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남은 정

산까치에게 이르노라

by 하얀 나비

늘그막 인생
고비마다 맺힌 설움
해 저물녘 슬그머니
바람에 실어 보낸다

쫓아오지 말거라
믿을 것도, 의지할 데도

희망일랑 모두
대추나무에 단단히 매어 두고

마음이 동(動)해
사랑 찾아 나서는 길

갈림길에서 까치에게
길을 묻노라

기억 또한 아스라이
여긴가 저긴가

서슬 퍼런 겨울 끝
대밭 울음 산을 메우고
길 잃은 부엉이마저 우는 밤

남의 집 사랑채
희미한 초롱불 아래
늙은 이는 짐보따리 베고
잠시 숨을 고른다

안개 자욱한 아침
발걸음 재촉하여 길을 나서니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길을 지나

겨우 찾은 아내 묏자리
이승살이 고단함에

아픈 멍자국
분홍꽃 되어
사방에 피었구나

산까치에게 이르노니
오늘 밤은 이 꽃향기 속에

묵을 터이니
부디 일찍 깨우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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