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찾기 프로젝트
아주 먼 옛날 인간은 힌두교의 다른 신들과 같이 신성을 갖고 있었다. 그 신성 덕분에 인간은 자유롭고 강력했다. 하지만 인간은 신성을 남용하고 그 교만은 겉잡을 수 없게된다.
인간의 개나대는 모습을 참을 수 없던 브라만은 모든 신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신들은 인간의 신성을 회수하고 인간의 신성 남용을 멈출 수 있도록 신성을 숨길 장소를 몰색했다.
신들은 각자 의견을 내었다.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숨깁시다."-인간이 얼마나 교만하고 경솔한데 산 꼭대기에 못 오를까.
"가장 깊은 바닷속에 숨깁시다."-인간은 음침한 것들이니, 가장 깊은 심해까지 잠수할 것이다.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에 숨깁시다."-일론 머스크가 로켓쏴서 다른 행성간다.
그렇게 브라만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모두 깊은 고민에 빠진 그때,
브라만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다.
인간은 눈으로 바깥만을 보고, 귀로 바깥만의 세상을 듣고, 손으로 바깥만의 세상을 만진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존재이니,
신성을 인간의 내면에 숨기자.
위의 이야기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혹은 '너 자신을 알라'등의 격언과도 이어진다.
어느날 내가
시력을 잃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청력을 잃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으며
팔 다리를 잃어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후각을 잃어 어떤 냄새도 맡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해보자,
게다가 감각을 잃기 전의 기억들 모두 잊는다면,
그때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고?
나는 누구인가?
아마도 진정한 자아란 그저 관찰자에 불과할지 몰루.
초등학교 때 교회 수련회를 갔다.
교회 선생님은 루시퍼의 얘기를 해주셨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탐내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생각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만 했다고 지옥가고 너무하네.'
뭔가 불쌍했다.
우리가 아는 '루시퍼'의 이미지는 존 밀튼의 실낙원과 단테의 신곡 등 수 많은 미디어를 통해 재탄생된 모습.
그러나 성경에 루시퍼라는 단어는 단 한번만 등장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사야 14장 12절
빛을 가져오는 자, 라틴어로 '루치페르'로 번역이 되었다. 즉 원래 이름은 루시퍼도 아니다.
그런데 브라만과 아트만, 참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루시퍼 얘기를 하는가?
이사야 14장 12절의 루시퍼, 히브리어로 헬렐은 우리가 아는 악마나 타락천사가 아닌
당시 발달한 문명이었던 바빌론의 왕을 말하는 것이라는 게 정설.
발달한 문명..... 인간의 감각으로 만든 세상...... 타락한 천사....
뭔가.... 뭔가임...
성경에서 루시퍼는 계명성, 샛별 즉 금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지구는 23.469도 기울어서 회전한다.
이런 기울기에서 지구의 가장 북극권 66.6도(요한 계시록의 666이 맞다.)에서는 특별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12월 21일부터 12월 25일까지 해를 완전히 볼 수 없는 어둠이 계속된다.
태양이 없는 하늘에 가장 빛나는 행성은 금성이다.
(12월 25일과 토성의 신, 크리스마스와 사트르누스 축제 이야기는 나중에 심심하면 씀)
빛 없이 무지몽매무매몽지 살아가는 인간들을 가엾이 여겨 계몽이란 불을 건넨,
감히 가장 빛나야할 태양을 대신해 빛을 내는 금성.
이사야 14장 12절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리 신성이 내면에 있다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럴려면 빛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빛을 제공한 죄를 달게 받은 것은 루시퍼, 금성뿐만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프로메테우스.
그는 시베리아의 금성처럼 인간을 불쌍하게 여긴다.
그는 신들의 반대에도 인간들에게 불, 루시퍼의 계몽을 건넨다.
루시퍼가 지옥으로 떨어졌듯이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 때론 까마귀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내면의 신성을 찾아야 할지 독수리에게 장기 기증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구 역사상 지혜 GOAT라면 어떻게 생각 했을까?
외경이지만 예수님 어록집이라고 할 수 있는 도마복음에서 답을 찾아보자.(위의 그림 아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 '보라, 하늘의 왕국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갈 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다에 있다'고 말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갈 것이다.
오히려 그 왕국은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예수님은 브라만이 그랬듯이 천국이라는 신성이 우리의 내면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천국이라는 신성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관계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프로메테우스와 루시퍼의 빛으로 물질적인 부분만 쫓으며 살면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현실에 너무 살지 말되, 현실에 너무 안 살지도 말아라(?)
라고 하셨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에게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현실에 너무 살지 말되.-
"너희가 세상의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인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히는 데는 지혜로운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느니라."
-현실에 너무 안 살지도 말아라.-
평소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며 '아 볼거 존나게 없네.'라고 작품들을 넘길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작품이 추천에 뜨는 매 순간,
나는 속으로 'x같이'라고 답한다.
물질적 욕망과 내면의 신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완벽히 줄타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히 초인이라 할 수 있겠다.
초인?
이거 완전 위버멘쉬잖아.
도마복음의 2장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는 과정에는 숨겨진 공통점이 있다.
니체가 말하는 인간의 3가지 정신 상태.
1. 낙타 (Camel)
낙타는 인내라는 짐을 지는 단계.
이 단계의 인간은 '너는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와 전통적인 가치에 이끌려 다닌다.
낙타는 사막에서 기존의 사회 관념과 완성된 가치관들에 순응하고 복종한다.
<도마복음 2장>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 사자 (Lion)
사자는 스스로 정한 가치와 자유를 쟁취하는 단계.
낙타가 짊어졌던 짐을 내려 놓는다. '너는 ~해야 한다'는 '나는 ~할것이다.'로 변한다.
기존의 가치관, 관념들과 갈등을 빚고 승리한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사자 본인도 알지 못한다.
<도마복음 2장>
2 찾았을 때 그는 괴로워할 것이다.
3 괴로워할 때 그는 경이로워할 것이니.
3. 어린아이 (Child)
어린아이는 규칙과 갈등을 넘어서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하는 단계.
사자가 싸움으로 얻어낸 자유의 세계에서 순수한 창조를 빚어냄.
자유로워지고 싶은 주체가 없어, 진정한 자유를 얻은 초인의 상태. 새로운 시작, 긍정, 순수.
<도마복음 2장>
4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리라."
오늘 하루종일 누워서 핸드폰 해야징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