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임팩트 현장에 던지는 다섯 가지 질문
아프리카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돌리면 깨끗한 물이 나온다.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야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업가 트레버 필드(Trevor Field)가 사업화한 '플레이펌프(PlayPump)'는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논다. 지하수가 올라온다. 광고판 수익으로 유지관리까지 된다. 개발협력의 난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듯한, 지나치게 완성된 서사였다. 2000년 세계은행 개발시장상을 받았고, 제이지(Jay-Z)가 콘서트를 열었고, 2006년에는 미국 정부가 1,64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발표하며 2010년까지 4,000대 설치, 최대 1,000만 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겠다는 6,000만 달러 규모의 공공·민간 파트너십이 구성됐다. 세상이 다 감동했다.
그리고 UNICEF 평가보고서가 나왔다.
잠비아 현장 조사에서 여성 이용자 전원이 플레이펌프보다 다른 기술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어지러움과 구토를 호소한 사례가 보고됐다. 부상도 기록됐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펌프를 돌리게 한 경우도 있었다. 기존 손펌프가 플레이펌프보다 적은 노력으로 시간당 약 다섯 배 많은 물을 공급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아이가 없을 때는 결국 여성들이 직접 돌려야 했다.
아무도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의 《냉정한 이타주의자》(원제: Doing Good Better, 2015)는 이 장면에서 한 문장을 꺼낸다.
"남을 돕는 일에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은 종종 효과 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When it comes to helping others, being unreflective often means being ineffective.)
선한 마음이 틀린 것이 아니다.
질문이 없는 것이 문제다.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이자 Giving What We Can, 80,000 Hours, 효과적 이타주의 센터의 공동 창설자인 그는 이 책에서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의 실천 언어를 제시한다. 그것은 거창한 도덕 철학이 아니다. 놀라울 만큼 실무적인 다섯 가지 질문이다.
첫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큰 혜택을 받는가.
수혜자 수만 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변화의 깊이까지 함께 봐야 한다. 맥어스킬은 'QALY(Quality-Adjusted Life-Years, 질보정수명)'를 활용해 말라리아 방제와 HIV 관련 카포시 육종 치료를 비교한다. 같은 돈으로 말라리아 모기장을 보급하는 어게인스트 말라리아 재단(Against Malaria Foundation)은 카포시 육종 치료 프로그램보다 약 500배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더 많이 알려진 질병이, 더 큰 임팩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둘째.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인가.
'착한 일'과 '가장 효과적인 착한 일'은 다르다. 책은 '100배 승수(100x Multiplier)'를 제시한다.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감의 체감 효과 때문에, 선진국 직장인의 1달러는 극빈층에게 약 100배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같은 자원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임팩트의 크기는 수십 배, 수백 배 달라진다.
셋째. 이 영역은 방치되고 있는가.
이미 자원이 몰린 분야라면 내가 추가하는 자원의 한계효과는 줄어든다. 중요하지만 외면받은 분야일수록 같은 자원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감동적이고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반드시 가장 비어 있는 문제는 아니다.
넷째. 내가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다. 내 개입이 없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 기여를 선언하기 전에 추가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섯째.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고, 성공한다면 얼마나 큰가.
성공 확률이 낮아도 성공 시의 사회적 편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면, 충분히 검토할 만한 선택지다. 기대값의 문제다. 손쉬워 보이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이 다섯 질문이 왜 중요한지는 플레이펌프와 정반대의 사례가 보여준다.
하버드 경제학자 마이클 크레머(Michael Kremer)와 레이철 글레너스터(Rachel Glennerster)는 케냐 학교 현장에서 무작위 대조 시험을 통해 구충제 투여 하나가 출석률과 아동 건강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연구는 이후 각국 정부의 대규모 구충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크레머의 노벨상 강연에 따르면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1억 5천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구충약을 복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책에 나오는 문장이 있다.
"구충제 사업은 아마 개발 분야에서 가장 매력 없는 프로그램일 겁니다." (Deworming is probably the least sexy development program there is.)
플레이펌프는 세상을 감동시켰다.
구충은 거의 아무도 감동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임팩트의 언어로 보면, 이 둘의 평가는 완전히 뒤집힌다.
서사의 힘과 임팩트의 크기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이 가장 불편하게 건네는 메시지다.
이 책을 소셜벤처와 임팩트 투자 현장에서 읽으면, 다른 층위의 불편함이 생긴다.
국내 사회혁신 생태계에는 열정이 넘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정성도 분명하다. 그러나 열정이 증거보다 앞설 때, 플레이펌프의 함정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된다. 감동적인 발표, 강렬한 수혜자 스토리, 설득력 있는 브랜드 언어가 실제 임팩트의 크기와 비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맥어스킬의 다섯 질문을 임팩트 실무의 언어로 다시 쓰면 이렇다.
문제가 선해 보이는가보다, 개입이 실제로 효과적인가를 보라. 이미 자원이 몰린 곳보다, 중요하지만 비어 있는 곳을 보라. 기여를 주장하기 전에 이 조직이 없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을 따져라. 성과관리는 "몇 명을 지원했다"는 활동량 보고가 아니라 어떤 사업을 중단하고 어떤 사업을 확대할지를 가려내는 체계여야 한다. 데이터는 홍보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다음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다.
임팩트 투자자도 다르지 않다. "좋은 팀인가"를 넘어 "동일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른 접근보다 실제로 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비판도 정당하다.
효용 극대화의 틀은 존엄, 관계, 문화적 맥락, 당사자의 목소리처럼 정량화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시야 밖으로 밀어낼 위험이 있다. 효과적 이타주의의 대표적 옹호자였던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와 FTX 파산(2022)은 이 운동의 도덕적 신뢰성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다만 그 사례가 효과적 이타주의 전체의 필연적 결론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계산이 윤리적 자기점검 없이 작동할 때, 논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사람들이다. 임팩트 투자자는 어디에 자본을 넣을지 결정하고,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팀을 선발할지 결정하며, 비영리 리더는 어떤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어떤 것을 멈출지 결정한다. 그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윤리적인 태도는 때로 따뜻한 언어가 아니다.
제한된 자원이 어디로 흘러갈 때 가장 큰 변화를 만드는지를 끝까지 따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오늘의 임팩트 현장에 더 필요한 윤리다.
우리는 선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또 어떤가.
아니면 실제 임팩트를 만들고 있는가.
플레이펌프는 거대한 지지를 받았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고,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그 기계를 결국 여성들이 돌려야 했다.
두 가지는 자주 함께 가지만,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