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뜨거운 태양. 여름. 도시. 14 : 00. 흩뿌려진 피, 비명, 소란, 사이렌, 그리고 공포.


그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스팔트는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의 어깨를 밀치며 도망치는 사람들. 비명 속 흔들리는 나의 몸과 시선. 나는 도시에서 괴물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초점 잃은 눈동자를 갖은 남자. 그의 피 묻은 손에 들린 칼날은 빛을 반사해 날카로운 섬광이 되었다. 대낮 도시의 칼부림,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음은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소리쳤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타고 흘러온 피는 나의 신발을 적셨다.


그는 나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굳은 나의 몸을 묶는 밧줄이 되었다. 며칠이나 잠을 자지 않은 듯, 인간성을 잃은 눈, 그 아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칼을 든 광인은 나에게 부패한 웃음을 지었다. 공포에 쏟아지려는 구역질을 참고 있었다. 나의 시야는 초점을 잃어 세상을 흔들었다. 아랫배와 허벅지의 근육에 힘이 풀렸다. 숨소리라도 낸다면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들까, 겁이 났다. 얕은 숨소리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켰다.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뛰어다니며 눈에 보이는 모든 육체에 칼을 꽂았다. 눈에 보이는 모두를 죽였다. 피를 밟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은 축축했다. 피 묻은 구멍 난 양말은 나의 죽음을 향해 발자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의 눈앞에 거울처럼 서 있던 그 순간에도 광인은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의 앞에선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피 묻은 은빛 흉기를 쥐고 있는 광인의 손. 도로 위 트럭의 불빛을 본 노루처럼 나는 멈춰 있었다. 남자는 나의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갔다. 나를 지날 때 그는 나의 귀에 속삭였다. 나와 그의 어깨가 부딪힌 그때, 분명히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했다. 잊으려고 하지만, 미친 듯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다.


그가 나를 지나치고 들리는 등 뒤 경찰들의 고함과 공포탄의 소리는 나에게 조용하기만 했다. 풀린 다리로 뒤를 돌아 그를 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 수갑이 채워지는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만족스러워하는 미소와 슬픈 눈빛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시선에 경찰들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의 뜨거운 태양은 빌딩들의 창에 반사되었다. 반사된 태양은 도시에 불을 지폈다. 기억은 한 장의 사진처럼 불타올랐다.


끓어가는 아스팔트 위에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육신들, 무릎 꿇고 체포되는 남자,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경찰들, 그리고 나. 경찰이 그의 머리를 숙여 차에 태운 후에야 눈물이 흘렀다. 그제야 손끝이 움직였다.


마치 그가 그랬듯이 웃음이 났다. 사이렌은 시끄러웠다. 바닥에 고인 피는 아름답지 못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명과 소음은 추하고 시끄러웠다. 피바다가 된 도시에 서 있던 내가 했던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현관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얼마큼의 시간이 흘러야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급하게 바지를 입고 현관 앞에 섰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다. 아침인지, 새벽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 일이 있던 이후 나는 창문과 커튼을 닫아 도시의 빛으로부터 숨어 살아왔다. 현관 밖에서 들리는 남자의 소리. 목사님의 목소리였다.


“집에 있니?”


힘들게 답을 하기보단 3단의 잠금을 해제해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인간. 반가움이란 감정을 잊어 버렸다. 목사님은 어두운 원룸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커튼 틈으로 몰래 들어온 빛은 먼지를 비추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현관 옆의 냉장고를 열어 고개를 숙였다. 온갖 인스턴트 음료와 눈을 맞췄다. 예순이 다 되어가는 목사님이었지만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음료는 콜라뿐이었다. 콜라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지난 후 나는 허무하게 자리에 앉아 콜라를 들이켰다. 목사님은 목을 다듬으려는 듯 헛기침하신 후 말씀하셨다.


“그때, 그 일이 있고 나서 모두가 걱정이 많아.”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요? 다친 곳도 없어요.”


목사님이 제발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그에게 들키지 않도록 긴 심호흡을 내쉬었다. 심장이 울리는 소리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얕은 호흡만으로 나를 붙잡았다. 공황에 대응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목사님은 눈치채셨을까?


“교회에 나온지도 오래되었고, 친구들하고 연락도 거의 않는다며?”


“아니요. 메신저로 가끔 하는데요?”


“사실 이야기 들었어. 아버지가 귀농해서 사시던 곳으로 내려간다며? 너처럼 젊은 남자애가 그런 한적한 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니?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려고?”


“아버지 돌아가신 지 꽤 되었어요. 빈집이에요.”


목사님은 머쓱한 듯 검은 음료가 담긴 컵을 내려다보셨다. 목사님이 불편해하시지 않도록 괜찮은 척해야 했다.


“번역 일 하면서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공지능 때문에 업계가 어렵다고 하던데….”


그의 이야기에 헛웃음이 났다. 하나님을 모시는 중년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최신 기술 이야기. 슬슬 그가 돌아갔으면 하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목사님 역시 내가 불편해하는 걸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집 앞에서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곳을 떠난다고 그날의 기억에서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 인도에는 그날 생긴 피도 아직 안 지워졌어요.”


목소리의 떨림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 그냥, 나로서는 그렇다고 이렇게 젊고 꿈 많을 나이의 네가 시골로 내려가서 살겠다는 게…. 나는 단지 네가 정말로 확신을 뒀는지, 그리고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나를 위한다는 이야기에 콧바람이 나왔다. 내가 교회 사람들이 필요할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그래, 인간들이 바쁠 수 있지. 신은 어디에 있었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워진 나의 컵과 콜라가 남은 목사님의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컵을 헹구며 물었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데요?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데요?”


“주님의 집으로 가야지. 주님이 계신 곳으로.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어. 나의 큰형님이 베트남전에 계셨는데 말이야….”


헛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큰형이 베트남전에 계셨는데 뭐?


“목사님 바쁘지 않으세요?”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무심히 설거지를 이어갔다.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테이블 위에 무엇을 내려놓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나도 새로운 교회로 떠나려는데, 혹시 네가 나를 따라올까 물어보고 싶었어. 내가 항상 기도하마. 어디를 가든, 주님을 꼭 붙들고 살길 바란다.”


화가 섞인 숨으로 컵을 강하게 닦던 나는 현관이 닫히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큰형이 베트남전에 있었는데 뭐?


콜라가 담겼던 컵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컵이 깨져 싱크대에 파편이 남았을 때, 더 이상 컵을 닦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목사님이 앉아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성경이 놓여 있었다. 목사님께서 오해하신 모양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나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의 믿음은 오히려 강해졌다.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옷을 담던 캐리어에 목사님이 건네준 성경을 던져넣고 가방을 잠갔다. 다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를 찾는 연락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무도 저를 찾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하나님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진동이 울릴 일 없는 핸드폰으로 뉴스의 사회면을 둘러본다. 창밖의 움직이는 사회를 보는 것이 아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사회의 단편들을 넘길 뿐이다.


‘도심 아파트 대낮의 살인, 30대 사망.’ ‘생활고 시달리던 50대 남성 이웃 살해 후 자수.’ ‘부부 다툼 끝에 아내 살해한 남편 구속.’


살인은 매일 일어난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세상을 돌려보며 다시금 뛰기 시작한 심장을 느낀다. 왜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커튼 틈 사이로 도시를 바라봤다. 얼마 전의 일들은 이제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살인사건 소식도 이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먼 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


서랍을 열어 어둠 속에서 진정제를 찾아낸다. 한 알, 두 알을 꺼내 콜라와 함께 삼킨 뒤 다시 침대에 눕는다. 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지만, 내가 눕는 순간 침대 위 먼지들이 흩날렸을 것이다.


시골에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그림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 사는 작은 마을. 자연 속에 살고, 자연 속에 잠들고 싶다.


언젠가 그곳에서 핸드폰을 열어 도시의 살인사건 뉴스를 읽어 내려갈 때, 내 가슴이 더는 뛰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오히려 설렜으면 좋겠다. 마침내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진심으로 기뻐했으면 한다.


걱정이 밀려든다. 옆으로 누워 군대 시절을 떠올렸다. 아마 그때가 나와 시골이란 장소가 가장 가까웠던 시절일 것이다. 간부 숙소를 나와서 논과 밭뿐인 길을 걷던 날의 햇볕이 생생하다. 좋은 냄새도, 흥미로운 구경거리도 없었다. 끔찍한 기억은 그곳에도 두고 왔다.



평범한 하루, 소대 병사들과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섰다. 풀만 무성하던 산자락, 아름답던 자연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스무 살 남자아이의 발목이 산산이 날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햇볕, 풀, 나무, 솟구치는 피와 폭음이 뒤섞인 그 순간, 나는 자각했다. 나는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고. 다리를 잃은 그 아이와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나는 군에 남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충격에 시달리며 숨어 살지는 않았다. 왜일까? 내가 군인 이었기에, 아니면 그 아이가 군인이었기 때문일까? 군인의 발목이 날아가는 일은 일상이지만, 모두가 매일 걷는 도시가 피바다로 변하는 건 결코 일상이 아니니까?



나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내 생각은 언제나 끔찍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내일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나쁜 기억과 나쁜 생각은 모두 이곳에 두고 떠날 것이다. 침대 위에서 보낸 하루, 몇 알의 진정제가 잠을 불러온다. 기도는 잊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새 출발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의 새로운 내일에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속에서 심장은 천천히 고요를 찾고, 침대 위의 나는 무게를 잊는다. 눈꺼풀이 내려앉고, 수면의 달콤한 쾌락이 다가온다.


아침인지 아직 밤인지, 커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몇 시간을 잤는지, 어둠 속에 가려진 시계도 침묵할 뿐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는 순간, 떠날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마지막이니까.’


나는 조심스레 커튼을 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오랜만에 집안을 가득 채우며 뛰어놀았다. 떠나는 길이 상쾌하기만을 바랐다.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물이 몸을 감싸자,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생의 두 번째 막이라니, 얼마나 낯설고 설레는 말인지. 사용하던 샴푸와 칫솔, 치약을 무심하게 가방 속에 던져 넣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헤어드라이어마저도 가방에 집어넣었다.


긴 시간을 달릴 준비를 마쳤다.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멋을 담은 흰옷을 입었다. 가벼운 가방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현관 앞에 섰다. 굳게 문을 잠그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차에 짐을 던지고 운전석에 앉았다. 새로운 인생에 시동을 걸자 미소와 함께 차는 움직였다.


나의 검은 차는 도시의 좁은 골목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활짝 펼쳐진 도로 위로 쏟아지는 햇빛. 차의 창문이란 장벽을 넘어 도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도시의 이야기는 도시에 남아야 한다. 그러나 인도에 남은 핏자국은, 이 도시가 가진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거리에 남은 불안의 흔적들은 내 마음속에도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발걸음을 재촉하며, 누구도 내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저마다 무거운 비밀을 품은 듯, 무심한 얼굴들이 차창에 희미하게 번졌다. 이렇게 좁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과 차를 밀어 넣은 존재는 누구일까? 대낮의 강남대로는 꼼짝없이 서 있는 차들로 뒤덮였다. 이렇게 길게 늘어선 행렬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내심과 충분한 휘발유는 나를 톨게이트까지 이끌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도시에게 받는 인사. 나는 별로 안녕하지 못했지만, 톨게이트를 지나쳤다.


창밖의 풍경은 점점 푸른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풀과 흙으로 바뀌고, 고요한 나무들이 도로 옆을 수놓았다. 살짝 열어둔 창문 틈으로 여름 바람이 스며들었다. 내 머리칼이 흔들리고, 바깥의 나뭇잎들 역시 그 흔들림에 응답했다. 해가 떠오른 먼 산자락은 침묵을 지키는 듯 무거웠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도로는 거칠어졌다. 도시의 소란과 소음은 점차 멀어지고, 그 빈자리를 새소리와 벌레 소리가 채웠다. 길가에 드문드문 서 있는 농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깃든 낡은 담벼락, 삐걱거리는 대문, 정겨운 흙길. 그 모든 풍경이 도시에서 멀어진 나를 환영했다.


경운기와 흙밭, 그 앞에서 나의 검은 차는 마치 ‘외지인’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듯했다.

운전석에 오래 앉아 엉덩이가 저려올 즈음, 마침내 아버지가 계셨던 시골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석양이 담긴 골목길은 구불구불했고, 아담한 집들은 꽃과 풀로 둘러싸여 있었다. 흙길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조용히 혀를 내놓고 누워 있었다.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레 운전하는 나를 향해, 노인들은 경계하듯 시선을 보냈다. 나는 창문을 완전히 내리고, 공기 속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맑고 무겁지 않은 나무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무의 향을 맡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것들은 늘 이렇게 낯설고도 달콤하다.


네비게이션에 적힌 주소를 따라 도착한 곳. 교회 옆에 자리한 작은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흙에 닿은 나의 두 발, 이제야 사람 사는 곳에 왔다는 느낌. 기지개를 켰다. 낯선 듯 익숙한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숨을 고르며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아버지가 살던 집은, 세련되거나 낡기만 한 집은 아니었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오래 자란 감나무가 그늘을 드리웠다. 낮은 돌담이 집을 부드럽게 감싸고, 마당 한쪽에 놓인 낡은 평상이 시간을 품고 있었다. 낯설지만 온기가 스며든 그곳에서, 나는 집이라는 단어를 되새겼다. 아버지의 부재가 무색하게 집안은 여전히 깨끗했다. 오히려 그 깨끗함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동네 사람들이 다녀간 걸까?’


삐걱대는 미닫이문을 잠그고, 나는 비어있는 거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주방에서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꽤 고급스러운 장롱 옆에 짐을 던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롱을 열어보니, 아버지가 쓰시던 침구류가 그대로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아버지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아버지가 귀농하실 때쯤, 눈치챈 사실이 있다.


‘아버지는 나를 피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누웠던 이불을 펴고 그 자리에 누웠다. 방의 스위치를 켜보니 전기가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가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쾌감에 스위치를 끄고, 이불에 몸을 던졌다. 옛날식 솜이불은 아늑했다. 긴 시간의 운전에 이른 저녁임에도 잠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