리떼로 변해 메피스토의 주위를 맴돌았다. 메피스토는 손을 휘저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다시 본모습을 되찾은 바알은 메피스토의 옆에 앉았다. 두꺼비의 머리를 가진 남자는 지하실에 남아 있는 파리들을 향해 혀를 뻗어냈다. 고양이의 머리가 손을 핥고 있을 때 인간의 머리는 메피스토에게 물었다.
“무엇을 어찌해 줄까.”
“전쟁과 파괴의 화신에게 바라는 건 뻔한 것 아니요.”
미소를 지으며 지하실에서 나온 메피스토는 병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저택의 문 앞으로 나왔을 때 병자와 군인으로 가득한 길에는 혼란 섞인 소음이 가득했다. 병자들은 군인들에게 쓰레기와 돌을 던지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모세는 눈을 다친 남자를 부축하여 메피스토의 앞에 앉혔다. 남자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통에 떨고 있었다. 그의 손아래로는 피눈물이 흘렀다. 모세는 다급하게 메피스토의 팔을 붙잡았다.
“군인들이 쏜 최루탄의 파편에 눈이 맞았나 봐요. 어떻게 좀 해봐요. 아저씨.”
“나는 이런 상처는 고칠 수 없어. 발작하는 사람들만 고칠 수가 있다고. 그것도 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면 어떡해요? 폭도라고 병원에도 보낼 수가 없어요.”
“나는 마법사가 아니야. 의사도 아니고.”
“그래도 뭐를 좀 해주세요.”
메피스토는 모세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눈을 다친 젊은 남자는 고통과 함께 사라지는 시야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메피스토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레라와 가인을 바라보았다. 레라는 메피스토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아는 듯했다. 고통에 떠는 남자와 간절히 부탁하는 모세를 두고 메피스토는 레라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어떡하죠?’
레라는 메피스토의 손목을 잡아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눈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메피스토는 자기 손바닥에 닿는 피와 눈물의 감촉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 메피스토는 본인의 손과 남자의 눈에 집중했다.
'뭐가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이 남자의 눈이 마법같이 나아지면 좋으련만.'
메피스토는 그의 손에 지옥 불의 열기가 모이는 것을 느꼈다. 지옥의 불이 행여나 남자의 눈을 더 상하게 할까 걱정이 된 메피스토는 급하게 그의 손을 남자의 얼굴에서 뗐다. 메피스토의 손이 치워진 남자의 얼굴에는 피와 눈물이 모두 씻겨져 있었다. 남자는 모든 고통을 잊은 듯이 사물들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기적에 주변의 인간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모세 역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아저씨가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메피스토는 자신이 가져 본 적 없는 권능에 당황했다. 그는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걱정에 빠졌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라 해도 돌아가지 않겠군.'
골목길의 병자들은 군인에게 욕을 하던 것을 멈추고 메피스토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메피스토는 까치발을 들어 군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메피스토의 눈빛은 사령관의 분노와 긴장이 담긴 미소에 닿았다. 메피스토는 그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메피스토는 밤을 새워가며 병자들을 치유했다. 계엄에 통제되는 언론에도 메피스토의 유명세는 끝없이 퍼져나갔다.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메피스토를 지지하는 군중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 모세가 유포한 동영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병자를 치유하는 메피스토의 모습과 그의 목소리.
'너에게 모든 것을 줄 테니.'
골목을 벗어나 계엄군이 통제하는 도로에서도 싸움은 이어졌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 메피스토의 바람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 그는 차갑고 축축한 문 앞 돌바닥에 눕는 것에 편해졌다. 밤새 병자를 돕고 아침의 해가 떴을 때 그는 다시 콘크리트를 베개 삼아 자리에 누웠다.
잠이든 그는 꿈속에서 눈을 떴다. 그는 따뜻하고 달콤한 그의 집에 있었다. 창밖의 소음, 지옥의 악마들은 평소와 같이 싸움과 거짓말을 이어갔다. 창밖으로 바라본 지옥의 풍경은 메피스토에게 향수병을 불러일으켰다. 지옥의 유황불이 튀기는 패싸움을 지켜보는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과 천국의 빛이 섞인 듯한 목소리.
“저와 함께 돌아가요.”
잠에서 깬 메피스토는 태양을 등진 채 자신을 내려보는 레라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콘크리트가 아닌 레라의 무릎에서 잠에서 깬 그는 레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꿈에서 들려온 건지, 현실에서 들은 것인지 메피스토는 확신하지 못했다. 레라는 메피스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아니, 나아지지 않더라도 저랑 다른 나라로 가는 건 어때요?”
“저한테는 이곳이 이미 ‘다른 나라’ 예요.”
“아파하는 사람들과 화나 있는 군인들을 봐요. 지옥 같지 않아요?”
“천국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게다가 지옥이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닐걸요.”
메피스토는 레라와의 달콤한 순간이 즐거웠다. 그의 단잠과 레라의 목소리도 잠시, 모세는 메피스토에게 달려왔다.
“아저씨, 조금 있다가 해가 지면 군인들이 총을 쏴서 다 제압한다고 한 거 알고 있죠? 왜 이렇게 태평해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어요?”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무슨 계획이 있으면 말해줘야지. 지금이라도 사람들한테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해 볼까요?”
“지금 여기 골목길 말고 온 도시가 이 모양인데 어떻게 집으로 가라 해. 가는 길에 군인들에게 맞아 죽을 거다.”
“그럼 어떡할 건데요.”
“믿음을 가져봐.”
메피스토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이 레라의 품을 떠나지 않았다. 가인은 모세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저도 아저씨가 고쳐준 병자 중 하나예요. 그러니까 집으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거예요.”
“마음대로 해.”
확신에 찬 가인의 모습에 모세 역시 사람들을 설득할 마음이 없어졌다. 그러나 점점 기울어지는 태양이 불안한 모세였다. 그는 저녁이 오지 않길 바랐다. 메피스토가 눈을 고쳐준 남자는 인파를 뚫고 메피스토에게 다가왔다.
“저쪽 계엄군이 18시에 발포한답니다. 그때까지 건너오지 않으면,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답니다.”
“세 시간은 넘게 남았네요.”
메피스토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하루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담배의 필터를 씹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이 신성한 듯 지켜보았다.
그가 두 손을 내린 후 눈을 떴을 때 전방의 시민들과 맞닿은 시체 벽 앞, 군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시민들과 군인 사이에 쌓여있는 시체의 벽에서 파리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부패한 시체에서 태어난 엄청난 수의 파리떼는 군인들의 오와 열을 흩트렸다.
마치 검은 구름과도 같은 파리의 비행에 군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이탈했다. 비행의 소음은 공포스러웠다. 시민들은 이것이 메피스토가 일으킨 기적이라 믿었다. 메피스토는 까치발을 들어 파리들에게 공격당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검은 구름과도 같은 파리떼에 기겁한 군인들은 지쳐 자리에 쓰러졌다. 메피스토가 기도할 때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자 그 많던 파리는 모두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겁에 질리고, 기절한 군인들은 그날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어도 시민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메피스토가 병자들을 치료하는 밤, 군의관들은 공포에 떠는 군인들을 하나둘 실어 나르기 바빴다.
다음 날의 태양이 뜨고서야 군인들은 다시 질서를 찾을 수 있었다. 파리에게 공격당한 군인들은 기침을 내뱉고 몸을 긁었다. 그들의 얼굴과 팔, 피부에서 종기가 자라났다. 군인들은 피부를 긁느라 총을 제대로 쥘 수조차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발작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건강하게 자리에 서서 군인들을 불쌍한 듯 쳐다보았다.
메피스토는 시민들의 사이를 전진해 시체의 벽 앞에 섰다. 반대편에서는 사령관이 고통받는 군인들을 밀어내며 시체의 벽 앞에 도달했다. 시체로 쌓인 벽을 가운데에 두고 사령관은 메피스토를 노려보았다.
“당신 뭐야?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먼저 공격한 거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우리는 한 번도 먼저 공격한 적이 없어. 사람들이 이곳에 서 있는 이유만으로도 최루탄을 쏘아댄 건 당신이잖아?”
사령관은 분노와 공포가 섞인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상황에 그는 어떤 욕을 내뱉어야 할지 몰랐다. 메피스토는 그를 놀리듯 웃음을 지었다.
“사람한테 가스를 뿌릴 생각은 하는데, 왜 파리한테는 그러지 못한 거요? 군인들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해서 여기에 치료받으러 온 사람들입니다. 각자 치료를 다 받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메피스토의 모습에 사령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시체의 벽 앞에 발이 굳어, 돌아가는 메피스토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에게 부관이 다가왔다.
“사령관님. 누가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하십니다. 상황을 도와주실 방법이 있다고.”
“누가 그딴 소리를 해. 누가 누구를 도와.”
“근처 대형 교회 목사님이라고 하시는데…. 돌려보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