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우물도
빗물이 있어야 마르지 않는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읽고

by 씨알

뇌과학에는 꽤 오래된 역설이 하나 있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낯선 것을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뇌 안에서 이 두 가지 충동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바로 이 역설에서 출발한다.


처음 이 대목을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새로움을 원하면서 낯섦을 두려워하는 존재. 그것이 뇌의 본성이라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모순들 — 변하고 싶다면서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 배우고 싶다면서 가르치려 드는 태도 — 이 모두 뇌가 설계된 방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문제는 의지가 아니다. 뇌를 이해하는 것이다.


뇌는 멍 때릴 때 일한다

정재승 교수는 이 책에서 신경과학이 발견한 다소 당혹스러운 사실 하나를 소개한다. 뇌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순간은 집중할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라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이 상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 부른다. 과제를 수행할 때 오히려 조용해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 되레 분주해지는 뇌의 어떤 회로. 이 회로가 바로 창의성의 온상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쉬어야 창의적이 된다"는 자기계발서적 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건 훨씬 근본적인 무엇이다. 우리의 뇌는 구조적으로, 태생적으로 '연결'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뭔가를 하려 할 때보다, 의식의 검열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샤워 중에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험, 잠들기 직전 머릿속에서 두 개의 전혀 다른 개념이 갑자기 연결되는 느낌 —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뇌가 설계된 대로 작동한 결과였다.


창의성은 '연결'이다 — 그것도 불편한 연결

정재승 교수는 창의성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에 연결되지 않았던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진정한 연결은 언제나 '낯선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뇌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고 느낀다. 뇌는 예측 가능한 세계를 선호하도록 진화해왔고, 낯선 자극 앞에서 본능적으로 경계 신호를 울린다. 이것은 수백만 년의 생존 전략이 뇌에 각인된 결과다. 문제는, 오래되고 검증된 그 본능이 지금 이 시대에는 때로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는 점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수록 — 한 조직, 한 방식, 한 언어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수록 — 뇌는 점점 더 정교하게 그 세계에 최적화된다. 그것은 분명한 강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의 자극이 들어올 여백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뇌는 효율을 위해 낯선 것을 걸러내고, 익숙한 회로만을 반복해서 강화한다. 그렇게 깊어진 전문성이 어느 순간 낯선 시각을 차단하는 필터가 되어버린다.


정재승 교수가 책에서 묘사하는 창의적인 뇌는 낯섦에 둔감한 뇌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낯선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그 불편함 안으로 기꺼이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뇌다. 불편함을 닫아버리는 순간, 연결도 함께 닫힌다.


감정은 이성의 방해꾼이 아니다

의사결정에 관한 장에서 정재승 교수는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를 소개한다.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의 이야기다. 흥미롭게도 이 환자들은 IQ나 논리적 추론 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적인 결정조차 내리지 못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몇 시간이 걸렸다.


이 연구가 뒤집어 놓은 통념은 하나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흐린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실제로는 감정이 없으면 이성도 작동하지 않는다. 감정은 이성의 방해꾼이 아니라, 이성이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연료였던 것이다.


이것은 낯섦과 익숙함의 이야기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낯선 것 앞에서 본능적으로 마음이 닫히는 것, 다른 방식과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 앞에서 미묘하게 방어적이 되는 것 — 모두 감정의 작용이다. 그런데 그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이성이 제대로 읽어낼 때, 비로소 좋은 판단이 시작된다. "나는 지금 이 낯섦이 불편하다. 그런데 왜 불편한가? 내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거기 있기 때문인가?" — 이렇게 자문하는 순간, 감정과 이성은 비로소 협력하기 시작한다.


불편함은 회피해야 할 신호가 아니다. 뇌가 새로운 연결을 시작하려 한다는 신호다.


우물 밖은 위협이 아니라 재료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처음의 역설로 다시 돌아갔다. 새로움을 갈망하면서 낯섦을 두려워하는 뇌. 이 역설은 해소되지 않는다. 뇌는 평생 이 긴장 안에서 산다. 다만 정재승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 그 긴장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 긴장을 자각하는 것 — 그것이 시작이라는 것.


깊이는 한 곳에 오래 머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는 홀로 빛나지 않는다. 낯선 것과 부딪힐 때,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자극이 들어올 때, 비로소 그 깊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깊은 우물도 바깥의 빗물이 있어야 마르지 않듯이.


《열두 발자국》은 뇌과학 교양서이지만, 읽고 나면 자신이 지금 어떤 뇌로 살고 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정재승 교수의 강점은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발견한 인간의 본질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정직하게 연결하는 데 있다. 그 연결의 순간들이, 이 책 곳곳에 열두 개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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