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곳에서 사는 곳으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으로 다시 생각하는 고객 중심 경영

by 씨알

1. 매장(賣場)인가, 매장(買場)인가

스타트업을 대표를 만나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대부분은 막힘없이 대답한다. 타깃 연령대, 소득 수준, 관심사. 페르소나까지 만들어 온 팀도 있다. 그런데 다음 질문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 고객의 입장에서, 지금 당신의 제품이 놓여 있는 곳은 '파는 장소'입니까, '사는 장소'입니까?"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자본론』의 첫머리에서 이 구분을 정확히 짚는다.

"상품을 주고받는 장소를 '賣場(매장)'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판매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표현인데도 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모릅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은 '賣場(매장)'이 아니라 '買場(매장)'이 되어야 하겠지요."

한자가 다르다. '팔 매(賣)'와 '살 매(買)'. 발음은 같지만 방향이 정반대다.


마스다는 TSUTAYA 1,400여 매장, T포인트 회원 5,000만 명이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의 출발점에 놓인 감각이었다.


2. 세계 최초의 공허함

스타트업 피칭을 들을 때 자주 만나는 표현이 있다. "세계 최초", "국내 유일", "전례 없는". IR 덱 세 번째 슬라이드쯤에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다.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로서 이해는 하지만, 마스다의 진단을 읽으면 그 문구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는 문구를 거의 믿지 않는다. 대체로 그 말이 나타내는 것은 상품을 판매하는 쪽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 발 더 나간다.

"'세계 최초의 서비스'라는 판촉 문구의 배후에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라는 변명이 감춰져 있는 경우가 적잖다."


이것은 내가 멘토링 현장에서 말을 바꿔가며 반복해 온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계 최초'가 아니라 '고객 가치 최대화'를 지향하라. 마스다는 CCC 사원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 최초'는 대부분 회의실에서 탄생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회의실 의자에 앉아 "뭔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기획은 형해화된다. 현장에서, 고객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서, 고객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때 힘 있는 기획이 나온다.


이것을 읽으며 떠오른 멘토링했던 한 팀이었다. 기술적으로 인상적인 제품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기술이 해결하는 문제가 고객의 우선순위에서 몇 번째인지를 물었을 때 답하지 못했다. 나름 세계 최초의 기술이었지만, 고객에게는 열 번째 관심사였다. '가장 우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오판한 것이다.


3. 소비 사회의 세 단계,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이 서 있는 곳

마스다가 제시하는 소비 사회 3단계 모델은 단순하지만 진단력이 강하다.

퍼스트 스테이지 — 물건이 부족한 시대. 용도만 충족하면 무엇이든 팔린다. 유리잔은 액체를 담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세컨드 스테이지 — 상품이 넘치는 시대. 선택을 위한 장소, 즉 플랫폼이 필요하다.

서드 스테이지 — 플랫폼마저 넘치는 시대. 단순히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없다.


마스다의 질문은 이것이다. 서드 스테이지에서 고객 가치를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주는 사람. 그것이 서드 스테이지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객 가치를 낳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 주는 자원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이 프레임을 대입하면 흥미로운 풍경이 보인다.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은 플랫폼을 만든다. 매칭 플랫폼, 커머스 플랫폼, 정보 플랫폼. 세컨드 스테이지의 문법으로 서드 스테이지의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미 플랫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또 하나의 플랫폼을 내놓는다. 차별화 전략은 대부분 "우리 플랫폼이 더 편리합니다"에 머문다.


마스다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고객에게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가?


4. 디자인은 부가 가치가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도발적인 선언은 이것이다.

"모든 기업은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기업은 앞으로의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여기서 '디자인'은 시각적 심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스다는 디자인을 '제안의 가시화'로 정의한다.

"디자인은 가시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여 고객 앞에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결국 '제안'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흔한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상품의 디자인을 '부가' 가치라고 포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이다. 부가 가치는 간단히 말하면 '덤'이다. 하지만 이제 상품의 디자인은 결코 덤에 비유할 수 없는 요소로서 본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본질적 가치다."


마스다는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온다. 어떤 물건에 성질을 부여하는 '형상(形相)'과 그 물건의 소재인 '질료(質料)'는 분리될 수 없다. 기능과 디자인은 상품의 불가분한 두 요소다. 디자인을 '덤'이라 여기는 것은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이다.


이 통찰은 스타트업에게도, 대기업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서비스의 UX가 부가 가치인가, 본질적 가치인가. 매장의 동선이 덤인가, 상품 그 자체인가. 고객 응대의 톤이 부수적인 것인가, 브랜드의 핵심인가.


5. 서점은 왜 안 되는가 — 가장 역설적인 진단

마스다의 서점 이노베이션 이야기는 이 책의 심장부다. 그 진단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처음 읽으면 말장난처럼 들린다. 서점이 책을 팔아서 안 된다니. 그러나 마스다의 논리를 따라가면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이다.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서적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이다. 따라서 그 서적에 쓰여 있는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서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서점의 위기'라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기존 서점의 진열 방식을 떠올려 보면 이 진단이 체감된다. 잡지, 단행본, 문고본, 출판사별 분류.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여행 가이드북 코너, 프랑스 특집 잡지가 있을 수도 있는 신간 매대, 유럽 배경 소설이 꽂힌 문고본 서가, 문화 해설서가 놓인 신서 서가를 따로따로 돌아다녀야 한다.


마스다는 이것이 유통하는 쪽의 논리라고 지적한다. 고객의 삶이 아니라 공급 사슬의 편의에 따라 매장이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CCC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에서 이것을 뒤집었다. 여행, 음식, 인문, 디자인, 자동차 — 라이프 스타일의 장르별로 공간을 재편한 것이다.


이 원리를 스타트업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당신의 서비스는 '기능별'로 구성되어 있는가, '고객의 삶'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가? 대부분의 앱이 기능 메뉴로 시작한다. 제작자의 논리대로 설계된 것이다. 고객의 하루, 고객의 감정, 고객의 맥락에서 출발하는 설계는 드물다.


마스다가 "서점의 이노베이션"이라 부른 것의 본질은 단순하다. 공급자의 분류 체계를 버리고, 고객의 삶에 따라 재배치하라.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단순한 변혁조차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통에서의 습관은 이처럼 강하게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손대기 어렵다. 강물 속에 계속 몸을 담그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흐름에 익숙해져 상류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살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게 되어 버린다."


『자본론』의 언어를 빌리면, 생산력이 증대해도 생산관계는 고정되기 쉽다. 고착된 생산관계는 어느 순간 자유를 저해하는 '질곡(桎梏)'이 된다. 서점의 진열 방식이 그랬다. 도서관의 십진분류법이 그랬다.


6.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마스다는 이 고착의 해법도 단순하게 제시한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둔 사람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의류 업체에 입사했다. 서적이나 음악이나 영상 유통과는 무관한 경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음악·서적을 삼위일체로 취급하는 MPS(멀티 패키지 스토어)라는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스스로 분석한다.


CCC 내부에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한다.

"CCC에서는 한 가지 기획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일부러 그 분야의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내가 시니어 액셀러레이터 양성과정을 설계하면서 품고 있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시니어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경험'일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다른 산업에서 온 시선'이 아닐까. 전혀 다른 업종에서 체득한 문법으로 스타트업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아웃사이더의 힘이다. 인사이더의 관성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웃사이더에게는 즉시 보일 수 있다.


7. 지적자본이란 무엇인가

제목에 담긴 핵심 개념이다. 마스다는 명쾌하게 정의한다.

"지금까지 기업을 성립시키는 기반은 재무자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제안'을 창출해 낼 수 없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지적자본'이다. 지적자본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그 회사의 사활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것을 사람과 연결시킨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접객 담당자(Concierge)들 이야기다. 요리 코너에는 유명 출판사의 전직 편집장이, 여행 코너에는 20권 이상의 가이드북을 낸 저널리스트가, 인문·문학 코너에는 일류 작가들의 신뢰를 얻은 카리스마 서점 직원이 배치됐다.


마스다가 이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내가 사장이고 그들이 사원이라고 해서, 나는 자본가이고 그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야말로 확실한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들과 나는 직렬 관계가 아니라 병렬로 놓인 관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 구상 중인 Fractional Executives 모델의 철학적 근거를 만난 느낌이었다. 시니어 전문가는 '고용되는 노동력'이라기 보다는 자기 안에 축적된 지적자본을 보유한 자본가라는 생각. 기업이 그들과 일하는 방식은 고용이 아니라 협업이어야 한다. 직렬이 아니라 병렬이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지적자본 시대의 구조적 요청이다.


마스다는 이 접객 담당자들을 어떻게 모았는가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그런 사람들은 보수나 대우라는 외적 조건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외적 조건은 당연히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전제 위에 그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열쇠다."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념의 구심력이다. 이것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최고의 액셀러레이터에게는 미션도 중요한 유인 요소가 된다.


8. 보고-연락-상담의 함정

마스다는 CCC에서 사원들에게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일본 기업문화에서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발언이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날카롭다.

"'보고-연락-상담'은 일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은 효과적인 기획을 낳는 것이지만 어느 틈엔가 그것이 역전되어 버린다. '보고-연락-상담'을 잘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원은 정말 많다. 기획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수단과 목적의 전도. 이 구조를 마스다는 더 근본적인 차원까지 밀고 간다.

"사람이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이 경우, 행복이 목적이고 금전은 수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착각해 버린다."


왜 수단이 목적이 되는가? 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이유는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간단히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금전 쪽으로 목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이 진단은 스타트업에도 적용된다. 매출, DAU, 펀딩 규모 — 측정 가능한 수치가 목적이 되는 순간, 고객 가치라는 본래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린다. KPI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전도되는 현상은 거의 모든 조직에서 관찰된다. 마스다는 그 뿌리를 정확하게 짚는다. 본질적 질문은 어렵고, 측정 가능한 대리지표는 쉽다. 그래서 대리지표가 목적을 잠식한다.


9. 자유에 대하여 — 칸트에서 밥 딜런까지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사유가 담긴 부분은 '자유'에 대한 해석이다. 마스다와 히와타시 시장의 대화는 마르크스에서 출발해 칸트를 거쳐 밥 딜런에 이른다. 경영서에서 이런 사유의 궤적을 만나는 것은 드문 경험이다.


마스다의 자유 정의는 이렇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한 방종과 자유는 결정적으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칸트를 인용하며 그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말한다.

"동물은 본능에 지배를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눈앞에 바나나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려 한다. '먹지 않는다.'라는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추면서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바나나가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나나를 정물화의 모티프로 삼기도 한다."


본능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무의 자각으로 이어진다. 자유는 의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어렵다. 자유가 냉엄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리고 밥 딜런의 말이 등장한다.

"밥 딜런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지요. 예를 들어, 제가 히와타시 씨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히와타시 씨에게 선택을 받는 것, 그것이 저의 입장에서의 성공일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히와타시 씨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약속한 내용은 반드시 지킵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자유이고 자립이다. 취업 규정이 없다거나 복장이 자유로운 것은 자유라는 단어를 적용할 가치도 없다.


이 대목에서 다케오 시의 히와타시 시장이 던진 통찰이 묵직하다.

"일본의 지방에 따라서는, 부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라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무서운 점은 '선택의 여지가 적다.'라는 상황을 지방의 젊은이들이 전제 조건으로 수용해 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럴 경우, 부자유에 대한 자각이 아득해져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자유에 대한 감각 자체가 사라진다. 히와타시 시장은 도서관을 '선택의 여지'로 만들었다. 게임 센터에 갈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도서관에 갈 수도 있다는 선택지.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이 사유를 한국의 맥락에 옮기면, 고령화 사회에서 시니어에게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이 된다. 은퇴 후의 삶에서 선택지가 '쉬거나' 아니면 '경비원'뿐이라면, 자유에 대한 감각은 사라진다. 시니어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들려는 것은 바로 그 세 번째 선택지다. 경험자본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지적자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


10. 재무자본에서 지적자본으로 — 올림픽이 보여주는 전환

마스다는 도쿄 올림픽 이야기를 통해 재무자본과 지적자본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4년 첫 번째 도쿄 올림픽. 도카이도 신칸센, 수도 고속도로, 호텔 뉴오타니. 막대한 철근과 콘크리트로 형태를 만들었다. 재무자본의 시대였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손에 넣으려면 자본이 중요했다.


2020년 두 번째 도쿄 올림픽. 국립 경기장 건설 논쟁의 쟁점은 '디자인'이었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것들은 모두 디자인이 주제다.

"반세기 전, 일본의 미래를 창조해 낸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창조해 낼 것은 디자인이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지성이다."


이 전환의 구조를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으로 읽어내는 마스다의 시도가 흥미롭다. IT 혁명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지만, 라이프 스타일에 미친 영향은 그 위력에 비해 지극히 한정적이다.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풍경이 IT 혁명의 도달점일 리 없다.


"변혁은 현재, 어디까지나 과정에 놓여 있으며 앞으로 더욱 깊고 넓게 침투해 갈 것이다.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가시화하고 디자인으로서 제시하는 것. 그것이 기획 회사의 사명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


11. 도서관의 십진분류법과 고착된 생산관계

다케오 시립 도서관 혁신의 핵심 중 하나는 장서 분류법의 변경이었다. 일본 공공 도서관의 99%가 채용하고 있는 '일본 십진분류법'을 버리고 22종 분류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마스다가 지적하는 문제는 구체적이다.

"원예 관련 서적은 1차 구분으로 말하면 '산업' 항목에, 낚시 관련 서적이라면 '예술·미술' 항목으로 분류된다. 주택의 베란다에서 원예를 즐기는 주부들 중에 자신의 행동을 산업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휴일에 낚시를 가는 남성들 중에서 자신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 역시 매우 드물 것이다."


이 분류법이 최초로 발표된 것은 1928년이다. 100년 가까이 된 체계가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괴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도 바꾸지 않았다. 생산력은 진보했지만 생산관계는 고정되어 있었다.


18만 권의 장서를 시내 체육관으로 옮겨 한 권 한 권 내용을 확인하면서 재분류하는 작업은 기계화할 수 없는 지적 노동이었다. 이 작업을 수행한 사람들 — 기존 사서에서 접객 담당자로 전환한 직원들 — 에 대해 마스다는 이렇게 말한다.

"사서에서 접객 담당자로....... 이것은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 그들이야말로 다케오 시에서 도서관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한 소중한 지적자본이다."


12. 정어리 떼의 조직론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비유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조직은 '정어리 떼'다. 한 마리뿐일 때는 한없이 나약한 물고기다. 그래서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대형 물고기에게 습격을 당하면, 정어리 떼는 그 자체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양 집단을 유지한 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습격을 피한다. 한 마리, 한 마리는 각각 독립된 개별 존재이고, 무리를 통솔하는 리더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무리 안에서 통일된 행동을 취하며 집단을 유지한다."


원심력(고객을 향한 힘)과 구심력(동료를 향한 힘). 이 두 힘이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 정어리 떼의 기동성이 구현된다.

CCC의 분사화 결단은 이 비유에서 나왔다.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자사 직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경험이 계기였다.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집단이 하나의 팀으로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자기 층에 도착하기 전에 결심했다. 회사를 축소하자. 휴먼 스케일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자.

마스다가 말하는 휴먼 스케일의 원천도 흥미롭다. 이 개념은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설계한 건축가 아스트리드 클라인에게서 왔다. 세 개의 건물 가장자리를 미묘하게 어긋나게 배치해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유를 묻자 클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너무 넓은 공간에 방치되면 불안해집니다."


건축의 원리가 조직론으로 전이된 것이다. 사람이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규모가 있듯이, 사람이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의 규모도 있다.


13. 꿈만이 실현된다

T포인트의 탄생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솔직한 대목이다. 다양한 포인트 카드로 부풀어 오른 지갑. 필요한 카드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경험. "모든 상점에서 한 장의 카드로 결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감각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비웃는 사람들에게 마스다가 던진 반론은 단순하다.

"사실은 '꿈만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꿈꾸었던 것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것, 그것이 이노베이션이다. 어느 누구의 꿈에도 나타난 적이 없는 것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한 사람의 감각에서 출발한 카드가 5,000만 배로 성장했다. 마스다는 이것을 천문학적 성장률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가 네 가지 이노베이션 — 서점, 도서관, 상업 시설, 가전제품 — 을 배후에서 지탱하는 인프라가 됐다.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사업자와 고객은 '1 → n'의 관계였다. 하나의 해법으로 불특정 다수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드 스테이지의 제안은 '1 → 1'이다. 상대를 알아야 제안할 수 있다. 5,000만 명의 업종 횡단 데이터가 그 '알기'를 가능하게 한다.


14. 약속과 감사 — 가장 오래된 두 단어

TSUTAYA 1호점 벽에 붓글씨로 걸려 있던 액자. 마스다의 어머니가 써준 두 단어. '약속'과 '감사'. 30년이 지난 2014년에도 사원들에게 같은 두 단어를 강조한다. 달라진 것은 어머니의 붓글씨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마스다는 39세 때의 경험을 고백한다. 신세를 진 분에게 감사의 식사를 대접하기로 약속했는데, 취재가 밀리고 갑작스러운 방문객이 겹쳐 크게 늦고 말았다. 상대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친전(親展)이라 적힌 봉투가 도착했다.

"그 내용을 읽어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얼마나 독선적이었는지 처음 깨달았다."


그는 이 경험에서 약속과 감사의 관계를 이끌어낸다.

"약속을 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는 어렵다. 약속을 지키려면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자유와 사명의 관계에 연결시킨다. 자유를 입에 담기는 쉽다. 지속적으로 자유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사명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려면 신용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고 감사를 잊지 않는 인간으로서 신용을 쌓아야, 비로소 자유를 손에 넣을 자격을 얻는다.


15. 부산물이 행복감을 낳는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에도 시대 출판인 츠타야 주자부로와 우키요에의 이야기다.

우키요에가 유럽에 건너간 경위는 거의 우연에 가깝다. 무역업자들이 수출한 것은 도자기였다.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포장하는 종이로 우키요에를 사용했다. 대량 인쇄된 대중문화의 산물이었으니 포장지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포장지가 바다를 건너 인상주의를 탄생시켰다. 모네가 매료되었고,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키요에 붐은 본래 도자기 수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스다는 자신의 사업도 같은 구조라고 고백한다. 디자인이 중심 가치가 될 것이라는 인식도, 편안함을 바탕으로 상업 시설을 혁신하겠다는 발상도, 휴먼 스케일이라는 조직론도 — 모두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완성이 안겨준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부산물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산물이 없으면 부산물도 없다. 0에는 아무리 무엇을 곱해도 0이다. 1을 만들어 내야 비로소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983년, 100만 엔으로 32평짜리 가게를 열었다. 그것이 마스다의 '1'이었다.


이 책이 남긴 질문

『지적자본론』을 덮으며 나는 두 가지 질문 앞에 서 있다.


첫째,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지적자본'은 어디에 축적되고 있는가. 재무자본의 축적 장소는 분명하다. VC 펀드, 정책 자금, 기업의 CVC. 그런데 지적자본은? 개별 창업자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을 뿐, 그것을 집적하고 연결하는 구조가 있는가? 마스다가 접객 담당자라 부른 존재, 각 분야에서 깊은 견식을 축적한 전문가들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둘째, 경험은 지적자본인가, 유통기한이 지난 재고인가. 경력의 무게는 그 자체로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마스다의 언어로 말하면, 그 경험이 '제안'으로 가시화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경험을 고객(스타트업)의 삶에 따라 재배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적자본의 자본가가 된다. 공급자의 분류 체계 — "나는 금융 전문가입니다", "나는 IT 출신입니다" — 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십진분류법으로 정리된 서고에 불과하다.


마스다는 31세에 A4 한 장짜리 창업 의도서를 썼다. 그 안에 담긴 구상을 그는 30년 후에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성장이 없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을 내 심지가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았다는 증거품으로서 여러분 앞에 제출하고 싶다."


변하지 않은 것과 첨가된 것. 전향은 없었지만 전개는 있었다. 이 구분이 이 책의 가장 정직한 자기 고백이다.

0에 아무리 곱해도 0이다. 1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1'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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