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알 Ⅰ

7

by 박규동

차가운 밤, 병든 군인들은 기침하며 피부를 긁어 피를 흘렸다. 명령에 따라 정렬된 군인들의 끝, 캠프 안의 사령관은 방문객인 목사와 마주 앉았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배 목사라고 부르십시오. 편하게.”

“상황을 도와줄 방법이 있으시다고?”

“지금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병사들이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그 악마 같은 놈이 파리떼를 불러일으킨 이후로….”

“그렇죠. 젊은 친구들의 건강이 먼저입니다. 파리떼를 일으킨 놈은 분명 병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이 발작을 일으킨 이유도, 그 병을 고친 것도 그놈 아닙니까?”


사령관은 담배를 문 중년의 목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째서인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목사님 말대로 병사들을 살릴 수 있다고 칩시다, 실례가 안 된다면 목사님이 왜 저희를 도우려고 하는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가오는 겨울에도 자리를 지키는 청년들을 보십시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들 아닙니까.”


목사는 주위를 살피듯 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겸손한 하나님의 어린양일 뿐입니다. 저런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저야 뭐,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저놈과 대화할 것입니까?”

“예. 병사들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겠습니다. 그러나 정치라는 게 하나를 주면 하나를 잃는 법입니다. 치료의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으십니까?”

“대가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모르죠. 그놈이 분명 바라는 게 있을 겁니다.”

“무능한 지휘관 때문에 젊은 병사들이 전멸하는 것보다는 그놈이 원하는 것 하나를 주는 게 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목사는 재떨이에 담배를 가볍게 내려둔 후 일어났다. 캠프의 문을 열고 고개를 숙여 골목으로 나온 목사는 늦가을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폐를 거쳐 나온 숨은 지옥의 연기가 섞여 입에서 뿜어졌다. 비싼 장갑과 명품 코트, 그는 구두가 더러워지는 걸 조심하며 군인들의 오와 열을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군인들은 작전 상황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는 목사를 경계했다. 목사는 군인들을 밀쳐내며 시체 벽 앞에 섰다. 그는 불타고 부패한 시신들로 쌓인 벽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이 씨. 더러워서 진짜.'


그는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시체의 산 위에 올라섰다. 대치 중인 메피스토의 병자들은 시체들의 위에 올라선 남자를 불쾌한 듯 올려보았다. 그가 헛기침하고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자, 빛을 잃었던 골목의 가로등은 다시 노랗게 타올랐다. 병자와 군인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겐 메피스토와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목사는 시체 위에 균형을 잡아 선 채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의 뒤에, 진정한 적그리스도, 악마, 억압자가 앉아 있다.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기꾼의 거짓말에 너희들의 목숨을 바칠 건가? 내가 저런 사기꾼들을 잘 알지. 저들은 너희들의 권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권위에 대항하지. 모두 그렇게 시작해. 체계를 가꾸는 사람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지. 너희들을 위해서? 아니야. 자신이 그 권위의 의자에 앉기 위해서야.”


벨리알의 검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메피스토를 가리켰다. 그는 코를 훌쩍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너희들의 눈에는 그가 구원자로 보일 거야. 충분히 이해해. 아픈 너희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기적을 보여줬지. 그런데 너희들이 애초에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들이 병을 겪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지? 바로 저놈이다. 구원자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난 저놈은 지금의 체제를 붕괴하려 할 뿐이야. 너희는 새로운 억압자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야. 그가 너희와 군인들의 피로 지은 옥좌에 앉는 그날, 그는 너희들의 자녀를 윤간하고, 너희들의 재산을 뺏어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선 또 다른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겠지. 이 더러운 짓거리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거야.”


마치 본인도 동의한다는 듯 목사의 이야기를 듣던 메피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옥의 형제를 만나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너희들 중 저놈의 진짜 정체를 아는 놈이 한 명이라도 있나? 그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들의 병을 낫게 할 것이다.’ ‘너희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너희들은 구원받을 것이다.’ 과거와 다름이 없는 만들어진 신화지. 저 놈은 지금 그 거짓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야. 너희들에게 기회라는 존재하지 않는 구원을 건네며, 너희들이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거짓을 내뱉지. 새로운 억압자의 등장일 뿐이다.”


목사는 건강해진 병자들의 사이를 뚫으며 걸어오는 메피스토를 볼 수 있었다. 목사는 반가운 듯 아이처럼 메피스토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 오나 했네. 이제 목이 아파서 말씀도 못 전하겠어.”


메피스토는 시체들의 위에 서 있는 목사를 본 후 그와 같이 시체 위에 올라섰다. 목사의 앞에 선 메피스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벨리알 형제님, 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골목의 병자와 군인들은 시체 벽 위 두 남자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세는 교회의 목사님이 왜 이곳에 있는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세의 마음에는 메피스토를 향한 의심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가인은 모세의 옆에 서서 그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모세는 가인의 따듯한 손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의심하지 마.'


레라는 저택의 대문에 기대 시체 위의 두 남자를 아무런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무전을 이용해 그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벨리알은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메피스토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나도 처음에는 네가 진심으로 내기에서 이기기를 원했거든? 그래서 너를 모세의 집으로 보낸 거야.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고. 그런데 네가 이렇게 나의 교인들을 뺏어가면 안 되지.”

“누가 뭘 뺏어.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와서 돌아가질 않는데 내가 뭘 어떡해. 게다가 거짓의 군주라는 사람이 고작 신도들이 도망갔다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나? 돈이라면 이미 차고 넘치는 것 아니요?”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나는 목사로 사는 게 좋아. 모두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말을 믿거든. 신이 된 기분이야. 게다가 나는 나의 일상이 좋았거든. 예배가 끝나고 저녁에는 미녀들과 술도 마시고 가끔 아침에는 축구도 하고 말이야.”

“조심하십시오. 아버지가 듣습니다. 신도들은 형님이 알아서 데려가든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요?”

“뒤에 군인들 보이지? 피부를 하도 긁어서 이제는 흐르는 피가 저들의 피부 같아. 내가 사령관 하고 약속했거든. 네가 저들을 고치게 하겠다고. 그런데 나는 이미 알지. 너는 지옥에 모든 권능을 두고 왔잖아? 발작의 병을 고치는 것 역시 마약을 이용해서 사기치고 있는 것 아니야? 베테랑 앞에서 거짓말이 통할 줄 알았어?”

“그러면 사령관한테 돌아가서 뭐라 하려고.”


시체 위의 두 악마는 장군이 있는 캠프를 돌아보며 엿들을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설득은 해봤지만, 역시 악마는 악마입니다. 아픈 청년들을 돕자는 저의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군인들의 병세가 더욱 심해지기 전에 무력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깟 교회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깟 교회라니, 나에겐 얼마나 소중한데. 너의 하찮은 내기보다 백배는 소중하지. 무력으로 싹 다 밀어버리고. 혼돈은 제압되고, 너는 내기에서 지고, 나는 신도들과 교회로 돌아가고. 모두 계획대로 되는 거야.”


벨리알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뭐, 이 정도 시간 끌었으면 충분히 회유하는 것처럼 보였겠다. 나는 이제 돌아갈게. 그래도 형제로서 약속하마. 네가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배고플 일은 없도록 도와주마.”


군인들의 진영으로 돌아가기 전, 벨리알은 진심으로 궁금한 듯 메피스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저기 있는 인간들, 도와주는 이유가 뭐냐? 무슨 꿍꿍이야? 노력할수록 방황하게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알지? 사적인 감정은 없으니까. 내기가 끝나고는 진정한 너 자신으로서 살아가길 응원하마.”


메피스토는 데미안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장 완벽한 너 자신은, 완벽하지 않은 너의 모습 그 자체야. 완벽해지려고 발버둥 치면서 혼란스럽게 이것저것 부수고 난리를 치는 거지. 아버지와의 내기에서 이기려면 기억해 둬.’


메피스토는 벨리알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내가 되고 싶은 나 자신으로 살고 있어.”


벨리알은 까마귀처럼 가볍게 시체의 벽에서 군인들의 앞으로 도약했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만지는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다시 군인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그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아 슬퍼하는 듯한 연기를 뽐냈다. 그는 슬퍼하는 얼굴로 사령관이 있는 곳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나치는 군인들이 하나둘 시체 위를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벨리알 역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메피스토가 시체들의 위에서 한쪽 팔을 올려 들었다. 메피스토는 다른 손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하늘을 향해 올려 든 팔의 손목을 그어 찢었다. 그의 핏줄에서 쏟아지는 피는 병든 군인들에게 치유의 비처럼 흘러내렸다. 그들은 메피스토의 피를 가을의 아름다운 이슬비처럼 맞이했다. 군인들은 그들의 가렵고 찢어진 피부에 닿는 메피스토의 피에서 치유와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파리 대왕의 항체가 담긴 메피스토의 피에 군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의 상처를 씻어냈다. 가려움과 통증에서 해방된 군인들은 밝은 얼굴로 메피스토를 올려다보았다. 이미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증명했다. 메피스토는 뜨거운 지옥 불을 이용해 피를 흩뿌리는 손목의 상처를 지혈했다.


메피스토의 기적을 이미 겪은 병자들조차 놀라운 광경에 메피스토는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벨리알은 메피스토를 우러러보는 군인들과 시민들의 모습에 분노해 입술을 깨물었다.


“나의 자리를 빼앗는구나. 내가 진정한 거짓의 군주다. 그 위대한 솔로몬도 나를 제압하지는 못했어.”


사령관은 캠프 앞에 서서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벨리알에겐 여러 가지 모습의 얼굴이 있었다. 목사는 사령관에게 다가서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을 온화한 미소로 바꾸었다. 목사는 메피스토와의 대화가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듯 사령관에게 따뜻한 웃음을 전했다. 사령관 역시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놈을 회유한 것입니까? 저자는 진정 인간이 아닌가 봅니다. 혹시 저자가 진짜 메시아인 것은 아닙니까?”

“사령관도 거짓말에 다 넘어갔나 봅니다.”


사령관은 기침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저런 희한한 마술을 부리는 사기꾼의 마음을 회유한 목사님이 대단하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놈이 군인들을 치료해 주기로 한 대가는 무엇입니까?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벨리알은 협상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놓쳤다.


'그래, 메피스토가 나의 요구에 응한 것이고, 그렇다면 메피스토의 요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 절대 승낙할 수 없는 요구를 제안해야 해. 갈등만을 빚어낼 그런 제안.'


목사는 사령관을 위해 작전 캠프의 문을 열어주었다. 사령관은 메피스토의 제안이 기밀 사항이라는 목사의 뜻을 따라 캠프에 들어섰다. 목사는 자리에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계엄령을 해제하랍니다.”

“안 그래도, 사령부에서 계엄을 끝내자는 국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애초에 소통에 오류가 있었답니다. 정말 다행 아닙니까? 저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은 상황이죠.”


목사는 복잡하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메피스토는 거짓의 군주보다 한 발 앞서갔다.


“정말 그렇네요. 모든 게 너무나도 잘되었습니다.”

“그래도 안심해선 안 됩니다. 저놈의 능력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언론과 출판은 계속해서 통제될 것입니다. 정보가 새어 나가기 전에, 저 자식을 잡아드려야 합니다. 목사님이 보여주신 능력이라면, 목사님과 함께라면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어떻습니까? 저를 조금 도와주시겠습니까?”


벨리알의 눈 밑 근육은 불쾌함에 떨려 흔들렸다. 목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럽시다.”


경외와 의심, 존경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선들을 뚫고 메피스토는 저택의 문 앞, 레라의 옆에 앉았다. 메피스토는 레라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모세 역시 불안을 느끼는 듯 보였다. 메피스토는 모세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가끔은 대악마조차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메피스토는 레라에게 물었다.


“물 위를 걷고, 파리떼를 소환하고, 피를 뿌려 병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저한테 아무 할 말 없어요?”

“당신은 와인을 들고 화분을 사러 왔던 그 남자잖아요. 당신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요.”


메피스토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레라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레라와 함께 저택의 안, 잔디 위에 누웠다. 금성의 빛 그 아래에 누운 메피스토는 옆자리에 누워있는 레라에게 말했다.


“눈 감아요. 같이 꿈을 꾸는 겁니다. 춥지는 않을 거예요.”


금성 아래 두 남녀는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레라는 잠이 들 때까지 메피스토의 말대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인간은 잠이 든 후 꿈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지 못한다. 악마에게는 다른 이야기일지 모른다.


따듯한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는 레라는 이마에 닿는 메피스토의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모든 곳이 어둡고 붉었다. 침대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메피스토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레라는 창가로 향했다. 화산의 깊은 용암 속 문명을 건설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레라는 눈앞에 펼쳐진 뜨거운 지옥을 바라보았다. 지옥에 흐르는 불꽃은 창문 앞 레라의 얼굴을 밝혔다. 메피스토는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레라는 지옥의 불꽃 앞에 더욱 선명하게 빛이 났다. 레라의 표정을 읽을 수 없던 메피스토는 입을 열었다.


“저를 싫어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예요. 이곳이 저의 고향이에요. 상관없어요? 이런 곳에서 온 남자?”

“어디에서 왔는지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지.”

“무섭고, 뜨겁지 않아요?”


둘은 손을 잡고 메피스토의 저택 문을 열었다. 지옥이 두렵지 않은 듯 레라는 메피스토에게 말했다.


“정말 춥지는 않네요.”


메피스토는 웃음을 지으며 흐르는 용암 위에 자신의 코트를 벗어 덮었다. 메피스토의 코트를 밟아 용암을 지난 레라는 주변의 녹슬고 낡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15세기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과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빌딩들이 공존하는 세상. 메피스토는 걸으며 레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음은 메피스토에게 주어진 최고의 낭만이었다. 레라는 먹구름과 불꽃이 유영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메피스토는 긴 숨을 머금었다.


“이제는 저를 싫어할 두 번째 이유를 알려줄게요.”


하늘을 바라보는 레라의 맑은 눈과 하얗고 고운 얼굴을 바라본 메피스토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레라가 궁금증에 가득한 눈빛으로 메피스토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곳의 하늘이 싫어요. 어둡고, 붉고, 뜨겁죠. 천국은 이렇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들은 천국에 대한 묘사는 모두 레라 씨와 비슷했어요. 두 번째 이유는요. 이런 하늘이 아닌 천국의 하늘을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레라 씨와 모세, 가인이가 있는 인간계에 잠시 들린 거예요. 우리가 사는 도시를 혼돈으로 몰아넣으면 천국에 보내준다는 내기를 했거든요.”

“누구랑요?”


메피스토는 지옥의 하늘에 흔연히 빛나는 금성을 가리켰다.


“아버지랑요. 제가 하는 말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과 이 모든 난리가 제 탓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니요. 제 탓이에요.”

“내기에선 이기겠네요.”

“그렇죠. 어쨌든, 당신에게는 더 이상 거짓말하기 싫어서 말하는 거예요. 저를 싫어할 두 번째 이유예요.”

레라는 골목에서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붉은 염소 두 마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혼란이라는 게 꼭 나쁜 건가요?”

“네?”

“다 강해지는 과정 아니에요? 당신이 악마라는 사실은 믿어요. 이곳을 둘러봐요. 어떻게 안 믿겠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쁘다는 사실은 믿지 못하겠어요.”

“저 때문에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도시에는 군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걸요.”

“그렇게 병이든 사람들을 고쳐준 건 누구죠? 당신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만든 혼란이 아니었다면 저나 가인이는 평생 아파하며 살아갔을 거예요. 나쁜 일들은 일어나죠. 그런데 그것을 고쳐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메피스토 역시 골목에서 싸우는 염소들을 바라보았다. 메피스토는 레라의 넓은 이해심이 이해되지 않았다. 바람에 날려온 지옥의 화산재는 레라의 눈에 들어갔다. 메피스토는 그녀를 마주 보고 눈에 붙은 화산재를 떼어주었다. 그들을 지나치는 태양 폭풍이 그들을 지나가는 사이, 메피스토는 물었다.


“어떻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죠?”


“아저씨!”


모세의 당찬 목소리에 메피스토와 레라는 잠에서 깨었다. 메피스토의 꿈만 같던, 아니 꿈이었던 시간을 방해한 모세는 메피스토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저기 저 여자아이 보이시죠? 아저씨가 빨리 고쳐주세요. 발작도 하고, 머리도 아프다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뭔가가 달라요.”


모세는 저택의 문 앞에 누워있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몸을 떨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메피스토는 아이의 앞에 앉아 말없이 관찰했다. 답답한 모세는 메피스토에게 물었다.


“아저씨 연기를 내뱉어서 고쳐줘야죠.”

“지금까지 여기 있는 병자들이 겪은 병은, 인간들의 의학이라는 용어로는 뇌전증에 가까워.”

“얘는 아니에요?”


메피스토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섬망인가….


메피스토는 아이의 입에서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에 집중했다. 닫힌 입술 틈에서 나오는 소리에 메피스토는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입 앞에 귀를 갖다 댄 메피스토는 익숙한 라틴어를 들을 수 있었다. 메피스토는 아이의 이마에 엄지손가락을 붙인 채 말했다.


“아스모데우스?”


아이는 눈을 뜬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메피스토를 바라본 아이는 반가움에 메피스토에게 인사를 건넸다.


“메피스토? 여기서 뭐 하나?”


메피스토에게 인사를 건넨 아이는 긴 하품을 이어갔다. 모세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아이가 내뱉는 하품에는 메피스토가 내뱉는 불꽃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메피스토는 여자아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스모데우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내가 있는 걸 알고 온 건가?”

“사랑이 있는 곳에 고난이 있듯, 사랑이 있는 곳에 내가 있지. 참, 아버지와의 내기는 나도 이야기 들었네.”


메피스토는 급하게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자, 아스모데우스는 메피스토의 의도를 눈치챈 듯 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멈췄다. 모세는 두 악마가 반갑게 대화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혼란에 빠졌다.


'내기? 무슨 내기?'


레라는 메피스토가 모세에게 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숨겼음을 눈치챘다. 이내 아스모데우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레라를 바라본 후 미소를 지었다. 모세와 레라의 눈치를 살핀 메피스토는 아스모데우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아이의 몸에서 나가줘야겠어. 심심하면 저기 시체들 반대편에 있는 군인들의 몸에 붙던가.”

“나는 사랑이 없는 곳엔 가지 않아.”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란, 질투와 정욕이겠지.”

“이곳에서는 사랑이라 부른다네. 아무튼, 반가웠네. 메피스토. 내가 응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메피스토 주변의 사람들은 여자아이의 입에서 따뜻한 온기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여자아이는 곤히 잠이 들어 코를 골았다. 주위에서는 시민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 들린 사람도 고칠 수 있다니. 진정 메시아가 맞는구먼.’


밝아오는 새벽에 모세는 메피스토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냥 사람들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를?”

“아저씨가 악마라는 사실이요. 악마가 나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면 되잖아요.”

“내가 악마라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저들에게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고 이야기해도 나를 믿지 않을 거야. 어떤 사실들은 말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게 최선이야.”


모세는 메피스토의 이야기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메피스토는 자신이 모세에게 한 말에서 모세의 부모님과 자신의 내기에 대한 사실이 떠올렸다. 그것들 역시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 결론지은 메피스토였다. 온갖 혼란이 지나간 아침, 그들의 앞에 사령관의 부관이 찾아왔다. 그는 베레모를 벗은 후 메피스토에게 말을 꺼냈다.


“계엄령은 곧 해제될 것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여기서 사람들을 고치기만 하는 건데?”

“사령관님이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나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선생님에게 치유를 받든, 무엇을 하든 계엄령이 끝나고 나면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사령관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좋은 기회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여기에 다 있어.”


젊은 장교는 안절부절못했다.


“남자 대 남자로, 정말로 잠시 말씀만 나누고 싶다, 하셨습니다. 부탁입니다. 어차피 이곳 상황은 다 끝날 건데, 대화로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고민하는 메피스토에게 말했다.


“아저씨. 가지 마요. 저 사람들 말 들어줄 필요도 없잖아요?”


메피스토는 턱수염을 긁으며 고민에 빠졌다. 메피스토는 장교의 모자를 뺏어 모세의 머리에 씌우며 장난을 쳤다.


“잠시 갔다 오마.”


레라와 모세, 가인은 걱정이 담긴 눈으로 사령관이 있는 캠프로 걸어가는 메피스토와 부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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