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의식을 갖기 위해 만든 나.

거울, 눈, 우주, 영혼, 그리고... 어...

by 박규동

Alas, how terrible is wisdom when it brings no profit to the wise.



가끔 시계를 본다.


3시 22분이면 아무렇지도 않다.


5시 15분도, 9시 8분도, 6시 30분도, 전부 잊고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4시 44분을 보면 왠지 안 좋은 일도 일어날 것 같고, 그날의 기억에 남게 된다.


무의식에 444라는 숫자는 나쁘다고 박혀 있으니까.


지구에 태어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능을 갖게 된 순간부터, 무의식의 내 인생 점거가 시작된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가서 오늘의 내가 있다.


오른쪽으로 갔다면 버스에 치었을지도.


그러면 왜 왼쪽으로 갔을까?


언젠가 왼쪽에 대한 영화를 봐서? 아니면 왼쪽에 관한 음악을 들어서?


4시가 아닌 3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3시에 출발해서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했다.


4시에 출발했다면 시험에 늦어서 다른 전공을 갖고 다른 분야를 전공했겠지.


그날 아침 TV에 3이라는 숫자가 나와서? 친구가 4라는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


무의식의 의식화.


완전한 무의식의 의식화를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게 된다.


무의식의 의식화, 예로는 자각몽을 들 수 있다.


꿈을 꾼다. 내가 꿈을 꾸고 있음을 자각해, 나의 모든 환경을 내가 결정한다.


그래도, 그럴 필요 없다.


호접지몽, 나비에겐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게 내버려 두는 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정할 필요도, 계획대로 흘러갈 필요도 없다.


거대한 바다에 나뭇잎 하나 두고, 알아서 흘러가라고 해라.


그것이 최초의 목적이고, 최적의 기능이다.


근데...


왜?


나뭇잎을 누가 바다에 왜 둔 거지?


인간은 별과 같은 성질로 이루어졌다.


태양은 수소를 만드는 공장 아닌가? 인간은 외계인인가?


탄소 기반 생명체, 666, 6개의 양성자, 6개의 중성자, 6개의 전자.


신성은 내면에, 루시퍼의 빛은 바깥 짐승의 숫자에.


우주는 나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 트루먼쇼를 봐서? 아니면 코스모스를 바라봐서?


결국 나는 우주를 바라본다, 이건 절대 피할 수 없다.


우주를 바라보라고 만들어졌으니까.


우주가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우주의 거울로 만들어졌을 뿐이니까.


우주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으니까, 인간과 같이.


빅뱅 이후 변한 적 없는 우주 배경 복사 2.7k 에너지.


어떤 라디오는 잡음으로 우주의 거울이 되어주고,


내 육체라는 송신기는 나의 시각이라는 거울로 우주를 비쳐준다.


우주를 위해 거울로, 한편의 시각으로 태어났으니 모든 인간의 눈이 우주와 같이 생겼음은 어쩔 수 없다.


눈에는 바라보는 것이 담기기 마련....


어쩌면 다음 생에는 우주를 비추는 거울, 이 미물보단 대단한 무언가로 태어날지도,


아니면 에너지로 계속 우주에 흘러갈지도, 2.7K를 타고.


잠시 육체라는 송신기에 갇혔으니, 재즈처럼.


스윙은 나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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