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앞에서 1화

문을 여는 사람

by 하얀 나비
손녀의 작품

내 기억 속 수채화로 남아있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설렘으로 서있었던

그 대문은 늘 닫혀 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오래된

나무 문짝 하나였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했다.


남자는 처음 그 집에 들어오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벨을 누르자

잠시 후,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조심스러운 걸음.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주 조금.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문틈 사이로, 처음으로 그녀를 봤다.


“…세 들러 오신 분이죠.”


남자는 대답을 하려다

괜히 목이 말라,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조금 더 열어주었다.

그 순간, 남자는 숨이 잠깐

막힌 것처럼 느꼈다.


허름한 동네의 낡은 대문 사이로

뜻밖에도 눈부신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문턱을 넘기 전,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 문을 드나드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날 이후로

남자는 매일 그 문 앞에 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괜히 모른 척한 채로.


그리고 매번,

그녀가 문을 열어주었다.


“띵동.”


익숙한 소리.

잠시 후, 신발 끄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문은 늘 같은 속도로 열렸다.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고, 남자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는 매일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문이 열리는 시간,

그녀가 서 있는 자리,

눈이 마주치는 찰나.

그게 하루의 끝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마다

잠깐이나마

그녀의 공간 안에 함께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문이 조금 늦게 열렸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었지만 괜히

손을 한 번 더 털고,

발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죄송해요. 잠깐…”


그녀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남자는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시선을 피한 채

옆으로 비키며 문을

더 열어주었다.


그날,

남자는 문턱을 넘으면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동시에,

막연하게 느꼈다.

언젠가 이 문이

열리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 2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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